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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시각>_ Time Now

<지금 이시각>, 월간지 형식의 월간 아카이브 프로젝트

기획자 : 오종원, 발행 : 피그헤드랩

<지금 이시각> 내 포함된 모든 내용물의 저작권은 각 저자와 피그헤드랩에 있으며 무단 도용 등은 불가합니다. 내용 내 일부 민감할 수 있는 내용은 피그헤드랩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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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시각> 2023년 6월호, 참여필진 : 김유주, 김희진, 오종원, 이채연

​신규 참가자 및 게스트를 환영하고 있습니다.

이 채 연

창작가 / 관심 받고 싶어 하는 주부

엄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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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 인물 – 엄마와 아기

어린아이가 엄마를 그린다. 예쁘게, 우아하게, 치장한 모습으로, 공주님 같이. 아이들은 엄마를 왜 예쁘게 그리려고 하는 걸까?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마냥 좋아 보여서? 아이의 희망사항을 그린 걸까?.... 특히 여자아이들이 더 그런 것 같다. 어린시절의 나도 그랬다.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엄마. 굽슬굽슬한 펌 머리에 풀 메이컵을 하고 화려한 드레스나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은 모습으로 엄마를 그렸다. 실제의 엄마는 아담한 몸집에 뽀글뽀글한 파마머리를 하고 몸빼바지를 입은 아지매였는데……

돌이켜 보면 어릴 때 나는 엄마의 원래 모습을 알고 있었지만, 그 것은 거부하고 최대한 화려하고 예쁘게 그리고 싶어했던 것 같다. 엄마의 초라한 모습이 싫기도 했고, 어른이 되면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

그림의 속의 여자는 어린시절 내가 생각하는 예쁜 여자, 또는 엄마를 어떻게 그렸었더라? 하며 기억을 더듬어 가며 그렸다. 만화에 나오는 공주님들이 많이 하는 헤어스타일 - 고데기로 말은 번데기 컬, 엄마의 화장대에 있는 단출한 늘 같은 화장품 – 쑥색 아이펜슬. 그리고 그 시절 연예인의 짙은 화장을 생각하며 그렸다. 

앞서 말한대로 그림의 여자는 우리 엄마다. 엄마는 아기를 안고 앉아 있다. 이 포즈는 고물상에서 주워 온 성모상 그림에서 왔다. 성모님이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그림이다.

고물상 구석에 있던 성모상은 그 앞을 지나가는 행인3과 같은 존재인 나에게 강렬한 기운을 보냈다. (이봐~ 거기 지나가는 키 큰 아줌마~ 날 보라고!) 가던 길을 멈추고 2번의 뒷걸음과 0.5초간 생각 후 고물상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고물상 제일 안쪽 선반 구석에 있던 그림을 집으로 모셔왔다. 이 성모상, 어느 러시아 이콘 장인의 혼신을 담은 마지막 걸작 일지도 몰라~ 그러면서… 집에 와서 먼지를 걷어내고 자세히 보니 프린트 였다! 프린트라 아쉽지만 그래도 좋은 그림이다.

성모상 그림에서 받은 영감으로 우리 엄마를 그린다. 나에게는 온니 원, 완전 특별한 우리 엄마. 내 그림에서 엄마가 안고 있는 아이는 내가 아니고, 엄마에게 완전 소중한 아들이다. 나에게는 오빠. 오빠는 그림처럼 어린아이가 아니다. 암 투병 중인 중년의 총각이다. 아픈 자식은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엄마들에게는 어린아이 같다.

 

배경 - 엄마의 방

엄마의 진짜 방은 주방 같다. 그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엄마를 머리속에서 떠올려 봤을때 엄마의 뒤에는 주방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그림의 주방은 잡지에서 본 광고를 보고 그렸다. 광고는 이렇게 말했다. ‘주방은 주부들의 행복한 놀이터이다.’ 밥해서 가족들 배불리 먹이는 것이 행복한 엄마는 넓고 아늑한 주방을 가지고 싶어하셨다. 나도 그렇고. 나의 로망 주방은 칠면조구이를 차릴 수 있고 8명 이상 앉을 수 있는 식탁이 있고, 좋아하는 색의 수납장과 아기자기한 소품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제법 큰 주방이다. 미국 성탄절 카드나 타샤 튜터의 주방 같은 그런 실내 말이다. 이런 나의 로망이 그림에 반영되었다.

그림을 살펴본다. 여러가지 소품들이 있다.

차를 마실 수 있는 도구들 - 아이들이 학교 간 뒤에나 집안일을 끝내고 먹는 차는 꿀맛이다!

바나나 – 바나나가 비쌌던 시절 엄마는 자식들에게 바나나를 양껏 못 사줘서 미안해 하셨다.

파, 요리하다 만 야채들, 오븐에 칠면조 구이 – 파는 나의 페르소나로서 등장, 오븐 칠면조는 나의 로망이다.

바닥에 있는 장난감들 – 그림 속 아이가 가지고 싶어했던 장난감. 아들이 아프고 보니, 엄마는 아들이 어릴 때 사 달라는 것을 사주지 못해 미안하고 한이 된다고 한다. 

주방 창밖으로 마당 - 마당 있는 집이다. 석류나무와 장독대, 강아지, 병아리가 있다. 석류는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고. 장독대와 작은 동물들은 구수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담당하고 있다. 이 소품들로 하여 엄마가 간절히 비는 가정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오 종 원

문화예술인력 / 피그헤드랩 운영

광주비엔날레를 다녀와서

요즘 비엔날레를 보면 이런저런 소소한 걸림이나 불편함이 있더라도 대체로 재밌게 봤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야 근래 광주와 부산만 보고 있는 상황이니 다른 비엔날레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크게 거슬리는 사건이나 국내 작가 우대 같은 느낌만 없으면 대체로 무난한 주제에 맞춰 무난하게 잘 만들어지는 것 같다. 광주를 방문하기 전 특정 리뷰를 보았고 비엔날레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질문과 함께 이번 비엔날레가 어떤 큰 파급효과를 주지 못하였다는 의견을 본 바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세계가 거대한 유사 위기와 목표를 갖고 있는 만큼 지금의 기능과 방식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이번 비엔날레도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재밌게 봤다. 인상깊은 작품들도 있었고 주제와 소주제도 여전히 유효화 되는 이야기이며 구성에 따라 서사성을 부여한 것이 나쁘진 않았다.

이번 글에는 비엔날레를 보며 대체로 좋았던 작업들에 대해 이야기할 생각이다.(본문 내용 중 저작권은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입장하자마자 먼저 보인 것은 말레이시아 팡록 슬랍 팀의 목판화 작업 <광주 꽃 피우다>였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영향인지 이러한 작업에 좀더 눈길을 가기는 하지만, 어쨌든 타 지역의 문화를 알고 이를 표현한다는 교류의 차원에서 시작해 민중미술이라는 영역을 상기시키고 특히나 근래처럼 세계적 격변의 시대까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업이었다.

예전부터 비엔날레를 보던 중 외국 작가가 한국을 방문하며 느끼는 감상 등을 단순하게 소모적으로, 로컬이라는 것에 대한 존중과 관심이 얕게 느껴지는 경우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는데, 본 작품의 경우 광주라는 지역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느껴져 제법 훈훈하였다. 물론 광주만큼 로컬의 특성이 강한 곳도 많지 않겠지만.

바로 옆에 마련된 타스나이 세타세리 작가의 작품도 주제에 맞게 상당히 인상적으로 시선을 끌었다. 꽤나 거대한 스케일에 묵직한 재료, 그리고 직접적이면서도 심플한 이야기가 보는 이의 발길을 붙잡기 충분하였다. 처음엔 그 이미지가 원초적이고 너무 직접적인 것 아닌가 생각도 하였는데 도상이 유니크하거나 세련된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다른 전시에서 마주쳤을 경우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팡록 슬랍 팀의 작품이 있었기에 구성과 동선은 하나의 서사로 보여지고 있었고 자칫 이런 작품들이 가질 수 있는 부담스러운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두 작가가 속한 비엔날레 파트1의 소제목은 <은은한 광륜>인데, 비엔날레 측 설명을 요약하자면 광주 민주항쟁을 바탕으로 하여 이데올로기 갈등 등으로 인한 전세계에 몰아닥친 갈등에 대한 보고일 것이다. 근래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미중 갈등 등이 있으니 현재 진행형으로 느껴지는 문제이다. 그런 지점에서 다소 직접적인 메시지나 도상을 보이는 작품들이 꽤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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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파트인 <조상의 목소리>도 꽤나 괜찮았다. 기존의 국제 행사에서 이런 타 문화의 역사와 전통 파트가 나오면 적당한 호기심 정도 외에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번 비엔날레의 경우 단순히 이국의 역사와 전통이라는 지점에 묶이지 않더라도 시청각적 흥미나 스토리텔링, 대중적인 시선까지도 잘 잡았다고 생각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압둘라예 코나테 작가와 차이쟈웨이 작가의 작품들이었다.

먼저 압둘라예 코나테 작가의 텍스타일 작품들은 존재만으로도 훌륭했다. 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관객을 내려다보는 거대한 규모에 적과 흑의 강렬한 조합, 그리고 그 안에서 민족성에 대한 이야기까지, 그저 좋았다는 표현 말고는 들지 않았다. 앞서 서술한 것처럼 이번 비엔날레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대적으로 미술 전문가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시선에서도 만족도를 올릴 수 있는 작품들이 꽤나 많았고 본 작업도 그 중 하나였다. 2층 중앙에 설치된 차이쟈웨이 작가의 거대한 향과 카펫 형 작업들 또한 위치라던가 공중에 떠있는 높이 등 작품 설치가 상당히 적절하였다. 당연히 작품성 또한 좋았고.

마타아호 컬렉티브의 설치작업은 마오리족의 전통 직조기술을 활용해, 화물칸 등에서 쓰는 벨트를 큰 크기로 엮어낸 것이다. 또 과달루페 마라비야 작가의 설치작업은 이제는 제법 익숙한 맥시코의 죽은 자의 날이 떠오르는, 뼈로 엮은 듯한 대형 설치작업 군은 처음엔 음산했지만 보다 보면 꽤나 각자의 주장을 하고 있는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이번 비엔날레는 각 관마다 큰 설치군의 작품들을 중앙으로 비치하여 관객들의 시선을 확 끌어당기는 효과를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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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문제에 대해서는, 이건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너무 계몽적 시선으로 관객을 가르치려 하는 경우도 있는데 나는 그것이 썩 좋은 방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번 비엔날레의 경우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 직접적으로 꺼내지 않았다고 본다. 직접적으로 강하게 호소하기보다 담담하게 느껴지는 구성이라고 할까. 여담으로 시립미술관의 네덜란드 파빌리온이 선보인 멸종전쟁의 경우에도 어떤 민감하거나 예민할 수 있는 지점은 잘 피해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재밌게 본 작업은 앨린 마이컬슨 작가의 작품 <패총>으로 굴 껍질을 쌓아 놓은 더미에 뉴욕 수로의 영상을 틀어 놓은 작품이다. 과거 어디선가 뉴욕이 한때 굴이 다양하게 채취되는 곳이었으며 유명한 굴식당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떠올랐다. 또한 에멜리아 스카눌리터 작가의 <아이쿠알리아>의 경우 꽤 아름다운 영상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이 밖에도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작가와 작품은 많았지만 본문의 제한 상 일단 여기까지 하고, 이번 비엔날레에서 매우 만족스러운 지점은 다양한 파빌리온 관들을 보는 재미가 매우 쏠쏠했기 때문이며, 혹시나 추후 방문예정이 있는 이들에게는 날짜를 넉넉히 잡고 방문하기를 권하는 바이다. 사람마다 전시를 보는 속도는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1박 2일로 잡았음에도 미처 다 보지 못하였는데, 그만큼 이번 전시나 파빌리온의 각 관들이 매우 재밌었다고 말하고 싶다.

관들마다 특색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강하 미술관에서 열린 캐나다관을 언급하고 싶다. 서울로 올라가기 직전, <신화, 현실이 되다>라는 전시명과 이누이트라는 단어에 끌려 부랴부랴 보게 된 전시였다. 이누이트 문화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고 그동안 관련 작품들(대체로 색도가 낮고 북극곰이 사람과 어울리는 듯한 그림 풍)을 재밌게 보기도 하였는데, 직접 관람하고 나니 꽤나 재밌었다. 특히 거의 숏츠에 가까운 짧은 다큐멘터리들 묶음이 인상적이었는데, 지금의 이누이트 작가들이 작품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행위가 이누이트 문화권에 큰 생계수단 중 하나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다양한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이 파빌리온 만으로도 전시 기간 중 다시한번 방문하고 싶은 비엔날레였다.

 

잠깐 아쉬운 지점을 말하자면, 광주 KTX역에 내려 비엔날레 본관으로 가는 것은 여전히 불편함의 여정이란 것이다. 부산비엔날레도 그렇고 이미 지역 도착 후 비엔날레 장소까지 가는 것이 한나절이다. 비엔날레를 보러 가는 이들 중에는 시간에 쫓기는 이들도 있을 텐데 비엔날레의 규모도 규모인 만큼 교통편에 대한 고민을 해줬으면 좋겠다. 좀 거슬렸던 것이 큰 돈은 아니지만 셔틀 연계를 유료로 한 것인데, 티켓 구매자에게 프리패스로 제공하였으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지역 곳곳의 관광지나 주요 장소를 소개하려는 경향이 강해질수록 그런 교통편의 같은 것들은 신경 써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또 내려가기 전 비엔날레에 대한 나름의 큰 뉴스를 듣게 되었다. 어쨌거나 잘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한다. 미술상에 이름이 붙을 뻔한 그에 대해, 나는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은 하지만 광주라는 지역의 아이덴티티에선 무리였다고 생각하는 바였다.

김 유 주

쉬어가는 사람

여행의 시작

여행을 하다 어느 여행자가 남긴 글을 본 적이 있다. 출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금 시대에 진짜 모험은 가능성이 적다는 이야기였다. 백번 공감한다. 인터넷이라는 세상이 전 세계를 묶어주는 지금 시대에 아무런 정보가 없는 미지의 세계가 과연 있을까? 그런 미지의 세계에 갈 수 있다고 해도 내가 거기에 갈 용기가 있는지 모르겠다 싶은 걸 보면 나는 지금의 시대에 대한 불만은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이 갖추어지고 잘 짜여진 편안한 여행에서 내가 만족할 거란 생각 역시 들지 않는다.

나는 이 1년 간의 여행을 아주 급하게 계획했다. 그 흔한 여행자 바이블 “프랜*”나 “저스트*”같은 것도 전혀 읽지 않았다. 책 읽을 시간은커녕 첫 여행지의 숙박만 예약하고 떠나왔으니까. 하지만 이런 무계획형 인간에게도 ‘계획’이라는 게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시작해 서쪽으로 돌겠다는 ‘방향’과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돈으로 1년을 여행하겠다는 ‘예산’ 그리고 마지막으로 1년이라는 ‘기간’. 이 세 가지가 우리의 계획이라면 계획이었다. 그 세 가지 외에는 거의 대부분이 하루 전이나 넉넉잡아 이삼일 전에 정해졌다.

그게 무슨 계획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이건 여행의 성향을 정할만큼 중요한 계획이다. 우선, 싱가폴부터 시작해 말레이시아,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인도, 네팔을 하루 2만 5천원의 예산으로 숙식을 해결했다. 숙식뿐만 아니라 쇼핑비용을 포함해 도시 내 교통비까지. 적은 예산 때문에 더 많이 걸어야했다. 택시는 어림도 없고 인도도 없는 도로 갓길을 한 시간 이상씩 걷는 일도 많았다.

싱가폴은 첫 여행지였는데 애초에 유심 없이 오프라인 지도만 가지고 여행을 했다. 싱가폴은 동남아에서도 물가가 비싼 나라라서 밥 한 끼 사먹기도 쉽지 않았다. 버스를 한 번 타려고 해도 앉아서 검색할 수가 없으니 몇 번을 물어봐야하고 눈치도 많이 살펴야했다. 서울에서도 핸드폰 없이 지하철을 못 타는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있다 보면 ‘아 맞아, 나도 스마트폰 없는 시대에 살았던 적이 있었지?’하고 깨닫는 자신을 보게 된다. 물론, 싱가폴은 3박 4일 아주 짧은 일정이었기에 불편하고 힘든 일도 견디는 데 무리가 없었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에서 2만 5천원은 어쩌면 큰 돈이다. 굶을 일은 없었다. 그래도 가끔 술이 마시고 싶다거나 해산물 같은 비싼 음식을 먹고 싶을 때면 로컬들이 가는 호프집이나 식당을 찾았다. 태국에서 알게 된 건데, 로컬 맛집은 네이버 블로그를 볼 필요가 없다. 구글맵은 참고용이고 오토바이가 많이 세워진 집이면 로컬 맛집일 확률이 높다. 외국인 한 명 없는 그런 곳에서는 언어 소통이 어려운 대신 눈빛 소통으로 더 가까워질 수도 있다. 그리고 외국인이 우리뿐이니 관심과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술값도 음식값도 저렴하다.

그러나 물가가 저렴하면 서울 땅에서 누리고 살던 것들 중 대부분을 누릴 수 없기도 하다. 가장 대표적인 게 대중교통이다. 어딘가로 이동하려면 택시뿐이다. 택시의 종류는 많지만 비싼 건 매한가지. 이십대 때 스쿠터를 1년 정도 탔던 나는 태국에서부터 스쿠터를 운전하기 시작했다. 거의 10년 만에 잡아보는 운전대지만 차차 익숙해졌다. 기동력이 생긴 것이다. 아마 예산이 충분했다면 나 역시 택시를 탔을 것이다. 하지만 예산이 없는 탓에 태국에서 베트남까지 스쿠터로 여기저기 많은 곳을 갈 수 있었다. 심지어 ‘경기도 다낭시’라 불릴만큼 한국인 관광객이 많은 다낭에서조차 사람 없이 한적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진짜 이국적인 풍경을 마주할 수도 있었다. 여행을 오래 하다보면 여행지에서 여러 가지 따져보는 기준 같은 게 생기는데 스쿠터를 운전하면서 나는 여행지의 도로 흐름을 더 유심히 보게 되었다. 내가 운전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까지 관심을 갖지는 못했을 것이다. 도로 흐름을 관심 있게 들여다보면 그들의 생활방식과 사회적 시스템까지 엿볼 수 있다. 여행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지는 것이다.

예산 2만 5천원은 숙박과 교통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나라에서 인도는 후진국 같은 이미지가 있지만 실제로는 땅이 넓다보니 이동수단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다. 대신 땅이 넓으니 이동 시간이 길거나 이동할 일이 많아졌고 자연스레 교통비에 대한 부담도 커졌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저렴한 기차 칸을 이용했다. 유명한 여행 유튜버들이 인도의 기차를 영상에 담으면서 이미 인도 기차는 악명 높은 곳처럼 알려졌는데 실제로 인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기차는 인도여행의 꽃이라 불리기도 한다. 일부러 하드한 여행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당연히 가장 저렴한 기차 좌석을 예매했다. 인도 사람들과 ‘뒤섞여’ 20시간 가까이 보내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기차에 오르면 이미 우리 자리에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라는 것은 내 자리에 한 명이 아닌 두 명 이상이 앉아있다는 뜻이다. 인도사람들은 굉장히 친절하다. 그들에게는 “Guest is a face of god"이라는 말이 있다. 이 글에서는 깊게 다루지 않겠지만 낯선 이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기본인 사람들이다.(물론 어느 곳이나 그렇듯 기본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일단 기차역까지만 가면 사람들의 도움으로 어느새 내 자리에 앉아있게 된다. 기차에 자리가 없어도 당황하지 않고 ”여기 내자린데“ 한 마디면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자리를 만들어주는데, 우리나라에서야 ‘내가 예약한 자리에 내가 앉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가장 저렴한 칸에서는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과 자리를 공유하는 일이 흔하기 때문에 내 자리는 1인분보다 적을 확률이 높다. 한 번은 기차에서 옆 자리 청년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너는 외국인인데 왜 높은 등급에 타지 않고 여기 칸에 탔어? 난 여기서 외국인을 처음 봤어.” 나는 너무 당연하단 듯이 “난 돈이 없어. 제일 싼 칸에 탄 거야.” 라고 대답했다. 맞은편, 윗자리, 옆자리 할 것 없이 사람들은 나를 보고 웃었고 그 날 우리는 같은 칸 사람들과 수학여행 온 청소년들처럼 웃고 떠들기도 했다. 내게 질문을 했던 그 친구와는 무척이나 가까워져서 나중에는 그 친구를 만나러 약 40시간을 기차를 타고 달려가기도 했다. 인도 사람들은 기차에서 자연스럽게 친구가 된다. 꼭 외국인이라서 말을 거는 것은 아니다. 덕분에 좋은 친구들도 사귀게 되고 장시간 같이 수다를 떨다보면 몰랐던 사실들도 알게 되고 여러 꿀팁도 얻게 된다. 커튼이 있는 비싼 칸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금은 유럽을 여행 중이다. 유럽에서는 유심이 없이 여행을 하고 있다. 한 달 동안 여행하면서 “유심을 왜 안 사? 얼마 안 해~” 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유럽에서는 우리가 아낄만한 게 많지 않다. 식비와 대중교통비 정도. 사실 유심을 사는 비용이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지만 공원에서 빵을 먹고 두 시간씩 걸어 다녀도 모든 것이 갖춰진 이 나라에서 우리의 여행에 어려움은 거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유심 없이 여행해보기로 했다. 언젠가 이것에 대해서 둘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려움 없이 여행하는 것은 몸은 편하나 재미가 없다.’

우리는 둘 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다. 비용을 아끼려 선택한 길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게 되었다. 태국에서는 택시가 아니라 썽태우를 타고 다녔고, 진짜 로컬 동네 술집에 가서 날이 밝도록 사장님을 포함한 태국인들과 어깨에 손을 걸치고 술을 마시기도 했다. 화려하고 고급진 호텔은 아니지만 저렴한 숙소를 찾아다니다보니 인도 호스트 가족과 춤을 추고 축제를 즐기기도 했고 네팔에서는 현지인의 집에 초대받아 밥을 얻어먹기도 했다.

예산이 더 넉넉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아마 좋은 호텔에서 잠을 자고 관광객이나 돈 많은 현지인들의 외식 코스에서 밥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택시에서 창 밖 풍경을 감상하지 않았을까? 나라면 그랬을 것 같다. 창밖 풍경을 보며 낭만적인 기분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가끔 아니 사실 종종 아주 많이 그러고 싶기도 하고.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더 이상 모험은 없다고 누군가는 말했지만 집 밖을 나서는 순간 이미 모험은 시작된다. 대신 지금은 다른 선택지들이 주어진 것 같다. 조금 더 편하게 여행을 할 것인지 조금 더 불편하게 여행을 할 것인지. 어느 쪽이든 내가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옛날처럼 나침반 들고 여행을 떠난다고 해서 옛날과 같은 여행은 아니겠지만 각자의 취향에 맞게 재미를 쫓아 여행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여전히 매일 밤 늦게까지 쉬지 않고 여행계획을 짜고 수정하고 검색하고 예약하고 공부하는 게 가끔 아니, 자주 귀찮기도 하지만 불편함 마저 없었다면 나는 아마 금방 여행이 지겨워져 돌아가고 싶었을 것 같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냥 매일 이 불편함과 불확실 속에서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 재미있을 뿐이다.

우리는 가끔 한국에서의 여행을 떠올려본다. 휴일에 짧게 떠나던 여행은 왠지 모르게 피곤했다. 충분한 돈을 가지고 짧은 시간을 여행했는데도 늘 지친 채로 급하게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한국에 돌아가면 정말 잘 여행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말로 입을 모은다. 예전과는 다른 모험을 선택할 수 있는 시대. 옛날보다의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선택’이 아닐까?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하는 법. 우리는 이제 각자가 좋아하는 것을 조금 알아낸 것 같다. 어느 도시, 어느 나라로 여행할지 선택하는 것보다 그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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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희 진
노동자

부유하는 청년은

대학을 졸업한 지 만 1년이 되었다. 시간은 그렇게도 성실하게 달려주었다. 그와 반대로 한동안 나는 무기력했다. 어떻게 하면 사회에 필요한 부속이 될 수 있는지, 내가 되어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날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러한 물음에 섣부르게 대답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사실은 어쩌면 그래서 잠시 거기에 기대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나를 규명하려는 괜한 의무감 같은 것이 있었다. 더 거대한 질문이나 대답을 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식의 자만이다. 아마도 튀고 싶었던 게다. 특별함을 바랐었다. 구태여 다른 길을 선택하고, 가끔은 신비함에 감긴 어떤 모습으로 나를 상상했다. 재밌게도 이는 결국 가장 처절하게 고립(된 마음)을 내게 주는 방법이 되었다.

 

대학에서 전공으로 물리학을 택했다. 어떤 명분보다도 앞서 말한 욕구와 관련한 선택이리라 예상한다. 배움이 있었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다하지 않았다. 내게 밀려오는 문장들은 마치 파도와 같아서 들이치는 울렁임과 뿌리치는 수행의 욕구가 내장 속에서 격렬하게 다투었다. 그때 나는 분명하고 적당한 기능이나 역할을 가진 사람이 되고자 했지만, 대체 무얼 가리키고 걷는지 알지 못했다. 불확실성이 지금의 본질이라 하더라도, 나는 이 불안함을 그대로 견디기에 한참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예술을 내 삶에 끌어들였다. 혹은 예술이 내게 다가왔다. 이것이라면 설령 계속 곁에 머물기 힘들다고 해도 나는 참거나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나는 완벽하게 외로운 날을 보냈다. 자신을 찾겠다고 나서는 중에도 주변과 그에 대한 두려움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내 급하게 배우지 않은 어법을 좇아가다 가랑이가 찢어졌다. 받아줄 준비가 되지 않은 이에게 나를 전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뒤에 숨어 그 모습을 훔쳐보았다. 이토록 간사한 방법으로 나는 서 있었다. 얼마 뒤에 밀려온 부끄러움을 참기 힘들었다. 이런 내게 스스로 지쳐 잠시 표현을 유보하는 시기도 있었다. 서투른 내가 갑갑해서 모든 것을 잠시 그대로 두었다. 멈춰선 후에 어렴풋이 흐르는 무언가를 붙잡았다.

 

다들 내게 창작을 어떻게 하게 되었느냐, 그리고 (굳이 이것을) 왜 하느냐고 질문한다. ‘잘’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가만히 고민하다 입을 뗀다. 나를 그곳으로 추동하는 힘이 무엇일까 묻기보다는 하지 못했던 책임을 이제야 다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보다 내가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무엇 때문에 해내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일인칭으로 만들고, 다가오는 것에 응답하는 일 말이다.

 

이렇게 얻은 솔직함이 내게는 매우 소중하다. 나는 가치를 논하기 전에 함께 건널 수 있는 튼튼한 다리를 빚어 세우는 중이다. 이름에서 얻는 편리함을 외면하고, 그 안의 이야기를 살피고 싶다. 분명히 다시 고립은 찾아올 것이다. 아직 가지 않은, 또는 영원히 가지 않을 동반자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그때마다 솔직하게 임하고자 다짐한다. 지금까지 여정에 후회가 없도록. 앞으로의 헤엄을 기대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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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헤드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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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헤드랩 23년 6월 소식

미나리서리단은 고은아, 김시연, 박혜민 세 명으로 이뤄진 프로젝트 팀이다. 이들은 22년 말 졸업전시를 하였고 이 후 피그헤드랩의 비공식 워크샵에 참여하였다. 워크샵의 주요 내용은 직업으로써의 시각예술에 대한 안내와 현대미술에 대한 사례 탐구, 그리고 글쓰기와 이를 행정서류화 하는 노하우 등에 대한 설명이었다.

진행은 전체적으로 피그헤드랩의 기획자인 내가 진행하였는데, 이들이 학생의 입장에서 예술계를 바라보는 시야가 나 때에 비해 더 넓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또 자신의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꽤 잘한다는 것을 느꼈다. SNS 및 정보 채널의 확장이 가진 영향 아닐까 넘겨 짚으며, 속칭 ‘나 때는’이란 표현처럼 갈수록 더 잘 알고 뭔가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들을 만나게 된 것은 내가 그들의 졸업전시를 보게 되면서였다. 당시의 상황을 돌이켜보며 개인별 소개를 하자면 먼저 고은아 작가(겸 메인 기획자)의 경우, 작업 자체도 나쁘지 않았지만 조직을 일구고 일을 진행시키며 리더쉽을 갖추었고 이 과정에서 시각예술을 직업적으로 보고자 하는 나름의 목표도 보였다. 김시연 작가의 경우 즉흥적으로 스케일을 키우고 단숨에 그림을 그려내는 호기로움에, 박혜민 작가의 경우 가지고 있는 매체를 바탕으로 이상적인 도안을 표현해내는 것이 눈에 띄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각 개인이 어떤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 있기보다, 어떠한 환경 내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퍼포먼스를 보이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이 가진 매력들을 알게 되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 그럼에도 그들을 둘러싼 환경과 제한, 그것들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갑갑함을 느끼기도 하였다. 일종의 공감대일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지점에선 학교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는데, 전시를 포함한 관련 콘텐츠 영역에서의 실무에 대한 현실적인 교육이 부재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여전하다. 그러나 꼭 특정 학교나 교육법의 문제이기 보다 전통 계승에 목적을 두는 아카데미라는 것이 가진 태생적 한계일 것이다. 어떤 분야라고 칭하던 자기 브랜드를 갖고 창작활동을 하는 것의 범위가 무척이나 넓어졌고 또 문턱도 매우 낮아져 간다. 많은 이들이 어떤 방식이던 창작의 영역으로 입문하고 그들의 활약이 사람들 눈에 띄기만 한다면 누구나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시대이다. 그러한 만큼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창작의 영역에 뛰어들고 또 무수한 경쟁에 부딪친다. 속칭 산업영역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표현하기에 있어 꼭 경쟁이란 단어가 아니더라도 비교와 영향력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다지려는 것은 콘텐츠 산업의 불가피한 구조이다. 그런 지점에서 다시한번 전통과 과거의 경험을 답습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커리큘럼, 그리고 그것이 가르치는 예술이란 것은 지금 같은 시대일수록 동시대성을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며 그것을 마냥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다. 또 거리를 두고 본다면 결국 아카데미에서 가르칠 수 있는 교양의 영역과 취업준비의 영역이 온전히 분리되지 못하는, 세상의 딜레마가 강하게 적용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옥상 보수공사>는 참여 작가들이 자전적으로 제안한 딜레마와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에서 시작한다. 옥상, 즉 그들에게 지붕이 될 것이라 믿었던 것들이 사실 온전한 것이 아니었고 그것을 스스로 보수하고자 하면서 자신들의 생존 방식을 개척해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미나리서리단이라는 이름도, 사실 워크샵 중 술자리에서 우연히 발굴된 이름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충분한 자생력과 생명력, 진취적인 성장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 또한 절묘하게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이 스스로 기획하기도 하였지만 특히 고은아 작가가 메인 기획자로 전체적인 흐름을 잡고 김시연, 박혜민 두 작가의 작업으로 구성된 본 전시는, 솔직히 내 기대보다 더욱 잘 나왔다. 먼저 김시연 작가는 약 200호 상당의 그림을 일부 세팅한 구도를 제외하고 현장에서 라이브 드로잉으로 선보임으로써 자신의 역량을 감각적으로 표출해냈다. 개인적으로는 그 이상으로 더욱 그림을 확장할 수 있다면 향후에도 좋은 반응을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아직 작가는 순간의 호기를 분출하는 정도에서 작업을 맺고자 한다. 또한 작업에 담겨진 이야기 역시 인간의 믿음이라는, 전통적이면서도 본인이 근래 발견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여 상당한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박혜민 작가의 경우 준비한 5점의 소품(작은 그림)이 있지만 이와 함께 자신이 좋아 하는 소품(피규어 등의 사물)들을 얽고 엮어 하나의 설치로 구현하였다. 물론 소품과 소품을 합쳐 하나의 설치로 구성하는 것은 전시 직전 다같이 아이디어를 모으며 나온 안이기는 하나, 한편으로 작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이 참에 대중과 소통하는 기회이기도 하였다, 다소 즉흥적인 아이디어였다 보니 소소한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그동안 작가가 자신을 가두었던 것 외에 새로운 방식에 도전하였다는 자체로 높이 사고자 한다.

그리고 여기에 고은아 작가 겸 기획자의 꽤 괜찮은 마무리가 삽입되었다. 다양한 초록의 컬러톤 나열, 보통 일반 가옥에서 옥상 마감재로 쓰는 에폭시의 초록색을 모방하는 컬러 패턴이 몇 가지 소개된 다음 그들을 상징하는 캐리커쳐와 미나리 한 단을 같이 설치해 놓았다. 다소 단순해 보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시의 퀄리티가 상승하는 미감적 효과를 가져옴과 동시에 그들이 보수하고 훔쳐오며 가져야 할 푸른 초록 마저 산업구조의 샘플화 된 플랫폼 안에 있는 것임을 생각해보면 아이러니 하기까지 하다. 그런 묘한 유머가 더해짐으로써 전시는 복합성을 띄게 되고, 이것이 ‘팀으로서 함께 고민하고 활동한 전시’라는 마무리를 심어준 한 수라고 생각한다.(미나리는 오프닝 리셉션 이후 회수되었다.)

 

이제 조금 아쉬운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작가들을 만나고 워크샵을 진행하며 직업적이든 작가적이든 취미이든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기 바랬다. 물론 어떤 일이든 동기야 중요한 것이고, 꼭 예술만이 아니라 자기 브랜드를 해야 하는 영역에서는 절대적인 것이기는 하다. 또 작가들이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를, 그럴 이들도 아니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시각예술을 포함한 미디어 콘텐츠의 영역은 점점 거대해지고 무엇보다 스스로가 해당 산업에서 자리를 잡고자 하였을 때, 단순히 내가 미술대학을 나왔거나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해서 창작가라는 정체성을 발휘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에서 나는 이들 뿐만 아니라, 피그헤드랩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작가들이 단순 자신의 작업 뿐만 아니라 더 넓은 영역의 콘텐츠를 인지하고 다루기를 바래왔다. 그래서 워크샵을 진행하며 이러한 지점에선 다소 조심스럽더라도 현실적으로 이야기하였다고 생각한다. 창작을 만류하거나 말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배워오고 바라보며 다소 답답하거나 깜깜하게만 보이는 예술이라는 것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이 과정에서 내 생각이나 어드바이스가 잘 전달이 되었는지는 알 수는 없다.

동기가 있다는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 갈망의 모습으로 증명된다고 생각한다. 유명해지는 것이든 돈을 벌고 싶은 것이든, 하다못해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든 많은 예술가들은 어떤한 행태로든 그런 갈망을 보인다. 처음에는 민망한 모습일 수 있지만 그것이 지속되고 형태와 과정을 이뤄가면, 예술가의 목표가 되고 창작물의 정체성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번 전시, 그리고 피그헤드랩에서 가진 워크샵의 과정에서 일부 보여지긴 하였지만 나는 이들이 더 인정받고 더 관심을 받기 위해서라면 더욱더 노골적이고 갈망하는 모습을 보여 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예술은 내가 원하고 실행한 만큼 보답해주는, 의외로 솔직한 영역이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옥상보수공사 소개

고은아 (전시 기획 및 디자인)

주어진 과제를 해내고 다음 과제를 이어가며 계단처럼 정해져 있던 과정을 마치고 나와 직면하게 된 사회는 마치 꿈에서 깬 거처럼 새롭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현실에서 남들과 비교하자면 스스로가 한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모르면 혼나고 알면 무시당하는 사회 초년생들이 살아남기 위해 타인에 벗어나 보고, 스스로를 고쳐보고, 다시 도전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생기는 고민들과 감정에 집중했다. 3명의 작가들은 이 불완전함을 각자만의 방식으로 연구해 완성된 불완전함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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