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시각>_ Time Now
<지금 이시각>, 월간지 형식의 월간 아카이브 프로젝트
기획자 : 오종원, 발행 : 피그헤드랩
<지금 이시각> 내 포함된 모든 내용물의 저작권은 각 저자와 피그헤드랩에 있으며 무단 도용 등은 불가합니다. 내용 내 일부 민감할 수 있는 내용은 피그헤드랩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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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시각> 2023년 7월호, 참여필진 : 김유주, 김희진, 오종원, 이은우, 이채연
신규 참가자 및 게스트를 환영하고 있습니다.




김 희 진
노동자
지나치게 긴 정장을 입은 사내가 들어섰다.
지나치게 긴 정장을 입은 사내가 들어섰다. 실은 나도 모르게 오랫동안 그에게 가고 있었다. 그것은 그러한 방법으로 갈색 구두를 신고 노란색 타이를 맨 사람이었다. 그렇게 생긴 흐름을 탔다. 시간은 그대로 흘렀고, 무엇을 원해도 나는 나다. 하지만 그 아래 무대는 계속 변한다. 내가 서 있어도 누군가 와서 꽝하고 몸을 부딪친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바닥의 돌기는 오돌토돌하게 자라나 귀에 꽂혔다. 가끔은 극장의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찾기도 한다. 그만큼 간절했다. 누가 내게 뭐라든 상관없었다. 통에서 쓸만한 찌꺼기를 찾으면 한 움큼 허리춤에 박아넣은 후 유유히 나는 사라졌다. 대부분 신선하진 않지만, 날이 선 맛을 가진 폐기물이다.
매일 심부름을 하면서 새로운 규칙을 만들었다. 천천히 급하지 않게. 꿈보다 과감하게. 조화를 놓치지 않도록. 공연이 끝나고 혼자 남아 무대를 청소할 때 아무도 남지 않은 이 판을 내가 지휘한다. 감독도 배우도 관객도 모두 나라는 뜻이다. 금으로 세워진 성전을 살금살금 무너뜨리다 단번에 잡아챌 것이다. 난 언제 어디서나 그것을 생각한다. 욕망은 벽 틈으로 충분히 고개를 내민 뱀과 같아서 뒤늦게 방아쇠를 당겨도 완전히 멈추기 힘들다. 이미 모든 것이 다 들춰져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 사이에 분명히 다른 무엇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공간에 관한 연구는 순간의 연속으로 구성된다. 애초에 이 대책 없고, 장담 못할 영속적 울림이 실재의 확률 함수와 같은 본질이다. 어쨌든 반듯한 천이 벽면에 종속된 한, 여행자는 시선의 연속, 또 그 연장에서 다시 당장 사건을 의심해야 한다. 허구한 날 의심만 하다가 생을 마감하더라도 멈출 수 없다. 같은 하늘만 바라보며 살고 싶지 않다면 움직여야 한다.
현상을 관찰하는 것 또한 시간의 연속이 가정되지 않으면 핍진함을 얻을 수 없다. 이 순간에 갇혀, 맥락 없는 조건을 보고 언어가 정확히 가리킬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니까 다시 한번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본질은 확률에 따른 근사치를 갖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렇게 시간의 권력은 평행선을 구부려, 다시 우리를 쳇바퀴에 가둔다.

이 채 연
창작가 / 관심 받고 싶어 하는 주부
나무의 노래
8월 초 출간될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제목은 <나무의 노래>입니다. 제가 그림을 그렸고, 이수연 작가님이 기획과 글, 공연연출을 했습니다. 이래저래 열악한 환경에서 작품발표가 되기가 힘들었지만, 구슬땀이 모이고 인내의 시간을 거치는 중 <문화예술진흥기금,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예술지원 창작의 발표>에 선정되어 작품을 내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출간과 함께 전시와 공연이 제주에서 열립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부디!
<나무의 노래> 원화전 일정은
7월 28일 ~ 8월 14일 윈드스톤 (제주시 애월읍 광성로 272),
8월 15일 ~ 8월 30일 소심한 책방(그림책 원화의 일부전시, 제주시 구좌읍 종달동 길 36-10)
*무용극과 음악극도 진행됩니다. 포스터에 일정을 참고 부탁드립니다.

아래의 글은 <나무의 노래> 그림책 작업에 대한 개인적인 작업 노트입니다.
<나무의 노래>는 기획이 먼저 나오고 제가 그에 맞추어 그림을 그린 작품입니다. 서로 의견을 맞추어 가며 작업을 진행하기는 했지만, 생각의 차이는 있었을 것이라 봅니다. 제가 작업한 그림에 대한 이해를 바라며, 의도와 생각을 담은 작업노트를 썼습니다.
작업노트 - 나무의 노래
원화: 각38x74cm, 마지막장: 65x138cm, 한지에 분채, 2022 (글: 이수연, 그림: 이채연)
그림책 <나무의 노래>에서 노래는 ‘근조가’이다.
근조는(根操) 나무 뿌리를 잡다는 뜻이고, 근조가는 나무가 뿌리를 잡고 부르는 노래다. 일반적인 근조(謹弔:사람이 죽어 삼가 슬픔 마음을 나타냄)의 뜻이 있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나무들이 일제 강점기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는 노래이다.
하늘과 산이 잘 보이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사회적거리가 잘 지켜지는 비교적 한가한 동네에 살고 있다. 이런 한적한 풍경 속에서 햇빛을 등지고 노는 아이들이 있다. 놀이에 한창인 아이들의 실루엣을 햇살이 감싸고 있다. 따사롭고 행복해 보인다. 시국은 역병으로 불안하고 우울한 정서로 뒤덮여 있지만 그 아이들은 마냥 즐거운 것 같다.
이런 풍경을 보고 있으니 행복한 유년의 시절을 강제로 빼앗긴 소녀들이 생각난다. 위안부라 불리운 소녀들. 이 소녀들과 함께한 평화로운 풍경을 지워버린 일제의 침략. 어느 날 풍경에서 사라져 버린 소녀들. 그 참담한 암흑기의 시간에서 많은 소녀들은 돌아올 수가 없었다.
‘소녀들이 사라지고 남은 풍경’이 주요 모티브이다.
이 그림책은 풍경화가 쭉 이어지는 병풍식 또는 아코디언식 구성이다. 그냥 보면 풍경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내용은 위안부로 끌려간 한 소녀와 그 소녀를 지켜보는 나무의 이야기이다.
위안부는 일본 제국주의 점령기에 일본에 의해 군위안소로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여성이다. 암담한 내용이기에 위안부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다소 그로테스크한 묘사가 많다. 이런 잔인한 일이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사실이라는 것은 감상자의 충격을 주어 멘탈이 남아 나지 않게 만든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그런 슬픈 역사를 다룬 작품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보고 나면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마음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직면해야 할 과거이기는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지난날의 슬픔안에서 머물 수는 없다. 직면하고, 알고, 공감하되 지금을 되도록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과거의 위안부에 대하여 완전히 알 수 없지만 남은 사람의 증언과 기록으로 나마 일부만 파악할 수 있다. 과거의 일에 대한 온전한 체감은 힘들지만 공감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감은 깊게 이해할 수 있게 하고 길게 기억될 수 있게 한다.
이 슬픈 역사에 대해 공감하며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나는 풍경을 그렸다. 사시사철 밤낮으로 변하는 풍경을 통해서 애도의 마음을 표현했다. 소녀(위안부)는 없지만 소녀의 자취가 남은 풍경이자, 소녀를 기억하는 존재인 수호가 남아 있다. 풍경과 수호는 소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결국 소녀는 전쟁에서 희생되었고 자연과 후대 사람들은 소녀를 애도하는 노래 ‘근조가’를 부른다.
생때 같은 자식을 잃은 소녀의 부모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렸다. 조금 더 공감하고 감정이입 하기 위해서 소녀그림의 모델로 아들을 참고했다.
이 슬픈 역사를 기억해 되풀이되지 않게 해야 한다.

오 종 원
문화예술인력 / 피그헤드랩 운영
손님 접대를 왜 안 하지
1. 일단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손님 대접을 잘하자’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에게 나역시 관심을 가지자’ 이 얘기이다. 그리고 이 말을 하기위해 아래와 같은 첨언들을 남긴다.
2. “아 요즘 작가들 왜이리 손님 대접을 똑바로 안하지.”
확실히 근 몇 년간 문화예술 행사, 특히 시각예술의 경우에는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사실 이 얘기는 얼마전 <지금 이시각>에 게시하기도 하였고, 또 웹진 퐁의 출간물에 싣기도 하였다. 오프닝 리셉션을 포함한 관객을 반기고 환대하는 문화가 점차 간소화하거나 부재, 또 전시에 있어서 서로 왕래를 해주는 것에 대해 다소 무심해지는 그런 현상을 근래 느낀다는 내용이다. 직접적으로 언급하면 손님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손님이라는 표현이 과한 표현은 아닐 것이다. 어찌됐든 내 전시에 와주고 나를 보러 와주는 것이니 손님은 손님이지.
내가 관여하는 전시던 어렵게 시간을 내서 찾아간 전시이던 한동안 전시 내 관객맞이와 관련하여 다소 불편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내가 단순 관객입장에서라면 백번 양보해서 “뭐 사정이 있었겠지” 라고 생각하고 말 수도 있을 것이나, 내가 관여하는 전시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나면 매우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구체적으로 문제를 삼는 것은 다음과 같은 두가지이다. 첫째는 전시를 만든 기획자나 작가가 손님을 맞을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는 것. 둘째는 내 전시에 와준 손님에게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먼저 손님을 맞이할 준비. 손님, 관객이란 개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각자 다르지만 그 관객이란 사람들은 ‘나’를 보러 와주는 사람들이다. ‘내’가 너무 유명하고 대단해서 ‘나’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과 충족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겠지만 종교인이나 연예인이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경우 ‘나’를 보러 온다는 것은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관계성을 형성하기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준 이들일 것이다. 요즘 대부분의 산업이 그렇지만 예술의 경우 타 분야보다 더욱 부각되는 지점이 바로 ‘브랜드’이다. 그리고 그 브랜드가 바로 ‘나’, 정확히 말하면 ‘내’가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관객 서비스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종종 꺼내는 이야기이기다.)
그래서 전시물의 제시 다음부터 바로 작가가 베풀 수 있는 마음의 여유이며 브랜드의 깊이일 것이다. 대체로 전통적인 전시의 방식이라면, 가령 나에게 관객이 방문하겠다 연락이 왔다면 마중을 하러 전시장에 나가거나, 꼭 지인의 방문이 아니더라도 전시장을 방문하여 관객들에게 더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노력 같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사람을 맞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전시에 와줘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그런 디테일들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막상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오프닝 리셉션을 하는 것이다. 어차피 오는 이나 준비하는 이나 나름의 기회비용을 쓸 것이라면 차라리 하루에 몰아서 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여기서 말하는 오프닝 리셉션이라 함은 꼭 비싼 돈을 들여서 성대히 치루라는 말이 아닌, 와주는 이에게 최소한의 감사함 정도는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자리의 형성’ 단위로서 이야기 하는 것이다. 참고로 피그헤드랩에서 전시를 하게 되는 경우 반드시 오프닝 리셉션을 치루는 게 조건이고 앞선 의미로 언급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내 전시에 와주는 이들이 있으면 나도 그 마음에 보답하는 것 또한 기본이다. ‘내 전시 오프닝에 와줬으면 상대방 전시 오프닝에도 가주는’ 것. 콕 집어서 말하자면 얼마전에도 피그헤드랩에서 오프닝 행사를 하면서 이 지점에서 참 속상한 일이 있었다. 이번 전시에 오프닝을 치룬 C작가는, 피그헤드랩에서 열린 앞선 A와 B전시의 오프닝 리셉션에도 꾸준히 방문해주었다. 좋은 시간 좋은 분위기를 보냈고 A나 B나 C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제 전시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 전시에도 꼭 방문하겠습니다” 이랬던 사람들이, 연락조차 없더라. 각기 다른 사정들이 있을지 몰라도 일단 나에게는, “아 A나 B는 약속을 지킬 줄 모르는 사람이구나”라고 여겨지는 것이다.(물론 그럴 빌미들이 더 있기도 하였지만)
또 다른 에피소드로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어떤 오프닝 자리에서 D라는 작가가 E라는 작가에게 물었다. “저는 작가님 SNS게시물에 좋아요를 꼬박꼬박 누르는데 왜 제 게시물에는 안눌러주세요?”라고 물으니 E가 답하기를, “저는 좋아요를 누를만한 글에만 누릅니다.”라고 답하더라. 그 얘기를 직접 들은 D도 당황하였지만 옆에서 그 얘기를 듣던 나도 깜짝 놀랐다. 물론 술자리에 있을 법한, 싸가지 없는 사람의 재미없는 농담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나는 E라는 사람은 본인에게 오는 어떤 관심 같은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받은 것을 돌려주려는 그런 마음이 없나 보다 느껴지는 것이다.(마찬가지로 그 전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긴 하였었다.) 그리고 얼마 후, 어디선가 나에게 작가를 추천할 수 있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조건을 들으니 순간 E작가가 작업 주제로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백컨데 개인적인 감정이라면 감정일 수 있겠지만 나는 차마 그를 추천할 수 없었다.
문화예술 씬이라는 것은 특수성이 있는 환경이라는 것을 반드시 강조할 수밖에 없다. 모든 기회들이 충만한 여유에서 탄생하지 않으며, 서로 돕고 협력하는 관계에서 알 수 없는 미래를 기약하는 것이 문화예술계라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내 경험상 문화사업 분야는 이타심과 연대감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생각하는 바이기에, ‘연대감이 없게끔 느껴지는’ 이를 ‘연대감을 필요로 하는 환경’에 추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내가 관심을 갖는 문화사업 쪽은 연대감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굳이 꼭 고마워해야 해? 내가 열심히 하고 내 능력을 원하는 이들이 있으니깐 하는 것이지, 굳이 내가 그런 저자세를 취하면서 활동해야 해?”라고 누가 묻는다면, 그 질문에 답은 간단하다. 그러면 그러지 않아도 되는 영역으로 가시라고. 그리고 분명 그래도 되는 현장들도 있을 것이다.
다만 꼭 어떤 분야를 특정하지 않더라도,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켜 먹어도 사장의 태도에 까다로워지는 시대이다. 하물며 문화예술은 더욱 거대한 서비스업계이자 인적 네트워크 위주로 운영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설설 기고 가식적으로 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관계에 대해, 막말로 인프라를 형성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적당히 같이 일할 만한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프로다움의 이야기이다. 사소한 약속이라도 지키지 않는다면, 고마움을 느낄 줄 모른다면, 설렁 느끼고도 그것을 표현할 마음의 여유 같은 것이 없다면 그것은 프로답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것 아닐까. 뭐 그깟 것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네 마네 할 수도 있겠지만, 아쉽게도 예술계는 그깟 것 외에는 당사자를 평가하고 이해할 방법이 또 막상 없다. 이제는 제법 익숙한 클리셰인, ‘천재적인, 독특한 재능을 갖추고 있지만 사람 대하는 것을 불편하거나 어려워하는’ 그런 경우도 분명 있기는 있을 것이나, 적어도 나 같은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피그헤드랩과 깊게 인연을 맺고 있는 작가 F를 언급하게 된다. 그의 작업들이 내 취향에 맞거나 그가 엄청난 매력을 갖췄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자신에게 온 기회나 관계를 맺는 이들에게 감사함을 표할 줄 알며, 받은 것은 돌려주려는 경향이 있다. 때로는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그런 F에게 나는 지속하여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나 혼자 하겠는가. 그것을 증빙하든 그는 여전히 계속하여 좋은 기회를 얻고 있으며 또 그에 맞춰 열심히 살아가고자 한다.
3.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앞서 얘기한 오프닝 리셉션의 사례로 기분이 나쁜 것도 있지만, 근래 원로 예술인 분들과 어떤 자리들을 갖게 되면서 뭔가 배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단한 것을 얻어먹거나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깡소주 한 잔에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느끼는 그런 자리였다. 근래에 들어선 그런 어르신, 선배님들의 태도를 느끼게 된다. 짬뽕 한그릇을 사면서 후배 예술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선배작가, 비록 SNS상이라도 먼저 안부라도 물어 봐주는 선배 예술인 분들도 몇 분 언급할 수 있겠다.
이 글을 쓰며 누군가와 이 얘기를 나누었더니 “요즘엔 다들 먹고 사는 게 바쁘고 힘들어서 그렇지 않을까”라고 말하더라.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다만 그런 상황에서 라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배려이며 존중이고, 예술이라는 분야도 바로 그것을 통해 존재하는 것 아닐까 싶다.
김 유 주
쉬어가는 사람
어쩌다보니
딱히 정해진 일정 없이 끌리는 대로 여행을 해 왔지만 스위스에 가는 일정만은 정해져있었다. 이유는 딱 하나였는데, 아트바젤이라는 국제 아트페어가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기 때문이었다. 여행이 나에게 어떤 발전을 가져다주리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이왕 여행을 떠나온 거 견문을 넓히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트바젤이라는 거대 미술 행사에 방문해보기로 한 것이었다.
물가 비싸기로 소문난 스위스는 아트바젤 기간에 맞춰 숙박비가 말도 안 되게 올라 있었다. 이 기간에 스위스를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정말 오래 찾아보고 고민했다. 여러 가지 후보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국경을 넘어 가장 가까운 프랑스 작은 마을에 숙소를 잡고 편도 세 네 시간 정도 걸려서 아트바젤을 보러 가는 것이었다. 대중교통이 있긴 하지만 여러번 환승을 해야했고 차편이 일찍 끊긴다는 문제가 있었다. 두 번째는 아침에 바젤에 도착해서 아트바젤만 보고 바로 스위스를 떠나는 것이었다. 이것도 대중교통 시간이 문제였다. 여러 경로를 검색해봤지만 아트바젤 시간에 맞추기가 어려웠다. 세 번째는 캠핑 장비를 사서 캠핑장에서 숙박을 하는 것이었는데, 당장의 짐도 무거운 마당에 텐트와 매트까지 사서 들고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스위스는 캠핑장도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고민하던 와중에 친구가 독일에서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렌트를 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천군만마가 따로 없다. 이렇게 똑 부러진 여행메이트라니!
그렇게 우리는 독일 남부에 있는 프라이부르크라는 지역까지 가서 차를 렌트했다. 휴대용버너와 가스 그리고 냄비도 하나 구매했다. 이걸로 우리의 스위스 여행 준비는 끝. 나머지는 우리의 인내심에 달려 있었다. 다행히 고난과 역경을 즐기는(?) 부분이 참 잘 맞는 우리는 걱정보다는 날뛰는 모험심으로 고취되어 있는 상태였다.
첫 날은 마트에 들러 식재료와 물을 구입하고 국경을 넘어 등산로 입구에서 차박을 했다. 얇은 포장지를 하나 사서 창문 모양에 맞춰 끼우고 뒷좌석을 접어 앞으로 눕혔다. 친구는 불빛도 없이 숨죽여 조용히 파스타를 만들었다. 파스타는 꿀맛이었다. 뒤로는 숲이 우거져있고 하늘엔 별이 총총거렸다. 그리고 저 멀리 붉은 빛을 내뿜는 신비로운 달이 보였다. 고요한 적막이 무섭기보다는 편안했다. 차박에서 평탄화는 필수인데 뒷좌석을 접으니 경사가 생기고 트렁크 바닥과의 단차가 생겨서 생각보다 불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방 잠이 들었다. 낯선 환경에서 운전하며 긴장을 많이 했던 탓에 피곤이 밀려온 덕분이었다.
스위스 운전은 갑작스레 결정되었기 때문에 단속카메라가 많다는 정도 외에 따로 정보를 알아보지 못했다. 막상 스위스에 진입하니 중앙선과 차선의 구별이 잘 되지 않고, 신호체계도 우리나라와 달랐으며 트램과 차도를 함께 써야 해 당황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게다가 네비게이션과 실제 제한속도 표지판의 숫자가 다르거나 제한속도가 80에서 갑자기 30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분명 제한속도가 50이라고 되어있는데 모두들 내게 경적을 울리며 쌩쌩 지나가버리는 경우도 있었는데 도로사정을 잘 모르니 화가 나기보다는 답답한 심정이었다. 잠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낯선 곳에서의 운전은 첫 차박의 두려움도 없이 깊은 잠에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스위스는 보행자와 자전거를 보호하는 게 도로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인 것처럼 보였는데, 그 원칙은 아주 찬성이지만 곳곳에 숨겨져 있다는 과속 카메라에 비해 너무 불친절한 제한속도 표지판과 도로체계는 운전을 힘들게 만들었다. 보행자와 자전거에겐 한없이 다정하지만 운전자에겐, 더욱이 외국인 운전자에겐 너무 잔인한 곳이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그래도 운전을 장시간하다 보니 낯선 도로도 어느새 적응이 되었다. 운전을 적응하고 나니 제일 불편한 것은 역시 씻는 것과 생리 현상이었다. 12일간 차박을 하면서 캠핑장을 딱 두 번 이용했는데 마음 편히 씻는 게 이렇게 소중한 일이라고 친구와 감격하기도 했다. 스위스에는 길 가다가도 깨끗한 물이 흘러나오는 분수대를 자주 볼 수 있는데 나중에는 그런 물을 빈 페트병에 받아두었다가 공터에서 씻기도 하고 해변가 샤워실을 이용하거나 미술관 화장실에서 몰래 세수도 몇 번 했다. 불편하고 찝찝하긴 했지만 모든 순간이 재미있었다.
스위스 곳곳을 다니면서 차박 할 장소가 마땅치 않으면 도시와 도시 사이에 있는 숲속 공터 같은 곳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런 곳들은 모두 도시로부터 떨어져 있었는데, 조용하고 평화로운데다 시간이 내가 아는 그 시간이 맞나 싶을 만큼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시간이 모든 순간으로 채워져서 살아있는 기분이었다. 어떨 때는 숲을 등지고 어떨 때는 거대한 호수를 등지고 잠을 잤는데, 열 한 번의 밤하늘엔 매번 별이 총총 빛났다. 스위스의 별은 왜들 그리 선명하고 알이 굵은지 별이 아니라 보석처럼 보였다. 물론 차를 타고 취리히나 베른, 인터라켄, 바젤 같은 큰 도시들도 여행했지만 어딘지도 모르는 채 정차해 하룻밤을 머물던 그 곳들이 훨씬 더 기억에 남는다. 매순간마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거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침대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차에 누워 뒤척이던 그 불편함이 그리운 걸 보면 그 중얼거림을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된다.
도시를 운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운전자들의 로망이라는 스위스 3대 드라이브 코스도 갔다. 사실 이건 친구의 제안이었고, 큰 기대는 없었다. 나름 15년차 운전자지만 운전 자체를 즐기지는 않는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운전에 로망이 어디 있어? 그냥 이동수단이지.’ 라고 생각했던 나는 푸르카 패스와 그림젤 패스, 고타드 패스 세 코스를 연이어 운전하며 처음으로 운전을 즐기고 있었다. 패스는 좁고 험한 산길을 뜻하는데, 좁고 경사진 산을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면서 거의 360도를 돌다시피 하는 커브길이 계속 이어진다. 피곤할 법도 한데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피곤을 느낄 틈을 주지 않았다. 어쩜 이렇게 쉬지 않고 아름다운 풍경이 이어지지? 내 키보다 높게 쌓여 마치 벽처럼 보이는 눈이 도로 양쪽으로 보였다. 그리고 저 멀리 산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를 보다보면 새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하늘의 색도 그림 같은데 구름은 진짜 그림인 척 하려는 건지 아주 예쁘게 자리를 잡았다. 그림 같은 풍경이란 건 이런 걸까 싶었다. 중간 중간 차를 세워 풍경을 감상하다가 지나온 길을 내려다보면 그때서야 아찔해졌다. ‘내가 저런 길을 잘도 왔구나.’ 그리고 스스로가 대견해지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면허를 딸 생각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는 대통령이 되면 차가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적었을 정도였다. 엄마는 내게 공부를 강요해본 적은 없었지만 운전면허만큼은 빨리 따야한다고 강요 아닌 강요를 했었다. 고3 때는 처음으로 학교를 찾아와서 담임선생님을 직접 만나 나를 조퇴시켰다. 엄마 손에 이끌려 간 곳은 바로 운전면허 시험장이었다. 어릴 땐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덕분에 남들보다 일찍 면허를 땄다. 훗날 엄마가 자신이 살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면허를 딴 일이었다고 얘기했을 때도 그저 듣고만 있었는데 스위스에서 운전하면서 내내 엄마 생각이 났다. 그때 엄마가 면허 따라고 들들 볶지 않았다면 아마 내게 운전면허증은 없었을 것이다. ‘왜 운전면허가 필요하지?’ 라며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하다가 면허는 물 건너갔을 게 뻔하다. 고3 때 엄마의 강요가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기술 하나를 만들어줬다. 그것도 평생 써먹을 수 있는 아주 유용한 기술 말이다. 아마 그게 없었다면 스위스 여행도 없었을 것이고.
여행하면서 계획한대로 되는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어있고 어쩌다보니 그곳에 가 있다. 어쩌다보니 맞닥뜨리는 것에서 어쩌다보니 내가 갖고 있던 장점을 발견하기도 하고 생각도 못했던 나의 약점을 발견하기도 한다. 나는 늘 어떤 일을 하는 데에는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엇을 시작하기까지 고민이 늘 많았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그냥 어쩌다보니 해온 것들’이 많았다. 딱히 이유나 목적이 있어서 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일들이 나중에 의미를 갖게 되기도 한다. 매 순간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너무 신중할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을 ‘어쩌다보니’ 지금 하고 있다.



이 은 우
그림 그리는 사람 / 본업과 부업 사이 어딘가에서 표류 중
그 날의 비엔나커피
오랜만에 받은 연차는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웠다. 전쟁같은 아침 준비 시간이 필 요 없었고, 자고 싶을만큼 자고 눈을 떴다. 오랜만에 친구에게 바로 연락하여 번개 만남으로 연남동에 다녀왔다. 뜨거운 햇빛과 습한 온도를 제대로 느끼며 대중교통 을 타고 터덜터덜 걸어다녀서 일찍부터 몸이 지쳤지만, 오늘은 이런 뜨끈뜨끈하고 습한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여름하면 생각나는 것이 이런 무더위와 쨍한 햇빛인 데 시원한 에어컨 바람 밑에 있으면 이것만큼 또 좋은 것이 없다. 무더위의 7월-8 월엔 늘 어딘가로 여행을 다녔던 기억이 있어서 여름을 제법 좋아한다. 여름방학, 여름 맞이 여행 등 여행의 목적으로 삼기에 딱인 계절이다. 이번 7월도 어김없이 어딘가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목적 없이 그냥 다녀오려고 한다. 습도와 더위에 한 번 더 지쳐보자. 달콤한 비엔나 커피와 함께 오늘의 하루를 마무리했다.


피그헤드랩
www.pigheadlab.com
피그헤드랩 23년 7월 소식
장종훈 개인전 GARNIMOQUE! (Finder)(2023.06.24-07.08)
장종훈 작가의 GARNIMOQUE! (Finder)(이하 전시)를 보면서 이것을 관객에 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것은 어떤 가능성의 시도이다. 먼저 장종훈 작가는 다양한 시각 언어를 재미있게 표현하는 작가이며, 그 다음으로 이번에 설치된 옷가지(티셔츠와 바지)들은 실제로 사용성, 즉 굿즈로의 활용도 염두하고 있는 작업이다. 그렇다고 이번 전시를 단순 쇼케이스의 하나로 표현하기에는 아쉬움이 있는 것이, 공간을 활용하기 위한 나름의 고민과 대형 드로잉 작업을 보면 이것은 일종의 가능성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간간이 언급하고는 하지만 근래의 작가들은 대체로 잘 그린다. 나는 이 지점을 80년대 생 전후로 표현하고는 한다. 어떤 기점을 두고 그 전후의 세대가 시각예술을 다루는 방식, 특히 그림을 그리는 방식은 큰 차이가 있다고 보는데, 그런 의미에서 근래의 청년 작가들이 그림을 잘 그린다고 느껴지는 지점은 감각적인 지점이다. 대체로 보편적인 지점에서 크게 불편함 없이 화면을 구성하고 관객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보이는 방식이 그리 낯설지 않다. 특히나 90년대생 이후부터는 미디어가 발달하고 다양한 우수사례들을 접할 수 있게 되면서 화면을 구성하는 감각들이 좋 아지고 또 무난해 졌다. 장종훈 작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고 크게 군더더기를 잡을 수 없는 화면구성은 흡사 디자인의 영역과도 겹쳐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가 전시를 준비할 때, 어떤 큰 서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하 였다. 작가가 옷이라는 매체를 사용할 것이라고 말하였기에 나는 그 매체(티셔츠) 가 이야기를 잡아먹는 일을 피하는 게 나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자칫 전시를 이루는 작품성이 굿즈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 걱정이었기 때문 이다. 그러나 실제 전시가 시작되고 나니, 작가가 준비한 이야기는 굳이 드러나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단편 만화의 페이지들처럼 작게는 어떤 심볼에서 크게는 어떤 상황 같은 것들이 소담하게 새겨져 있었다. 작가는 이것들이 자신의 일상에서 떠 올리는 상상의 이야기들이라 말하였다. 그래서 나는 사실, 처음에는 조금 당황하 였다. 그 이야기란 것, 이것이 전시의 매체로 보여지는 장치적 메리트가 크게 부각 되지 않다보니, 공간의 운영자라는 입장에서는 약간 난처함 같은 것이 없다면 거 짓말일 것이다. 문득 몇 차례 작가와 대화의 자리를 가진 게 떠올랐다. 설명이 늦 었지만 장종훈 작가는 올해 터닝포인트 프로그램 참여작가이고, 올해에는 대화의 자리를 중점으로 하여 각자 주제를 선정 후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하였다. 장종훈 작가는 일탈이란 주제로 대화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가 밤중에 어떤 학교에 들 어가 다양한 공상의 시간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사실 상황 자체 만 생각하면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 안에서 나름의 익살스러운 상상들을 펼쳤다고 한다. 그때 그게 일탈이라며 모인 작가들과 함께 웃은 기억이 났는데, 지금의 전시가 그때의 이야기와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만약 기 존의 미술세계를 생각하였다면, 엄청난 모험이나 담대한 도전 같은 것이 아닌 일 상의 소소함 같은 것들은 다소 아쉽거나 가벼이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 딱 그 정도의 선을 유지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부담 없이 이야기를 건낼 수 있는 얇고 넓은 범위로의 영역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작가가 취하는 일종의 컨셉일 것이다. 이번 전시의 주요 아이템이면서 곧 이어지는 작가의 행사에서 실제로 판매될 굿즈 에는 그것에 딱 어울리는 무게의 이야기인 것이다. 앞서 말한 엄청난 모험이나 담 대한 도전을 티셔츠에 새긴다는 것은 그리는 이나 입고 다닐 이나(실제로 입는 것 을 전제로 제작되었기에) 다소 부담이지 않을까. 영화 스파이더맨의 명대사인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것은 예술의 세계에도 통용되는 것이며, 반대로 작은 이 야기들은 그 나름의 매력과 경쾌함으로 작가와 관객을 잇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티셔츠당 4만원에 팔겠다는 그의 얘기가 이번 전시의, 아니 장종훈 작가의 지금 작업군에 아주 중요한 지점이라 생각한다. 고로 작가가 취하는 지금의 방식은 어 떠한 범위를 지정하고 소모하기 좋은 콘텐츠의 영역이자, 작가가 민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비책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