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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 개인전 <그래도 자라나고>_20230422-20230506

이혜진 개인전 <그래도 자라나고>_

참여작가 : 이혜진 / 전시 디자인 : 피그헤드랩

2023년 4월 22일부터 5월 6일까지 / 운영시간 : 12:00-20:00 / 유인 혹은 무인 운영

​오프닝 리셉션 : 4월 22일 오후 5시

작가들을 위한 메모 

다이나믹 듀오라는 힙합 그룹의 노래 중에는 '어머니의 된장국'(2008)이라는 노래가 있다.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 어머니, 지치고 삭막한 세상살이에 어머니가 차려 주신 밥상을 그리워하는 심플한 노래이다. 나온 지 좀 된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간간이 어디선가 들리는 것을 보면 1인 가구의 급증이 원인이거나 삶의 피로감은 줄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문화예술을 업으로 하는 나도 언젠가부터 그런 것을 느끼게 된다. 언젠가부터 좋은 전시라고 보러 가더라도 약간의 두통이나 무감각해지는 경험을 하고는 하는데, 뭔가 더 분석하고 설명을 들어가면서 봐야 한다는 직업적 의식은 피로감이라 해야 할까, 묘한 건조함과 권태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내가 이혜진 작가(이하 작가)를 알게 된 것은 10년이 넘는다. 그 시간들을 거쳐 내 전시장에 작가를 초대하고 전시를 연다는 것은 작품이 좋거나 나쁘거나 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한 사람이 창작을 계속 붙잡고 지속하려는 것과 그러한 삶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다. 작가의 작업은 화려하거나 강대하여 관객의 시선을 뺏거나, 퍼포먼스가 기발하고 독특하여 관심이 가는 그런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오히려 작고 소담하며 평범하다. 앞에서 '어머니의 된장국'이라는 노래를 언급한 것은, 그런 의미로 작가를 소개하기 위함이며, 또한 작가의 작품은 애초에 말린 야채나 고사리 같은 것의 이미지를 도상화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이 그 노래가 떠오른 것일 수도 있다.

다시 10년 전의 어떤 모습으로 돌아가, 그 당시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던 작가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둑한 작업실 형광등 밑에서 화판을 눕히고 배추 속 단면의 형태를 따고 있는 작가를 보며, 반찬으로 먹는 야채를 그려내는 작가의 동기와 또 그것을 묵묵히 선으로 그어가며 작가가 떠올릴 어떤 생각들에 대해 궁금하기는 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을 것이 작가의 작업은 그저 솔직했다. 우리가 흔하게 떠올릴 수 있는 다양한 표상들, 가족과 따뜻함, 그리움과 연민, 아픔을 이겨내고자 하는 어떤 자세들에 대해서 먹먹하고 느리게 그려낼 뿐이었다. 수양일지 속풀이일지 알 수는 없지만 작가는 묵묵히 화면 가득, 야채의 줄기와 이파리를 채워가고 있었다. 그리고 작가는 꽤나 씩씩하면서도 어떤 기억들을 품에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10년이 지나고, 다른 모든 이가 그렇듯 작가 역시 자신의 삶을 묵묵히 쌓아가고 있다. 어울리는 배필을 만나고 작지만 소중한 터전을 만들고 그리고 간간이 몰아치는 비바람을 겪으면서도 하루의 소중함을 실행해간다. 지극히 평범하고 또 지극히 소시민적인 어떤 이야기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작가는 한 땀 한 땀 기회가 되는 데로 자신의 그림을 그려 나간다.

전시를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함께 준비하는 작가에게 화려한 무엇인가를 기대해보고는 한다. 누가 보기에도 재미있고 흥미로우며 SNS 올리기 좋은 어떤 지점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예정했던 전시일보다 더 긴 시간을 보내고 작가의 어떤 시도들을 같이 고민해 나가며, 그런 기대들이 다소 무색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심스럽게 보내온 그림 이미지에서 작가의 지난 시간들을 떠올려보면 그것은 결코 평범한 것들은 아닐 것이다. 나름의 아픔과 사연, 상실과 미련, 그리고 다시 내일을 바라보게 만드는 작은 행복들을 생각해보면 그건 평범함이라는 거대한 세계 안에 살아있는 작은 모험들일 수 있다. 그게 작가가 그리는 야채, 풀들, 꽃을 피우지 않은 것들도 함께 하는 삶의 과정 일터이고. 그리고 한 순환이 지날 때, 그 감정들은 그림 안에서 어떠한 느낌으로 잉태되는 것 아닐까.

이번에 공개한 작업들은 10년 전의 그것과 비슷할 수 있지만, 선은 더 부드럽고 화면은 꾹꾹 눌러 담았다. 기술적인 어떤 성장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더 맛이 자연스러워졌다고 말하고 프다. 꼭 이혜진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어도 좋다. 엄마의 밥상이 화려하고 유려하기보다 자연스럽고 푸근해 지듯, 그렇게 앞으로도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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