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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래 윤산 2인전 <Insert Coin>_20220604-20220618

원나래 윤산 2인전 <Insert Coin>_

참여작가 및 기획 : 원나래, 윤산, 공동기획 및 전시디자인 : 오종원

2022년 6월 4일부터 2022년 6월 18일까지 / 운영시간 : 12:00-20:00 / 유인 혹은 무인 운영

원나래, 윤산 작가의 2인전 <Insert Coin>이 2022년 6월 4일부터 2022년 6월 18일까지 피그헤드랩에서 진행됩니다. 전시의 시작일인 4일(토) 오후 5시 30분에 간단한 인사가 진행됩니다.

​피그헤드랩은 코로나 19 방역지침을 준수하고자 합니다.

작가들을 위한 메모 

지금이야 워낙 3D그래픽이 발전하여 실사와 같은 이미지가 익숙하지만, 내가 어릴 때에는 본 총 천연색이 번쩍이는 빠르고 경쾌한 오락실의 화면들이 멋지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에는 기술력의 한계가 있다 보니 일명 도트그래픽이라 하여 코드화 된 색상들의 배열로 이미지를 구성하였는데, 그것들을 최대한 화려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나름의 무궁무진한 연구들을 해왔다고 한다. 가령 천둥번개가 칠 때에는 흑과 백을 빠르게 대치시킴으로써 번쩍임을 구현하거나 그라데이션 효과를 이용해 입체감을 나타내기도 하였고, 심지어 당시 모니터의 기계적 한계를 역으로 이용해 명암대비를 만들어 내기도 했단다. 개발자들이 그렇게 머리를 짜내 당대의 화려함을 만들어낸 만큼 많은 이들이 그 이미지들에 흠뻑 빠졌고, 나 역시 할머니 용돈을 훔쳐 오락실에 쏟아 넣은 어릴 적 기억이 난다.

원나래, 윤산 작가는 기본적으로 회화를 베이스로 하는 작가들인데 터닝포인트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만 하여도 사실 어떤 공통점을 찾아낸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을 엮은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팀을 이루고 서로가 서로를 관찰하고 그 과정의 결과물들이 엮어서 나온 <Insert Coin>전의 경우 결코 우연이라 말하기엔 상당한 개성을 선보인다. 그 둘의 공동작업들을 보며 나는 오락실의 어떤 도상들이 떠올랐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이 둘이 스스로 작업을 제작하는 방식, 그리고 상대방의 그림을 연구하는 과정들이 꼭 그것과 닮은 것이다. 어떤 제한된 감성과 기술력 사이에서 최대한 나름의 방식을 통해 이미지들을 구축해내고 빠르게 재생산되며, 그것들을 얕은 대신 방대하게 복사되고 그림마다의 이야기들은 마치 코드처럼 할당된다.

이 지점은 내가 언젠가 더 길고 깊게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을까 싶은데 나는 이것이 근래의 유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일명 디지털시대에 태어나고 자란 이들에게 버릇처럼 새겨진 어떠한 지점인데 우리가 근래까지 ‘레트로’라고도 불리우는 그 감성이, 지금의 특정 세대에게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앞서 말한 것처럼 회화를 채우고 만들어내는 방식이 일종의 디지털 코드가 생산되는 것처럼, 회화가 쌓이고 구성되는 방식에서 묘한 가벼움과 속도감, 그리고 가치가 부여지는 과정의 변화를 느끼고는 한다.

아무튼 그러한 지점에서 <Insert Coin>은 두 작가가 스스로 기획하고 과제를 설정하여 제작한 전시이다. 작품 중 두 사람이 서로의 실패작을 교환하여 재제작하는 과정은, 사실 새롭다고 말하기 어려우나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이 서로의 회화를 분해하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상당히 신선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의 회화를 소스의 차원으로만 바라본다는 것이다. 서로의 작품에서 의미를 배제하고 도상의 인지만으로 그것을 다루었다는 것인데, 좀더 쉽게 말하면 서로가 서로의 작품에서 철저히 의미를 배제하고 형태를 읽어내려 들었다. 이것은 마치 프로그램들이 서로가 서로를 읽어내며 자신들이 사용하는 만큼만 덜어내고 복사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프로그램들은 서로의 역할을 상당수 알고 있지만 굳이 서로가 서로를 ‘공감’할 필요가 없고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저 기술적인 재생산이다.

가령 원나래의 경우 윤산의 이미지 한점을 그대로 ‘보이는 것의 배열’로만 규정한다. 그리고 절제된 색상의 데이터를 활용해 자신의 코드 방식을 바탕으로 하여 해당 이미지가 ‘보이는 방식’을 재현한다. 재현이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어디까지나 원본 이미지에 대한 반영인 것은 맞다. 윤산의 경우에는 이와 반대로 반영이 극소화 되고 재생산의 과정으로만 이미지를 다룬다. 기존의 것을 굳이 어떠한 다른 방식으로 바꿔 재사용할 의향이 없다. 원본이 존재하는 그 방식에서 레이어를 하나 덧대어 자신의 코드를 배치한다. 그 코드를 배치하는 것에는 원본의 존재여부와 가치가 그다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철저히 각자 자기들 밖에 모르는 그림이지만, 그것은 어떤 매너나 이기심 같은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애초에 그런 부정적 감정들이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여기에서 상당히 디지털 적인 어떤 과정들을 떠올려본다.

물론 나는 두 작가가 이것을 의도하였고 철저한 계산 속에서 나왔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정말 우연히 그것이 맞아 떨어진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이 두 작가의 만남이 근래의 어떤 생각들, 특히 내가 관심 갖는 어떠한 특정 세대들의 창작과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의 한 현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Insert Coin>의 제목은 두 작가가 각자 나름의 사연들을 바탕으로 붙인 제목이기는 하다. 그러나 나는 전시의 설치를 마치고나서 어찌하던 간에 앞서 실컷 얘기한 것처럼 두 작가가 속한 특정 세대의 이미지 제작 방식을 비유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또 연속적인 이미지 연구의 과정을 의미하는 제목이라 생각해본다. 동전을 넣는다는 것은 그러한 이미지들이 태어나기 위한 과정인 것이며, 그 이미지들은 코드화되어 계속하여 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 둘, 각자의 코드는 그렇게 계속 세상을 분해하며 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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