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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시각>_ Time Now

<지금 이시각>, 월간지 형식의 월간 아카이브 프로젝트

기획자 : 오종원, 발행 : 피그헤드랩

<지금 이시각> 내 포함된 모든 내용물의 저작권은 각 저자와 피그헤드랩에 있으며 무단 도용 등은 불가합니다. 내용 내 일부 민감할 수 있는 내용은 피그헤드랩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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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시각> 2023년 4월호, 참여필진 : 김유주, 오종원, 이은우, 이채연

​신규 참가자 및 게스트를 환영하고 있습니다.

김 유 주

쉬어가는 사람

여행지에서 친구 만들기

랑카위에서 있었던 일을 써보려고 한다. 랑카위는 말레이시아 북쪽에 위치한 섬이다. 랑카위 공항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가는 길에 펼쳐진 노을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노을로 물든 거대한 하늘과 끝이 보이지 않는 땅 사이에 서 있는 것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동시에 느끼는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그 풍경과 함께한 여정의 시작은 당연히 설렐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주변에 건물이나 빛이 거의 없는 도로변에 있었다. 그래서 하늘이 더 잘 보인다며 들뜬 채로 체크인을 하러 갔는데 건물에 불은 다 꺼져있고 인기척도 없었다. 어둠 속에서 전화번호를 발견했지만 우리가 구입한 유심은 전화가 되지 않았고 그 당시 우리는 그 흔한 whatsapp(우리나라의 카카오톡과 비슷한 앱)도 모르고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근처에 있거나 잠들어있을지도 모르는 주인을 목 놓아 부르는 것뿐이었다. '헬로?' '헤엘로오-!!' 열심히 헬로를 외치며 문을 두드렸지만 숙소는 조용했고, 지쳐버린 와중에 우리는 숙소 옆 공터에서 푸드트럭 하나를 발견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에 있는 그 푸드트럭이 수상해서 이런저런 스릴러물의 소설을 써보기도 했지만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던 우리는 다가가 뭐라도 알아보기로 했다. 우리는 예약한 그 숙소가 운영되고 있는 곳이 맞는지 물었고 제대로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기다리면 주인이 올 거라는 대답을 들었다.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는데 배에서 진동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래, 일단 배부터 채우자.. 푸드트럭 사장님은 스무 살쯤 되었을까 싶은 어린 청년이었고 내성적이지만 우리를 잘 챙겨주었다. 배낭을 메고 서서 음식을 먹으려는 우리를 위해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를 간이테이블을 후다닥 갖다 주었고 우리는 드디어 편안히 앉아 식사를 핑계로 30분은 쉴 수 있었다. 이렇게 좋은 청년들을 의심했다니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급한 대로 허기를 달랜 우리는 다시 숙소 앞에 서서 주인을 기다렸다. 근처에 불빛이 없어서 어둠은 더 깊게만 보였고 우리도 어둠속에 함께 묻혀 버렸다. 어둠에 익숙해질 무렵 주차장으로 차가 한 대 들어섰고 기대감에 부푼 우리는 짐을 챙겨 달려갔다. 하지만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우리를 지나쳐 객실로 들어갔다. 다른 객실의 손님이었던 것이다. 실망스럽긴 했지만 이대로 푸드트럭마저 문을 닫고 주인이 안 나타난다고 해도 그 손님들이라도 있으니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서로를 위로하며 다시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 손님이 어둠을 뚫고 다시 우리에게 다가왔다. 대머리에 덩치도 크고 영화에 나오는 ‘흑형’의 포스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약간 겁을 먹었지만 티를 안 내려 간신히 애쓰는 우리에게 그가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지 물었고 안 되는 영어로 상황을 설명했더니 바로 주인에게 전화를 건다. 원래 이 나라의 억양인건지 기분 탓인지 그 손님은 주인에게 전화해 혼내듯이 말을 쏟아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통화가 끝나고 곧 올 거라며 우리를 안심시켜주던 손님과 주인이 올 때까지 어둠속에서 대화를 나눴다. 그는 싱가폴 사람으로 몇 개의 음반을 낸 디제이이고 랑카위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파티 기간 동안 중국인 아내와 이 숙소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일하는 장소를 알려주며 시간되면 다음에 놀러오라고 초대도 해주었다. 체격이 크고 인상이 워낙 강렬해 처음엔 무서웠지만 대화할수록 다정함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주인은 한참 후에야 나타났다. 허술해 보이지만 인상이 좋은 청년이었는데 불을 켜는 스위치를 찾다가 우당탕, 방 키를 찾다가 우당탕 하고는 머쓱하게 웃으며 미안하다고 바로 방 키를 건네주었다. “여권은 필요없어요?” “늦었으니 그냥 일단 들어가요.” 푸드트럭 청년과 숙소 싱가폴 형님(왠지 이 표현이 잘 어울린다)의 친절로 마음이 풀어진 우리는 젊은 사장님의 실수도 웃으며 넘어갔다. 
드디어 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방문을 열고 들어가 종일 꾀죄죄해진 몸을 씻고 잠옷으로 환복도 마쳤다. 그리고 속옷과 양말을 빨기 위해 욕실로 다시 들어섰는데.. 이게 뭐지? 거머리처럼 생긴 게 욕실 바닥에 있다. 개인적으로 가늘고 길다란 생명체를 무서워하는 나는 보자마자 몸이 굳어버렸다. 인터넷으로 거머리 퇴치법을 검색해 주인에게 소금 한 사발을 얻어와 뿌렸지만 끄떡없었다. 고민 끝에 친구가 여행 전 선물해준 호신용 스프레이를 뿌렸다. 그런데도 죽지 않는다. 주인에게 말했더니 해로운 녀석이 아니라며 착한얼굴로 웃는다. 내 마음엔 해롭다고 이친구야..... 결국 살충제를 뿌리고 욕실 문을 닫고 방을 나왔다. 테라스에 앉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데 주인이 다가와서 체크인 일이 미안하다며 괜찮다면 술을 한 잔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 뭐 한 잔 정도야 괜찮겠지 해서 방 앞 테라스에 앉아 술을 홀짝이며 주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주인은 파키스탄에서 왔는데 삼촌이 지금의 게스트하우스를 물려줬고 자신은 해변 가에 아이스크림 가게를 하면서 투잡을 뛰고 있다고 했다. 아직 이십대 후반인 그 친구는 열정이 가득한 친구였다. 그에 반해 허술한 면이 아주 많아서 과연 이 게스트하우스가 오래 유지될지, 다음에 오게 된다면 이 친구를 볼 수 있을지 불확실해 보였다. 우리는 하늘에 별과 달을 조명삼아 꽤 오랜 시간을 떠들었다. 

그리고 우리의 은인 싱가폴형님과 함께 우정을 다지며 드라이브도 하고 형님의 친구가 운영하는 바에서 맥주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 낯선 이와 밖에서 술을 마신다면 나 역시 당연히 걱정을 늘어 놓을텐데 그 땐 외국인 친구와 젊음을 공유한다는 느낌이 좋았고 자유로움에 취해있었다. 수많은 낯선 이들과 함께 어울려 맥주잔을 부딪치고 되도 않는 영어로 웃고 떠드는 게 그 때는 너무나 특별한 순간

처럼 다가왔고 흥분됐다. 싱가폴형님과는 형동생 마이브로를 외치며 서로 맥주를 한잔씩 주거니 받거니 했고 내성적인 파키스탄 숙소주인은 계속 우릴 따라다니며 챙겨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참 쉽게 움츠러들고 쉽게 경계하고 쉽게 긴장을 풀었던 것 같다.

다음날 우리는 저녁까지 숙취로 고생했다. 그리고 친구와 나는 우리가 너무 경각심을 잃은 것이라며 반성하고 다시는 현지인과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처음 본 낯선 이들을 어떻게 믿고 이런 짓을 했을까라며 자책도 많이 했다. 그들이 좋은 사람이라서 다행이지 여자 둘이서 무슨 일이라도 당했으면 어쩔 뻔했냐고 서로를, 그리고 자신을 혼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은 잘못이 없다. 우리가 부주의했던 거지. 부주의했고 경험도 없었으며 분별력도 없었다. 다음날 우리를 걱정해서 찾아온 그들을 외면하고 숙소를 몰래 빠져나왔던 우리가 정말 어리석었다. 받은 환대에 대해서는 감사를 표하고 거절은 진심을 담아 조심스럽게 상대방에게 전했어야 했는데... 그 후 한동안은 낯선 이들과의 대화를 피했다. 하지만 그렇게 폐쇄적으로 여행하는 것은 여행의 만족도를 떨어뜨릴 뿐이었다. 그래서 여행을 풍요롭게 하는 특별한 경험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기 위해 나는 다음의 규칙을 만들었다.  

1. 낯선 이와 둘만 있는 장소는 피할 것. 
2. 함께 걷거나 이동하기 보다는 한 자리에서 대화할 것.
3. 2명 이상일 경우 서로 낯선 이가 아닌 사전에 알고 있는 일행들이라면 피할 것
4. 술은 반드시 직접 사서 마실 것
5. 스킨십이나 대화에 불쾌한 것이 있다면 바로 표현할 것

시간이 흘러 지금은 여행을 하면서 마음 맞는 현지인이나 외국인들과 술잔을 부딪히는 요령도 생기고 꼭 술자리가 아니더라도 우정을 쌓고 잘 헤어지는 요령도 생겼다. 뭐든 처음엔 서투른 법. 그 날의 실수와 자책을 간직하며 여행 내내 선을 넘지 않고 진심을 나누려 노력한다. 여행지에서 문화, 인종, 국적 등 다양한 배경을 떠나 함께 대화하고 웃으며 순간을 함께 공유하는 것은 여행의 기쁨 중에 하나이자 소중한 추억이니까. 글을 쓰다 보니 우리와 함께 추억을 나눈 모든 친구들이 스쳐지나간다. 모두에게 감사하다. 건강하고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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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채 연

창작가 / 관심 받고 싶어 하는 주부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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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오후 카페에서 커피 한잔 

요즘 나의 낙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과 빵을 먹는 것이다. 커피는 대개 따뜻한 라떼로 마신다. 라떼에는 커피의 향과 우유의 고소함, 우유거품의 부드러움이 어우러져 있다. 맛도 맛이지만 일상에서 속상한 마음을 달래 주고, 여유를 주는 기호식품 같은 것이다. 
집에서 뭔가 시작해볼까 하면 당장 처리해야 할 집안일이 보이고, 유튜브와 웹툰이 유혹의 손짓을 한다. 요즘은 사춘기가 접어 든 아들과의 트러블도 잦아져서 마음이 유쾌한 날이 별로 없다. 그래서 마음의 상처를 입고 종일 침울해 지기도 한다. 그 기분 삭히려고 알고리즘이 던져주는 영양가 없는 유튜브를 보게 되고, 해야 할 일을 미루게 된다. 일을 하더라도 집중이 잘 안돼서,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악순환이다. 핑계 같지만 말이다. 
이럴 때는 집을 뒤로 하고 카페로 간다. 속상한 마음을 라떼 한잔이 부드럽게 감싸고 포근하게 녹여 준다. 커피도 마시고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고, 생각도 정리하기도 한다. 커피잔을 잡아 올린 나의 두 손이, 언젠가 TV에서 본 듯한 장면 - 낚시배에서 대어를 잡아 올린 어부의 ‘손’ 같다. 흡족한 느낌 이랄까? 이렇게 만족스럽지만 음료만 마시면 좀 심심하다. 그래서 빵도 주문했다. 같이 먹으면 조화롭다. 빵의 향을 맡고, 씹고, 커피를 마시고, 커피에 찍어 먹고, 녹여 먹고 한다. 이 탄수화물 덩이는 진짜 마약이다. 끊어 낼 수가 없다. (TMI: 빵이 좋아서 베이커리 일을 하기도 했었다.) 커피와 빵을 한 70%정도 먹었으면 그림을 그린다. 나머지 30%는 그리면서 먹고. 

커피 한잔 값은 벌자~~그러면서 그린다. 이렇게 하면, 일할 때 오는 온갖 유혹을 물리치는데 도움이 된다. 카페에서 그린 그림들이 바로 돈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 했으면 커피 마실 자격이 된다 하면서 스스로 위로한다. 
가끔은 다른 테이블의 대화를 듣기도 한다. 들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들리는 것이다. 진짜 카페에 주로 가는 시간은 오후 2시쯤 이 시간대는 육아에 한창인 엄마들이 많이 온다. 들리는 대화 중 대부분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부동산, 새로 생긴 가게 같은 동네 정보다. 그 중에서 학교와 학원정보는 귀를 쫑긋, 집중해서 들으려고 한다. 맛집과 학원정보는 중요하다. 
이 시간이 좋다!!!! 요즘 나의 낙이다. 한시간 반짜리 자기만의 방? 그런 것 아닐까 한다.

Ps 글은 혼자 카페에 간 내용인데 그림의 커피잔과 포크를 보면 두 명인 것 같다. 그렇기는 하지만 카페 그림이니까 글과 매칭된다고 보았다. 테이블에 놓은 커피잔, 접시, 책의 구도가 인스타 감성사진 같은 느낌이라 그려 보았다. (아닐지도…혼자만의 착각일지도..) 힙한 것과 거리 가 먼 사람으로서, 요즘 느낌 한번 내어볼까 하는 그런… 의도?
 

이 은 우
그림 그리는 사람 / 본업과 부업 사이 어딘가에서 표류 중

새로운 형태

몇 년 전 정말 감명 깊게 보았던 영화 <어느 가족>에서는 생계를 위해 도둑질을 하는 두 부자(오사무와 쇼타)처럼 보이는 인물이 나온다. 그리고는 유리라는 여자아이를 만난다. 길가에 혼자 나와 있고 길을 잃은 듯한 아이었는데, 오사무는 유리를 부모에게 데려주기로 한다. 그러나 집 안에 있던 유리의 부모는 마치 유리를 짐짝 취급하는 폭언을 하며 싸운다. 이를 본 오사무는 유리를 당분간 자신의 집에 데리고 있기로 한다.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들끼리 한 곳에서 살아간다. 아빠, 아들, 딸이라 부르지 못할 뿐이지 그럼에도 이들은 가족이다. 법적인 효력이 없는 것이지, 가족이었다.

연락을 취하는 방식, 말을 전달하는 방식 등 이 모든 것이 그동안 해왔던 나의 방식과 다르다. 이 다름을 인정하고 가야 하는지, 혹은 변화를 조금이라도 요구해야 하는지 늘 이 지점이 어렵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오랜만에 보았던 참 참신한(?) 영화다. 중국 국적의 부부는 코인 세탁방을 운영하고 있고, 딸 한 명이 있다. 딸은 여자친구를 엄마(에블린)에게 공식적으로 소개해 주고 싶으나 에블린은 바쁘다는 핑계로 인정을 하지 않으려 한다. 남편 웨이먼드 또한 할 말이 있다고 그녀에게 대화를 요청하지만 이마저 그럴 시간이 없다고 뿌리친다. 그는.. 이혼 신청서를 들고 있었다. 세금 문제가 있어 영수증을 끊임없이 정리하며 바쁘게 움직이는 에블린은 남편, 아버지와 함께 국세청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건이 전개된다.

내 기준에선 참 여러가지 장르를 섞어놓은 듯한 정신 없는 영화였는데,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는 대목들이 꽤 있었다. 각자의 꿈을 접으며 시작한 결혼생활에 대한 불만, 엄마에게 존재 자체로 인정받고 싶은 딸의 욕구, 존중받는 남편이 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이 모든 생계를 끊임없이 책임져야 하는 엄마의 마음. 갓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 나에게 엄마가 너무나 안타까워지기도, 그리고 짝에게 잘 해줘야지 라는 마음이 들기도 한 그런 복잡스러운 영화였다.
영화의 세계관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초기 도입부는 감독들이 등장하여 관람객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심지어 N차 관람객들을 위한 긍정의 말을 전한다.) 도입부는 단순히 미국으로 이주한 중국 사람들의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마블의 어벤져스보단 살짝 덜하지만 멀티버스 세계관을 움직이고, 우주, 공상과학 등의 요소를 접목 시키며 심지어 화려한 쿵푸 액션과 함께 영화는 빠르게 엽기적으로 진행된다. 가장 신박했던 장면은 돌들이 나와 자막으로 이야기를 하던 장면이다. 보다 보면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지? 하는 대목들이 참 많다. 평범하지 않은 행위를 해야만 다른 차원(버스)로 점프할 수 있고, 여러 등장인물들과 싸운다. 블랙홀을 만들어낸 조부 투바키와의 싸움이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데, 마치 킹스맨1을 연상하는 듯한 B급 영화 연출과 액션 장면은 아주 기괴했다.

그리고는 가장 심금을 울린 이야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Be kind”.

“Please, be kind. Especially when we don’t know what’s going on.”
“제발 다정함을 보여줘. 특히 뭐가 뭔지 모를 땐.”

다정하고, 따뜻하고, 온화하고, 어떻게 보면 현실은 이런 것을 멍청하고 손해 본다라고 단정짓지만, 결국은 이러한 마음이 사람들 간의 불화・불신을 막는 가장 근원적인 매개라고 보았다. 타인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기까지 날 서 있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요즈음, 단비같은 말을 건네주는 영화였다. 이렇게 이 영화로 마지막 3월을 장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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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종 원

문화예술인력 / 피그헤드랩 운영

9평 사무실로 전시장 시작하기

본문은 4월 진행되는 성동문화포럼을 위해 작성하는 글입니다. 저는 피그헤드랩 운영과 관련하여 발제를 제안 받았고, 어떻게 시작하고 운영하고 있는지, 또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가볍게 정리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제목을 먼저 정해 보내고 나니, 뭐 “주식 얼마로 시작하기”, ‘부동산 얼마로 시작하기”이런 투자 서적 제목이나 유튜브 썸네일 느낌이 나는 것을 느낍니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문화공간을 차리거나 운영해보는 것을 누군가에게 권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피그헤드랩은 성동구 장안평중고차시장에 위치한 전시 공간입니다. 9평이라고 해 놨지만 실제 창고나 선반 등을 제외하면 6평 정도로 줄어듭니다. 월세는 관리비를 포함하여 대략 몇 십 만원 정도인데 시중의 상가 월세보다는 훨씬 싼 편입니다. 건물이 오래되어서 그런 것이겠죠. 그리고 전시를 개최하면 아티스트피 명목으로 한 십여 만원 더 쓰게 됩니다. 이제 3년차이니 계산해보면 벌써 1500여만원 이상은 쓴 것 같습니다. 현재까지 수익구조는 없는 상태라 전체 제 금액으로 지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문화공간을 왜 하게 되었는가 묻는다면, 거시적 관점에서는 내가 사는 지역에서 문화예술의 꽃을 피우고 많은 이들의 뜻과 마음이 오갈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하기 위해서라 말할 것입니다. 예술가들의 활동가치는 결국 그것들이 어떠한 형태를 이루고 보여 짐을 띌 때 효과를 발휘한다고 생각합니다. 꼭 이해하지 못할 그림이 하얀 벽에 걸리는 것 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가 와서 공간을 꾸미고 누군가가 그것을 보러 오고, 둘이 셋이 되고 넷이 되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우연히 그 광경을 누군가가 보고 발걸음이 오가다 보면 그 공간과 그 지역에는 온기가 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사람과 생각이 소통하는 것 자체가 문화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공간을 열기 전까지, 예술가이자 독립기획자로 다소 노마드 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좋은 기회를 얻어 다양한 지역에서 거주 및 전시를 할 기회를 얻었고, 덕분에 많은 문화공간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앞서 한 말처럼, 각자의 사유가 어찌하던 결국에는 당장 지금이 아닌 훗날의 긍정적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 헌신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한 공간들은 당시의 저와 같은, 다양한 기회를 찾아 돌아다니는 이들에게 어떤 기회의 장이 되거나 최소한의 휴식처의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실제로 지역민들이 좋아해주고 다양한 문화적 교류를 할 수 있는 그런 살롱 역할을 해주기도 하였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이런 공간들이 점차 사라지거나 축소되고 있습니다. 사실 어쩔 수 없는 것이 이런 공간들은 대체로 지원금이나 지원사업에 의지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지원금이 끊기면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공간이 없어진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뜨거웠던 시간, 우리가 이 지역에서 어떤 미래를 꿈꾸었던 기억이 사라지는 느낌 같은 것이죠. 그때 저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공간을 열려면 오래 버틸 것을 기본으로 생각해야 겠구나.
피그헤드랩이 성동구에 자리잡은 것은 우연이긴 하였습니다만, 장안평중고차시장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은 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내가 어느 기간 이상 감당 가능한 월세. 그러한 지점에서 독보적인 장점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사실 공간을 열기 전 문화예술 거점이 이미 마련된 지역(을지로나 성북 등)을 추천받았고, 만약 다른 곳에 자리를 잡게 되더라도 월세 때문이라고 말하지는 말라는 조언도 들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한 것이, 문화공간이 현실적인 문제로 절박해 보이면 불안감을 주고 그 가치가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월세 때문에 이곳에 자리잡았다 당당히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피그헤드랩은 넓고 쾌적하거나 깨끗하고 아름다운 곳이기 보다, 가늘더라도 길게 유지하여 참여한 사람들의 온기와 시도들을 오래 남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이런 마음으로 운영하고 있는 피그헤드랩이 어떤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는지 다음과 같이 소개할 수 있겠습니다.

 

먼저 피그헤드랩은 2018년부터 팀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예술의 가치와 정체성에 대해 논하려는 것은 아니나, 제가 창작과 기획을 병행해오며 하던 고민은 공적 위치에서의 예술의 기능이었습니다. 특히 공공기금을 바탕으로 창작을 하게 되면서 그 생각은 강해졌는데, 우리가 공공성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창작과 그것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제안을 위해 예술가들과 팀을 꾸려 활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2020년까지 3년간 독립기획의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크게 세대와 도시를 주제로 활동해왔습니다. 미술작품으로 전시회를 꾸미기도 하였지만, 취재와 에세이를 모아 책으로 제작하고 재건축 지역을 방문하여 게릴라 적인 창작을 시행하기도 하였으며 서울시의 사업을 수주하여 특정 지역을 바탕으로 인터뷰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적도 있습니다. 여기서 제일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렇게 진행한 프로젝트의 과정과 결과물들은 온라인을 통해 전체 공개하였다는 것입니다. 
3년간 팀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개인적인 다양한 이유와 처음에 설명한 강대한 대의를 바탕으로 문화공간 피그헤드랩을 개관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피그헤드랩은 시각예술을 바탕으로 하는 전시와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시각예술 전시의 경우에는 1년에 한 번씩 진행하는 공모를 통한 공모지원전과, 초청기획전으로 구성되고 있습니다. 공모전의 경우 공모를 통해 3~4명의 작가를 선발하고 이들과 몇 달간 워크샵 및 기획과정을 거치며 전시를 제작하는 것입니다. 초청 기획전의 경우 주변에 눈여겨본 작가를 초대하여 연구의 과정을 거치며 전시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작가들을 초대하면 아티스트피를 지급하는 것이 제일 좋으나, 피그헤드랩은 제 개인 사비로 운영하다 보니 아티스트비를 제공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몇 번의 시도와 협의 끝에 지금은 작가의 포스터를 제작해주고 이를 바탕으로 스티커를 제작해주며, 온라인으로 홍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저희 공간의 규칙은 오프닝 리셉션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인데 그럴 때 와인이나 다과 등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렇게 저렇게 들어가는 돈으로 치면 현금으로 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대관전을 진행해야 어느정도 월세라도 채울 수 있고 실제 대관 요청도 꽤 있기는 합니다. 100만원 200만원 이야기가 들려오면 솔깃하기는 하나 일단 거절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오히려 대관을 요청하는 작가가 있다면 따로 이야기를 진행한 다음 함께 연구시간을 가지며 기획전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피그헤드랩은 함께 고민하고 실험하는 곳이기에 그렇다고 답변은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대관을 받기 시작하면 어떤 편의에 익숙해질까 조심하고 있습니다. 2020년 12월부터 전시를 시작하여 바로 직전까지 총 14개의 전시, 또 2개의 외부 기획을 진행하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소개할 것은 커뮤니티인데요, 사실 피그헤드랩에서 제일 중요시 여기는 지점입니다. 피그헤드랩에서 공모를 통해 작가를 선별하고 나면 저는 이야기하곤 합니다. 꼭 여기서 개인전을 할 필요는 없다고. 만약 여러분에게 더 좋은 기회, 더 크고 넓은 공간에서 전시기회가 생긴다면 오히려 그쪽에 더 신경 쓰라고. 다만 제가 바라는 것은 우리가 함께 고민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모여서 미래를 논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한다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피그해드랩은 지금까지 총 3번의 워크샵 프로그램을 진행하였고 현재 4번째 워크샵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창작을 한동안 멈췄던, 혹은 어떤 기회가 필요한 예술가’를 모집하여 진행하였기에 포트폴리오 만드는 법, 전시 기획서 만드는 법 등을 가르치곤 하였습니다. 그러다 이제 3년차쯤 되니, 이젠 지원해주는 작가분들도 어느정도 경험이 있는 분들이고 저도 수준 있는 패널을 초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대화’라는 것 자체를 더욱 강조하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서 누누이 이야기한 데로 피그헤드랩은 사람들의 방문을 통해 살아있는 소통이 있었으면 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2주에 한 번씩, 돌아가며 주제를 선정하여 그것에 맞는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식적인 워크샵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분기별, 혹은 좋은 시기를 택해 사람들을 모아 파티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앞서 이야기하였는데, 피그헤드랩 전시 참여 작가들이 반드시 오프닝리셉션을 해야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죠. 손님을 초대하고 찾아온 관객들에게 감사인사를 나누며 같이 다과라도 할 수 있는 그런 자리를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월간 아카이브를 소개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 제일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프로젝트인데요, 예술가 및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하여 아날로그 형식의 잡지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경우 제일 강조하는 것이 바로 지속성인데요, 저도 창작을 해왔지만 현대 예술가들이 가진 큰 딜레마 중 하나는 창작이란 것의 소모속도가 무척 빨라졌다는 것입니다. 특히 요즘에는 미디어가 발전하며 다양한 볼거리가 늘어나고, 결과적으로 1인 콘텐츠가 쏟아지듯 생산되고 또 쏟아지듯 가벼워진다 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소 아날로그한 시점으로 돌아가, 한 달에 한 개씩이라도 각자의 이야기를 꾸준히 쌓아보자 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인쇄를 할 수 없으니 온라인으로 게시되는데 그러다 보니 덕분에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언젠가 때가 되면 지면으로도 인쇄를 하고 싶지만 아직은 먼 훗날일 것입니다. 또한 현재 참여 필진들은 원고료를 일체 받지 못하고 있는데요, 제가 한번씩 모여 식사라도 제공하려 하지만 이걸로 어떻게 충당이 되겠습니까. 막연한 먼 미래를 약속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매달 소중한 이야기를 담은 콘텐츠들이 모여 질 때마다 복잡한 마음을 감출 수는 없습니다.

사실 본문은 두번째 원고입니다. 첫번째 원고는 다소 현실적인 이야기의 비중이 커서 공간을 운영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나 아쉬움, 그리고 그 공간이 위치한 지역이 더욱 발전하였으면 하는 마음 등을 담았는데, 아무래도 이번 포럼의 취지와는 다소 다른 것 같아 다시 쓰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문화공간을 운영하는 것은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처음부터 언급한 데로 애초에 영리적인 구조를 취하기도 어렵고, 또 그럴 목적으로 피그헤드랩을 꾸린 것도 아니니 한번씩 현타라는 것이 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니 피그헤드랩은 저 혼자 운영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함께 하던 작가들은 이제 피그헤드랩의 식구가 되어 전시가 열리면 사진을 찍어주고, 보수할 일이 있으면 같이 공구를 들어주며, 하다못해 저렴한 와인이라도 한 병 들고 와서 같이 축하해주고는 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농담으로 피그헤드랩 바닥 타일 몇 개씩 지분이 있다고 말하고는 합니다. 피그헤드랩에 오는 이유야 각기 다르겠지만 이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게 모두의 마음일 것입니다.
이 원고를 쓰는 오늘도 작가들과 피그헤드랩에 모여서 전시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보여지면 좋겠다, 저런 방식이 연출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렇게 잘 꾸민 전시를 사람들과 함께 감상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는 관객들 한 분 한 분이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고 함께 공감하였으면 좋겠다. 그것이 전시를 만드는 이유이고 문화예술에서 활동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지역에서 어떠한 공간을 꾸리는 사람의 마음일 것입니다.

피그헤드랩
www.pigheadlab.com

피그헤드랩 23년 4월 소식

황문익 개인전 <REDLIGHT>

황문익의 개인전 <레드라이트>(이하 개인전)의 포스터와 제목은 교각을 의미한다고 한다. 다리나 도로 밑에 위치한 교각. 그것은 어떤 클리셰와 연결될 것이다. 거대한 탑, 큰 남근의 형태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수컷으로서 취약함으로 인해 질투하거나 증오하는, 혹은 매료되는 현상으로 얘기할 수 있겠다. 그래서 작가의 전시에 대한 글을 작성함에 있어 고민이 적지 않았다. 결국 세상의 풍파를 겪고 있는 작은 성기의 수컷의 이야기는 무거운 삶의 대한 고민과 자기연민의 이야기를 관객으로선 그저 건조하게 위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이란 결국 인생에 대해 논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예술가의 고달픈 삶과 고민들이 주가 되는 경우가 꽤나 많다. 그러다 보니 작품을 관찰하거나 고민하는 입장에서는 작품 하나하나마다 예술가들의 고난과 무게감을 매번 의식하는 일은 피하고 싶을 때도 적지 않다.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하였을 때이다. 그의 작업실은 동거인과 사무실을 같이 쓰고 있었는데, 그 한 켠에 작업물들이 우겨 넣듯 쌓여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미술에 관심이 있다면 익숙할 석고상들이 보인다. 비너스나 아그리파 같은 오리지널이 있는 대상을 면 분할하고 종이(혹은 플라스틱)로 다시 재조립한 것이다. 거기에 원래의 질감을 흉내내기 위해 다소 과장된 리터치가 들어갔는데, 연필 뎃생같은 느낌으로 아날로그한 명암을 넣은 작업이었다. 작가에게 물으니 조금 민망한 듯 웃어 보이며 과거부터 어디 내보이진 않고 쭉 쌓아 놓은 작업들이라 내게 소개하였다.
그러면서 지난 전시의 작업들은 당근마켓을 통해 거의 거저로 내놓았고 그게 또 팔렸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기억하기론 그 때의 작업들은 불상의 형태를 재구성한 입체 작업이었다. 그때 생각하기를, 주제 자체는 조금 식상할 수 있겠으나 사람들이 참 좋아할 만한 작업이라고 생각하였다. 작가는 의외로 평면회화를 전공하였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얽매이는 어떤 전통적인 과정들(아마 보수적인 한국식 도제 교육방식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전통적으로 설정된 재료사용 기법 등)에서 고민을 하다 결국 지금의 방식으로 도착하였다고 들었다. 형태의 단순화와 면 분할을 통해 재 구축된 작업들은, 작가 앞에서도 어떤 대상을 분해 및 재구축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보이는 전통적인 양상이었다. 마찬가지로 그러한 과정을 거친 대표적인 인물들이 그렇듯이, 나는 자연스럽게 그가 초(超) 형태를 지향할 것이며 미래주의적인 조형의 세계로 나아갈 것이라 생각하였었다.
그리고 결론은, 이번 전시에 나온 작가의 작업들은 그런 내 기대와는 달랐다. 일단 이번 전시에 설치된 작업들은 앞서 설명한, 그의 사무실 한 켠에 쌓여 있었던 그의 과정작들이었다. 과정작이라 하기가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짧지 않은 시간 그가 준비하고 공개하지 못했던 작업들이니 그렇다고 부를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것들은 하나의 큰 설치작업으로 엮여 있었다. 거대한 교각의 형태가 천장까지 치솟아 있고 그 밑으로 자신이 만들어온 작업들이 쌓여 있었다. 거대한 군집 같은 형태이다. 다시 그 앞, 1m정도 되는 지점에 상대적으로 작은 한 개체가 서있다. 이것은 작가의 아바타일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처음 설치 당시에는 작가의 아바타는 교각과 자신의 작업물들을 ‘마주보는’ 형태였었는데, 전시 기간 중 아바타를 180도 돌려 ‘뒤돌아보는’ 형태로 바꾸었다. 그리고 다시 그 밑으로 깔리는 교각의 그림자. 작가는 이번 기회를 통해 자신의 작업물들을 교각의 일부, 거대하게 솟아오른 세상의 일부로 상정하고 그것을 마주보거나 뒤돌아보고 있다. 자신의 작업세계를 객관화하고 등진 것이다.
예술가들은 객관적이기 힘들다. 예술가에게 작업을 분리시키려는 시도는, 마치 “당신은 왜 살고 있습니까?”라는 질문과도 같은 것이어서 당혹스럽게 만들기 좋다. 예술가들에게 창작은 대체로 본능적이 행위이기에, 결국 분리시킬 수 없는 어떤 들숨과 날숨 같은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창작을 분리시키고 객관화 시키려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더욱이 그 창작의 기억들은 다시 작업으로 돌아와 거대한 교각, 거대한 성기의 밑에 존재하고 있다. 즉 자신의 대척점의 위치에 창작이란 것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창작이기보다 그가 배워온 아카데미즘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미술의 경우 상당수 아카데미의 교육을 통해 각자의 창작 본능을 전시라는 형태로 이루게 된다. 모든 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대부분의 이들이 그렇다. 황문익 작가나 나의 세대일 경우, 석고상을 눈앞에 두고 뎃생을 배웠었다. 이것은 전통적인 의미의 도제방식의 교육관으로 자리잡아 왔었고 요즘 시대에서는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한 기술을 익히면, 인내심을 가지고 손을 훈련시키면 우리는 창작을 통해 어떠한 세계로 갈 것이라고 믿은 적이 있었는데 그러기에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화하였다. 예술 뿐이겠는가. 유아교육, 입시풍조가 다 마찬가지 아닌가. 더욱이 예술의 경우에는 독특한 개성, 범상치 않은 성장기가 스타성을 만드는 만큼 획일화된 교육과는 애초에 거리가 있었던 일이다.
그의 아바타가 교각, 세상이란 거대한 탑 밑에 쌓여 있는 그동안의 작업들과 두었던 거리는, 그가 배워온 어떤 방식에 대한 거리감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반드시 아카데미만의 문제를 가르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예술가로서 살아오는 방식, 애초에 예술가라고 세상에 자신을 인지시키는 그 방법들이 하루가 지날수록 옛 것이 되어간다. 미디어가 찬란한 지금 시대에,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창작을 하는 방식이 이제는 너무나도 아날로그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가 그 작업들을 쌓아온 시간들이 결코 헛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편으로 이번 전시는 그가 믿고 신념해온 ‘나아가는 방식’에 대한 의문이며 어떤 복잡한 감정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정리한 나의 생각들이 온전히 작가의 생각과 맞을 지는 모르겠다. 사실 그렇다면 이건 꽤나 슬픈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첫 개인전이라 한다. 그동안 전시는 꽤 해온 것으로 알고 있지만 본격적으로 개인전이라 알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 전시에 자신이 한동안 열심히 쌓아 올린 것을 문득 어느 시점에 거리감을 두고 보는 행위는 어떤 의미로는 상당한 용기이다. 또 어떤 의미로는 이제 그 스스로 어떤 변화를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만약 그 변화를 시도한다면 많은 고민과 희생이 필요하겠지만 그럼에도 박수 쳐줄 수 있는 일이고, 혹여나 여기서 멈춰 뒤를 돌아보는 것도 큰 용기인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상당히 솔직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사실 솔직하다는 것은 예술계에선 자주 쓰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자조적인 자기 평가를 보이는 솔직함이 마냥 좋다고 이야기하기는 아쉬운 지점도 있다. 전시는 그의 독백으로 가득 차 있고, 그러다 보니 기획자의 입장에서 다소 주춤하거나 조심스러워지는 지점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가 택한 자기 객관화의 방식은 결국 누구나 살면서 한번씩 마주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더 나은 무엇인가를 기대하게 된다. 회화를 하다 입체를 하다, 종이를 다루다 플라스틱으로 다루다 정도의 미래가 아닌 인간 황문익의 시야가 더욱 확장되고 발전되어 나가는 계기의 가능성. 그런 시기를 맞이한 이상, 작가가 어떤 방향이든 방황하지 않았으면 하는 게 기획자로서의 마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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