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시각>_ Time Now

<지금 이시각>, 월간지 형식의 월간 아카이브 프로젝트

기획자 : 오종원, 발행 : 피그헤드랩

<지금 이시각> 내 포함된 모든 내용물의 저작권은 각 저자와 피그헤드랩에 있으며 무단 도용 등은 불가합니다. 내용 내 일부 민감할 수 있는 내용은 피그헤드랩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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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시각> 2022년 9월호, 참여필진 : 석민정, 오종원, 이안, 이은우, 이채연

​신규 참가자 및 게스트를 환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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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민 정
삼십대/ 문화예술인/ 교습소운영

2011년 넌 무엇을 그렇게 유심히 보았니.

근 십년 잡지 않았던 필름카메라가 생각난 건 제주도여행 때문이었다.
별 감흥 없이 수 십 번 터치해 찍어내는 디지털 이미지
그리고 다시는 보지 않는 내 아이폰 속 이만개의 사진들.
불현 듯 떠오른 사진동아리의 기억.

흑백사진에 빠져 출사를 다니고 암실에서 밤을 샌 낭만을 아는 대딩이 있었다.
피사체와 나 사이의 멜랑콜리함을 읽을 수 있는 그런 중2병을 뒤늦게 맞이한 대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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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잡동사니 속 인화되지 않은 필름 하나.
언제 찍은 필름이더라...
나중에 인화해야지. 하며 
세 네 번의 이사를 다니면서도 버려지지 않고 잘도 따라다닌다.
제주도 필름들과 함께 인화해보기로 한다.
아무것도 안나오면 어쩌지...
인화비 날리는거지 뭐..
떨리는 마음으로 스캔 파일을 열었다.

십여년 전 21살 겨울. 혼자 떠난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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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
원형아티스트 / 누가 뭐래도 세계에서 젤 잘나가는 만신

(가칭) 부적 프로젝트

※ 2022년 9월호부터 이안 필진의 신규 프로젝트가 진행됩니다. 매달 사연을 받고 그 사연에 대해, 이안 필진이 만신으로서 답변과 이에 따른 부적을 제작해 드립니다. 종교 혹인 신앙의 측면에서 부적이란 것에 호불호가 있을 수 있으나, 본 작업은 이안 필진의 전통 계승 및 독자적인 해석 차원으로 창작의 측면이 강하며 또한 받아들이는 분들께서도 이것을 부적은 물론 자신의 소망을 위한 심볼, 도상, 기하학적인 무늬, 작품 등 상징으로 해석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실제 이안 필진은 만신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해오고 있습니다. 본 작업의 내용물 역시 이안 필진이 실제로 자신의 일에 함께 하던 것으로서, 좀더 보편적이고 열린 차원에서 다양한 분들과 함께 하고 공감하고자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매달 1~3명 내외, 익명으로 된 사연을 피그헤드랩에서 취합 후 이안 필진에게 보내는 방식이며 본 과정을 통해 제작된 부적들은 먼저 이미지로 사연자에게 전달되고 이후 취합하여 전시로 제작할 계획입니다. 전시 종료 후 부적들은 사연자들에게 배포될 예정입니다. 이는 진행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1.
A씨 / 199X년 X월 XX일 XX시 XX분생

안녕하세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탓에 기어코 학교를 자퇴하고 새로이 창업하는 사람입니다. 한 전공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영역을 넘나드는 제 성향과 경험을 포용해 줄 기관이 없는 것같아, 저만의 업체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응원의 부적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 뀨 (。・ω・。)つ━☆・*


만신으로의 답변

맞지 않는 티셔츠를 입어 보겠다고, 꼈는데, 안들어가져. 나 예전에 잘 맞았는데 말도 안돼.
한때는 그래도 잘 맞는 옷이었는데 사이즈는  작은것도 누진 것도 아닌데,
티셔츠 너도 한세월 지났다고 날 배반 한건지, 아님 내가 스타일이 바뀐건지. 이렇게 몇년을 고민을 한 옷만 몇개야. 도대체가. 

결국 어느 날 내 옷장에는 티셔츠를 만들 수 있는 겨울이불 3채는 보란듯 입지도 않는 옷을 발견 한적이 있어요. 
그래서 전 의뢰분을 응원합니다.
새로운 시작을 하는 선생님께 진한 동감과 찬사를, 저 부작에 제 마음 담아 열렬히 인민동지 연기하는 배우처럼요.  
우선, 내가 나와 내 주변인들이 달라진 그 변화를 받아 들이고 당신 삶과 주변을 다시한 번 퍼즐 처럼 맞추어 보았고 그렇게 새로운 무안한 가능성을 스스로 찾아내는 그 힘에 이 부작이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요. 

부작은  처음 일의 시작에 겪어야 할 제장문제, 시행착오, 타인과의 구설과 돈을 많이 벌게.해달라는 것 보다 발란스 있게 벌게 해달라는 전제로 썼어요. 
중앙에 있는 부작은 바로 선생님의 사업을 시스템의 설계도라고 생각해 보셔요. 그 곳에 돈 사람 아이디어 등등을 배치해보세요. 안정적인.발전를 줄거에요!

이불짝 안만드니 집은 곧 커지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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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B씨 / 199X년 X월 X일 XX시경

어릴때부터 그랬다. 너무 욕심이 많아서.
커다란 앵두나무를 몇 시간이나 흔들어 그 맛도 없는 떫은 앵두를 집에 한포대 들고가야 속이 시원했다. 
뭐든지 그랬다. 두 손에 쥐어지지 않을만큼 가득 집어내고도 더 집지 못해 눈물이 나는 그런애였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이상했다.
이유모를 불안감, 긴장감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더 가지지 못해 불쌍했고, 더 나아가지 못해 불행했다.

타고난 욕심으로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욕심의 결과는 항상 또다른 결핍으로 나 자신을 괴롭힐 뿐이었다.
미니멀리스트도 하고싶고 맥시멀리스트도 하고싶다.
나는 그래서 매일이 힘들었다. 지금도 힘들고 내일도 힘들다.
내일은 ‘더 해야한다’는 멈출 수 없는 상황의 굴레에 갖혀 ‘나는 불행하다 나는 불행하다’ 읇조리고 있다.

욕심과 결핍, 외로움과 자기연민이 지배하고 있는, 
매일이 불행하다고 말하고 있는 내가 
진정한 행복과 마음의 평안을 찾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만신으로의 답변

잘 있니?
환각의 리사이클장에서 폐기되던
전생과 이생의 우리
그리고 미래의 오염된 희망으로 
살아가다가 결국 낙엽이 된 우리
우리는 함께 철새들을 보냈네 죽음 어린 
날개로 대륙을 횡단하던 여행자
먼 곳으로 떠나가는 모든 것들에게 
입맞춤을 하면 우리의 낡은 몸에는 
총살당한 입김만이 어렸네...

<허수경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나의 가버린 헌 창문에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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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씨 / (어머니) 620X0X  X시

어머니 환갑입니다. 요즘이야 환갑이 대수가 아니라지만 그래도 막상 때가 되니 무엇을 준비하면 좋을까 하고 동생과 고민을 하게 됩니다.
대체로 저희 세대의 부모님들이 비슷할 것이겠지만, 저희 부모님 역시 베이비붐 답게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오다 보니 내 자식 내 가족은 무시당하지 않는 삶이었으면 했을 테죠. 그런 마음으로 정말 쉬는 날 없이 전전 긍긍하신 덕분에 큰 걱정없이 자랄 수 있어서 감사하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돈을 버는 것 자체가 어머니 삶의 목표가 된 것은 아닐까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한동안 어머니 생신 선물로 적당한 금액의 봉투를 준비하다가 문득 어릴 때가 생각이 났습니다. 무척 어렸을 때 어머니 생신이라고 무엇인가 사드렸더니 “쓸데없는 것에 돈을 쓰고 있다”며 혼난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그때의 선물이 너무나도 쓸데없는 것은 맞아서 지금 생각하면 민망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어머니에게 무엇인가를 해드리거나 할 때면 매번 “쓸데없는 것에 또 돈을” 이라는 얘기를 들으며 자라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돈을 벌게 될 때에는 자연스럽게 돈 봉투를 드리는 것이 더 편했고, 어머니도 대체로 그것을 만족스러워 하시더라구요. 시간이 지나니 저는 그게 슬퍼져서 이제 어머니께 너무 그러지 말라고, 지금 생각하면 작은 것이라도 서로 선물하고 받는 그런 경험이 우리 가족에겐 없었다고 얘기를 한 적은 있습니다.

아무튼 그러면서도 집에 우여곡절은 많았고 여전히 어머니에게 삶에 어떤 목적이나 소원에 대한 얘기를 한다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부자되게 해달라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것이 그 세대의 보편적일 수 있는 모습이며, 또 가족의 안녕을 위한 마음인 것 잘 알고 있지요. 그럼에도 어머니가 더 이상 돈만이 아닌 또다른 삶의 재미와 보람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더욱이 그것이 지금의 어머니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기에, 아들로서는 보통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신으로의 답변

우리 엄마야 아들이 너무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딱 한마디.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고, 누군가에게 해 끼치 않고 정말 최선을 다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면 난 엄마, 이세상의 모든 걸 아들이 엄마에게 다 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는게 엄마 말대로 녹록치 않나봐. 
그래도 사랑하는 여사님. 나 이 세상에서 가장 이쁜 여사님의 꽃잎이자, 앞으로 더 쉽지 않을 이 세상의 모든걸 엄마에게 다 해줄 그 마음으로 아직 가슴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는 걸 잊지마 엄마. 싸랑합니다 여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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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채 연 
창작가 / 관심 받고 싶어 하는 주부

7월의 추억놀이 

구글포토의 알림이 떴다. 
1년전, 2년전, 10년전……사진을 정리해서 알려주고 보여준다. 친절하고 일 잘한다. 이때쯤 나는 이랬구나…거기 갔었구나… 지난 사진들을 들추어 보게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진은 다 과거다. 과거의 모습이 생소하고 신기하다. 옛 생각이 소환된다. 한참 추억놀이를 하게 된다. 
7월과 8월의 구글포토 초이스로 많이 보이는 것은 아들의 생일사진이다. n년전 생일사진들이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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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생일잔치 사진들 사이에서 배가 불룩한 여자가 1인용 쇼파에서 옆으로 쭈그려 자고 있는 사진을 발견했다. 물론 그 여자는 나다. 임신 마지막 달. 다리가 퉁퉁~부어 있다. 배가 딴딴하고 불뚝해서 터질 듯하다. 호러영화처럼 곧 저 배가 팍...악 터지고 거기서 뭔가 나올 것 같다. 내가 이랬었나!? 내 모습에 내가 놀란다. 꿀꿀이 맘, 산모님으로 불린 시절. 태교로 드라마는 ‘시크릿 가든’ 예능은 ‘나는 가수다’를 봤었지. 7월은 아들의 생일이 있는 달이기도 하지만 내가 출산한 달이기도 하다.

다른 사진을 본다. 병실 침대에 나랑 아기가 누워 있다. 출산 후 마취에서 깨어나 처음 아이를 영접한 순간이다. 조심스레 아기를 건들이고 있다. 
그 날은 2011년 7월 27일.
엄마가 되었다. 
아이는 건강히 잘 태어났고, 나도 별 문제없이 출산했다.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쭈굴이. 내 눈에는!
예상대로 아들이다. 임신과 출산과정을 겪어보니 한번은 하지 두번은 못하겠다 싶었다. 첫 아이로 아들을 낳은 것이 안도가 되었다. 누가 강요한 것은 아니지만, 며느리들은 아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은은한 압박이 있었다. (2011년에는)
내 뱃속에서 나온 저 조그마한 생명체가 내 아이 이구나. 가만히 보면, 저 꼬물꼬물한 생명체가 내 뱃속에 살았었고, 밖으로 나온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별탈없이 임신이라는 임무를 수행했고, 무사히 출산을 완료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감사합니다. 
이제 엄마가 되었다. 이 상황에 대한 빠른 적응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어색하다. 이런저런 걱정이 몰려왔다. 머리가 지끈했다. 

다른 사진을 본다.     
10년전에는 아들의 첫 생일 ‘돌’이였다.
작지만 폭발적이고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아이. 온 사방을 정신없이 할퀴고 다닌다. 이 인간을 어찌 키운 건지… 스스로가 참 대단하다.  
돌잔치 사진속의 나는 눈이 퀭하다. 여기서부터 노화가 가속화되지 않았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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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을 내려놓고 추억놀이를 끝낸다. 
엄마가 된 그후로 아이는 내 인생에 누구보다도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존재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아이로 오는 변화는 나의 선택이었고, 아이는 나의 세포에서 시작되었다. 애초에 시작은 ‘나’였다. 
얼마전 아이의 생일이 지나갔다. 추억이 한 겹 더 쌓인다. 
아들~ 씩씩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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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은 우
그림 그리는 사람 / 본업과 부업 사이 어딘가에서 표류 중

내 마음은 뒤죽박죽

1 - 한창 수집했던 팔레트
2 - 눈에 잘 들어오지 않던 색
3 - 노란 패턴
4 - 쳐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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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종 원
문화예술인력 / 피그헤드랩 운영

이봐 젊은 친구. 프로가 되라구.

예전에, 그러니깐 내가 신진작가라는 정체성으로 이런저런 주변의 영향들을 받고 있던 10년 전. 임모 평론가가 쓴 ‘신진(청년?)작가이 알아야 할 리스트’같은 글을 보게 되었다. 당시의 그는 지금보다 평판도 좋고 괜찮은 이야기를 하던 시기였고, 나 역시 그를 멋지게 보고 있었기에 글이 눈에 쏙쏙 들어왔던 것 같다.(근래의 글도 미술연구자의 관점으로 보면 좋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짧은 글귀로 정리된 리스드를 읽으면서 오오오 하고 감탄을 하다 가도, 이제야 돌이켜보면 막상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 그 중에는 사실 어느 이상의 경지에 올라야만(혹은 더 똘똘해야만) 알 수 있는 그런 내용도 있었고.
아무튼 시간이 지나고 나도 기승전결이 있는 활동을 해보고 나니 신진작가라는 정체성이 있었을 때 해야만 하는 것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뭐 후회 같은 것이 필히 기반이 되는 그런 얘기들 말이다. 더욱이 피그헤드랩을 운영하게 되면서 나보다 더 젊은 작가들과 자주 교류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내가 했던 것보다 훨씬 잘하고 것도, 또 내가 했던 실수를 반복하는 것도 보며 뭔가의 방법론 같은 것을 종종 느끼고는 한다. 
아무튼 다소 자극적일 수 있는 제목이기는 하지만 오늘은 근래의 생각들을 묶어서 몇 개 이야기해보기로 하겠다. 그래 혹시나 이 글을 볼 수도 있는 작가 A, 당신을 생각하면서 쓰는 것이 태반이니 너무나 섭섭하게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다. 안 그래도 잔소리 많이 한다고 진절머리 칠 텐데. 그래도 내가 평소 “이것 봐, 나는 실패한 예술가지 않나.” 말하는 것처럼(물론 어느정도는 빈말이다.) 한번 넘어져 본 놈이 아픈 줄 안다고 그럭저럭 아팠던 이야기를 나열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 어떤 의미로는 내가 꼰대가 되어가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1. 적어도 시각예술계에서 전통적인 방식의 창작만을 통해 안정적인 생계를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본다. 딱 두가지의 경우이다. 범인은 불가능하고 비범하면 가능하다. 그리고 비범한 사람들은 이미 떡잎부터, 환경부터 달라서 범인들과 비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이야기를 내가 누군가에게 쉽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 때, 이렇게 말하고는 한다. 만약 네가 작품을 판매해서 생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비교적 전통적인 마켓, 갤러리를 통해 판매하게 될 확률이 높다. 기본적으로 갤러리는 판매금액의 50%를 떼어가고 당신은 나머지 50%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벌이를 만들어야 한다. 가령 2022년, 최저 시급 한달에 약 180여만원을 번다는 가정하에 1년이면 약 2천여만원을 벌어야 하고, 그렇다면 갤러리 몫까지 4천만원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이 좋아 4천만원이지, 막상 그림을 그리고 팔아본 사람들은 알지 않겠는가. 그림이라는 것이 상품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심지어 올해 전시를 통해 몇 점을 팔았다고 하더라도 내년, 내후년까지 그것을 계속 유지할 수가 있을 것인지. 한 해 한 해. 매해 미술시장이 이러네 저러네 하더라도 결국에는 스스로 상품 가치가 있는 브랜드 파워를 갖추고 지속 발전해야 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금액은 사실 어느정도 수요층이 있는 작가(혹은 괜찮은 갤러리)에게는 몇 점 팔면 가능한 금액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수요가 앞으로도 늘 존재할 것이며, 경기도 계속 나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 의외로 팔리는 작가란 왠만한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만큼, 거의 평생에 가까이 기억될 정도가 아니면 그 수명은 너무나도 짧은 한철 장사이다.
그래서 도달하는 것도, 그것을 지속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본다. 근래처럼 다양한 문화 콘텐츠들이 쏟아지고 있는 와중(메타버스, 마블 유니버스, 가쉽 이벤트 등)에 내 창작물, 내 브랜드가 언제까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을까 생각하면 그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이야 어쩌다 한 두 점 판매가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앞으로누군가에게 소유욕을 일으킬 정도의 메리트를 충분히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얘기를 나누다 “작업하면서 점차 창작의 방식을 좀 바꾸면 되지 않을까요”라는, 비교적 참신한 젊은 친구의 답변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와중에 몇몇 선배님들이 떠오르고 말았다. 그 중 한 분이 내게 해준 말씀이 기억나더라. 어디 프로그램에 들어가시게 되어서 축하한다고 했더니 “축하하긴 뭘, 이렇게 해서 젊은 작가들 기회 하나 뺏어 먹고 연명하는 거지.” 그분의 작업이 정말 그런 노력과 처절의 연속처럼 느껴 졌기에, 또 결국엔 늘 경쟁에 밀리지 않고 자신의 브랜드와 커리어를 억지로라도 유지해야 하기에 지극히 슬픈 얘기가 아닐 수 없더라.

2. 그래서 대부분의 이들이 알바를 통해 연명하려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그리고 그 알바는 보통 자신이 하고 있는 특기의 연장이기 쉽다. 보통 미술학원 알바, 벽화 알바 같은 것이 대표적일 것이다. 물론 충분히 나쁘지는 않다. 알바 뛰고 일 마치고 밤 늦게까지 작업하고 올빼미 족들은 그러다 해가 뜨면 자고… 조금은 낭만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해서 10년 이상 버티는 사람을 사실 많이 못 본 것 같다. 아니 그런 사람이 없기 보다 대체로 많은 이들이 그러한 라이프 사이클에서 지치고 그만두는 것이 맞다고 해야 할까. 설령 그렇게 버티더라도, 그 사람을 김작가 이작가 라고 부르더라도 창작을 주로 한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나는 이것은 ‘메인잡’, 자신의 ‘주직업’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작가도 결국 사람이다. 나는 낭만이 있던 시기, 사람 위에 작가의 정체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에는 먹고 살고 내 몸에 점점 노화가 오고, 가족이 새로 생기거나 아프고 어떤 힘듦이 몰아 닥치고 하면 결국 사람으로서 정체성이 드러나더라. 살면서 그런 위기가 없을 사람이 있을까. 그러다 보니 그런 위기가 닥쳐도 주변의 도움으로 극복이 가능한 사람들(보통 환경이 좋은이라 표현하기도 하는)이 더욱더 작가로 살아남는 비율이 높은 것도 맞는 것 같다. 만약에 도움을 받을 환경도 아니고, 할 줄 아는 것은 없어서 자신의 전공을 바탕으로 알바로 연명하려는 생각을 한다면 나는 사실 많이 말리고 싶다. 혹시 모르니 서브잡, 기술이라도 하나 배워 두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실제로 나 때도 많이 그랬지만 근래에는 아예 미대를 들어갔다가 학예를 염두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애초에 예술이 판타지가 심해서 그렇지 외길만으로는 버티기 힘들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아는 것 같다. 혹여나 이러한 이들에게 작가되기 글렀다고 할 것이면, 이들이 삶의 비극에서 외통수를 맞고 휘청거릴 때 진짜 도와줄 사람만 말하라.
사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에는 정말 가끔, “그렇게 작업하다가 정 안되면 확 죽으려구요” 라는 사람을 어쩌다 한번씩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그정도로 위험한 상황인 사람을 보기도 했고. 그런 광경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고는 한다. 그렇게 죽을 각오로 했는데 안되는 거면 뼛속까지 재능이 없거나, 아니면 그 죽을 각오가 부족했던 것 둘 중 하나가 된다. 그러니 둘 다 허무해지는 결과가 나오지 않게 미리미리 큰 그림, 플랜 B를 생각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