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시각>_ Time Now
<지금 이시각>, 월간지 형식의 월간 아카이브 프로젝트
기획자 : 오종원, 발행 : 피그헤드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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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 12월호 10월호 9월호 8월호 7월호 6월호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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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시각> 2023년 3월호, 참여필진 : 김유주, 김희재, 석민정, 오종원, 이안, 이채연
신규 참가자 및 게스트를 환영하고 있습니다.




김 희 재
소리와 퍼포먼스로 세상을 이야기하는 예술가
32번째 생일날이다.
32번째 생일날이다.
올해는 끝내주도록 많은 축하를 받았다. 12시가 넘긴 새벽부터 가족, 친구들이 온 통 생일을 축하해주니 호강했다. 다른 친구 생일은 미적지근하게 느껴져도 막상 내 생일이 되면 생일 축하 한마디가 그렇게 좋고 감격이다. 내 마음은 아직 철부지 어린애다.
고마운 한 친구가 저녁 생일밥을 사준댄다. 메뉴는 회다. 동석한 한 친구는 평소엔 차마 내 돈 주고 사먹기 아까운 고급스럽고 맛있는 케이크를 사왔다. 입에 넣으니 살살 녹아 없어진다. 마음이 가득 차오른다.
하지만 7시가 넘기기 전에 식사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오늘은 가게에 첫 출근 하는 날이다.
가게는 지하 1층. 계단을 내려갈수록 지하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난다. 그치만 썩 나쁜 냄새는 아니다. 사장이 대기실로 들어온다.
"단아. 우리 가게는 절대 이상한 가게 아니야. 너는 음악 하러 온 거고, 공연해서 돈 벌어 가는 거야. 우리 가게는 이상한 손님 절대 없어. 이상한 손님은 내 선에서 다 잘랐어. 그게 수십년 내 가게 철칙이야. 혹시나 손님이 이상한 짓 하면 사장한 테 다 말해. 내가 그 손님들 다 자를 테니까. 나 손님 많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 고 편하게 일해. 요즘 세상에 어디가도 이렇게 편하게 돈 버는 곳 없다? 알바를 10 시간 해도 10만원이야. 그것도 시급 만원으로 쳐줘야 벌 수 있다고. 여기선 공연 한번하고 손님 옆에서 이야기 잘 들어주고 그러기만 하면 돈 10만원은 쉽게 벌어 가."
사장이 성미가 꽤 급하다. 숨도 안 쉬고 자기 할말을 몰아세운다.
"오늘 오는 손님은 두 분인데 회계사야. 근데 직원이 80명이 넘어. 돈 많아. 노래 잘해서 팁 많이 받아가. 근데 또 되게 신사적인 분들이거든?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소리 멋있게 하고 편하게 앉아서 앞에 과일 먹고 이야기 들어 주기만 해. 너 얘기는 하지 말고. 손님들은 너 얘기 들으려고 오는 게 아냐. 자기 말하고 싶어하지. 너무 조잘대지 말고 묻는 얘기에 대답만 이쁘게 잘하고. 알았지?"
그래 나는 음악인이야. 술집 여자가 아니라구. 나는 내 음악을 팔러 온 거고. 그들 은 내 음악을 듣고 만족하면 돈을 주는 거야. 공연과 다를 게 없어. 그것만 생각하자.
설레는 마음 반의 반, 두려운 마음 반 이상으로 테이블로 갔다. 누가 봐도 사회적 으로 성공한 이미지의 점잖은 두 손님이 나를 본다.
"형님, 오늘 첨 온 애 에요. 얘가 소리하는 앤 데, 소리를 너무 잘해. 나 깜짝 놀랐 잖아. 지난번 면접 때 쑥대머리 하는데 소름이 쫙쫙 돋아. 나 장사하면서 소리하는 애 20명 넘게 봤었는데 얘처럼 잘 하는 애 나 첨 봤어요. 이따 소리 함 들어보세 요."
퍽 인자한 인상의 내 옆손님이 나를 찬찬히 살핀다. 어색함을 무릅쓰고 나도 예쁘 게 웃어 보인다. 사장 말 대로 인상이 선하다. 우선 다행이다.
손님이 말한다.
"왜 그렇게 불편하게 있어요?"
사장이 말 끝을 가로챈다.
"단아. 이분들 되게 좋은 분들이야. 가까이 앉아. 나랑 엄청 오래된 손님 분들이야. 잘해."
"네..."
"가만히 앉아서 뭐해?"
"....?"
"허 참 아무것도 모르네. 얘가 오늘 첨이라 이래요. 이해 좀 해주세요."
사장이 손님 술잔에 얼음을 대신 채운다. 양주도 따라드린다. 내가 술도 따라야 하 는 건가. 나는 연주하러 온 음악가인데. 내가 저걸 왜 해야 하지.
곧이어 오래 일한 선배 언니가 들어와 앉는다. 피아노 하는 언니인데 가게에서 무 려 7년이나 일했다고 한다. 언니를 열심히 지켜봤다. 손님 접시에 예쁘게 과일도 올려주고 술이 떨어지면 부어준다. 그리곤 환하고 부드럽게 웃으며 편하게 대꾸한 다. 움직임과 분위기가 꽤 익어 보인다. 저렇게 해야 하는 거구나. 열심히 손님과 말을 주고받는데 나는 멀뚱히 앉아만 있는다. 내 얘기는 많이 하지 말랬으니까. 그 런데 사장이 나를 부른다.
"단아, 잠깐 나와봐."
발 빠른 사장을 쫓아간다.
"단아, 너 도대체 왜 그래. 왜 그렇게 굳어 있어. 환하게 웃고 그래 야지. 그렇게 뻣 뻣하게 앉아있으면 어떡해. "
"저 안 그랬는데..."
"안 그래 너 되게 무서워 지금. 넌 안 웃으면 무섭다고. 저 손님들 되게 좋은 분들이야. 전혀 이상한 짓 안 해. 그런 손님들 나는 하나도 없다니까? 왜 그렇게 이상한데 온 애처럼 그러냐고. 활짝 활짝 잘 웃어. 넌 웃는 게 이쁘니까. 알았지 응?"
"네."
이번엔 손님 옆에 바싹 앉아본다. 손님 잔에 각 얼음도 몇 알 넣어준다. 그리고 하는 말에 눈을 다 맞추며 열심히 미소를 머금었다. 사장이 부추긴다.
"단아, 이제 소리 좀 해봐. 형님, 이 친구 소리 함 들어보세요. 기가 막혀."
드디어 이 곳에서의 내 존재이유가 바로 설 순간이 왔다. 술집 치고는 무대가 크다. 그런데 마이크 에코가 심하다. 음침한 술집 조명도 불편하다. 공간은 좀처럼 편하지 못한데 무대만은 익숙하다. 두 테이블의 손님들이 나를 기대하듯 바라본다. 쑥대머리 한 대목을 부른다. 목소리가 떨린다. 무대가 떨려서 가 아니다. 그 공간 속에 있는 자신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나는 누구에게 의지 않는 떳떳함으로 살기 위해 이 곳에 왔다. 그리고 이 선택이 결코 스스로 부끄럽지 않다. 오직 소리를 팔기 위해 있는 것이니까. 그런데 왠지 이 곳에서 소리하는 일을 부모님이 아시면 안될 것 같다. 아신다면 놀라 펄쩍 공중부양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 여기서 내가 의지할 것은 소리 하나 말고는 없다. 쑥대머리 가사에 의지해 소리를 한다. 옥방의 춘향의 고독이 나의 고독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소리가 끝나니 양 테이블에서 거창한 박수갈채가 나온다. 내 테이블이 아닌 곳에서도 팁이 나온다. 어리숙하게 티켓 값을 수확한다. 손님이 나를 보는 눈이 조금 달라진다.
사장이 말한다.
"우리 단이 소리 잘하죠? 아유, 난 오늘 또 듣는데도 소름이 또 돋았네."
신이 난 사장이 한껏 어깨가 올라가 있다. 사장은 늘 손님에게 가게 연주자들을 최고로 치켜세우느라 바쁘다. 가게의 면을 세워주는 게 우리고 사장을 돈 벌게 하는 게 우리다.
"우리 형님도 노래 기가 막히게 하잖아요. 형님, 한 곡 하셔야죠. 난 진짜 우리 형님 노래가 손님들 중 최곤 거 같아. 얼른 나가셔요~."
내가 존경하는 우리 지도교수님을 닮은 흰머리 지긋하신 손님이 멋쩍게 나간다. 무대에 손님이 서자 사장이 신호를 보낸다.
"단아, 얼른 나가. 옆에 가서 서 있어."
꽤 좋은 노래 실력으로 열창하는 손님 옆에 얼떨결에 섰다. 사장의 눈치를 보다 손님 옆에 서서 박서 치며 응원한다. 한 곡 마치니 사장이 그런다.
"단아! 너도 같이 한 곡 불러!"
이건 내가 생각한 그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일단 지금은 뭐래도 손님 비위를 맞춰야 한다. 손님이 뭘 부를지 고민한다. 나는 송창식의 '사랑이야'를 권해본다. 손님 나이 대에 공감할 옛 노래지만 내 노래방 18번이다. 손님과의 듀엣은 어색하다. 하지만 노래는 언제나 나에게 자유다. 부르는 순간만큼은 진솔하고 따뜻하다. 온 마음을 다해 부르는데 손님이 슬쩍 나의 손을 잡으며 눈을 맞춘다. 눈을 차마 떼지는 못하겠고 잡힌 손은 갈 길을 잃었다. 그래도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퇴근하는 버스에 올랐다.
사장이 전화가 온다.
"단아, 오늘 고생했어. 소리 너무 잘했고. 너무 뻣뻣하게 굴지 마. 너는 소리 잘하고 내가 오늘 보니까 참 경청을 잘 하더라고. 앞으로 너가 손님 많이 몰아올 거 같아. 고생 많았어."
"사장님, 손님이 제 손 잡았어요. 저 너무 불편했어요."
"단아, 그 손님은 진짜 신사야. 좋으신 분들이야.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마. 너는 내가 보니까 생각이 너무 많은 앤 거 같아. 너는 소리해서 돈 버는 거고 공연하러 오는 연주자야. 요즘 다 힘들어. 코로나때문에 다 죽는 소리한다고. 요즘 같이 어려운 때에 여기같이 돈 편하게 버는 곳 없어. 지금 다른 연주자들은 서로 자기 불러 달라고 난리야. 그런 거 하나하나 불편하면 여기서 일 못하는 거고."
당장 내야 할 집세와 연습실세를 생각한다.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만 100만원 돈이다. 평일엔 책도 써야 하고 레슨도 해야 하니 알바를 쪼개 하기엔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하다. 목이 칵 막힌다.
"잘 할게요."
나는 예술가를 지향하는데 이 곳에서는 광대가 된다. 명문대의 화려한 문학석사 졸업장은 사치다. 예술의 고고함은 뒷간에도 없다. 그저 생존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열과 성의를 다해온 소리실력만은 여기서 빛을 발한다. 오직 소리만이 나를 일으켜 세워준다.
그래, 옛 소리꾼들은 다 권번에서 소리하며 후원을 받고 이름을 알렸는데 시간만 흘렀지 지금의 나와 다를 게 무엇인가. 잘 나가는 연예인들은 누구나 동경하는 스타 같지만 음지에서는 재벌들의 유희거리가 된다. 그들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단지 그들보다 조금 덜 화려할 뿐. 예술이 그런 것 아닌가? 유희와 공감과 사회적 영향력. 난 그 중간 어드메 즈음에서 더듬거린다. 결국 광대와 예술가가 다른 게 무엇이란 말인가? 본질은 다르지 않다. 알려지지 않으면 한낱 광대, 이름나면 스타, 아이콘이 되어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면 그제서야 예술가다. 심플하게 생각하자고. 나는 단지 공연해서 돈 버는 것 말고는 없다. 이것은 단지 내가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온갖 생각들로 나를 위로해보지만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다. 32살의 생일 마무리의 쓴맛이 이리 강할 줄이야. 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차창 밖을 무심히 본다. 혼자 살아서 정말 다행이다.
이 채 연
창작가 / 관심 받고 싶어 하는 주부
밥의 굴레

우리 집은 겨울이 되면 집에서 '밥'을 차려 먹을 일이 많아진다. 밥을 차려 먹을 일이 많다 라는 것은 곧 집에서 살림을 담당하고 있는 나의 일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거의 매일 아침저녁으로 함께 밥을 먹는데, 겨울에는 김장, 남편 생일, 성탄절, 한 해의 끝과 새해, 내 생일, 설 연휴 등등의 이벤트가 추가된다. 거기다 겨울 방학인 아이의 식사를 챙겨야 하기도 한다. 아…또 올해 겨울에는 남편과 아들이 연달아 코로나에 확진 되면서 집에서 식사하는 날이 더 늘어나기도 했었다. 겨울철 추운 날은 외식도, 장보기도 어렵다. 아무튼 일이 많아져서 성수기 특근 같은 느낌이 든다.
집에서 살림담당으로 ‘밥’은 내가 해야 할 일 이자, 해내야 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귀찮을 때가 많다. 특히 작업(그림)이 잘 안되는 날은 더더욱 그렇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도 당연히 그렇고. 그래도 끼니는 해결해야 한다. 내 일이니까!
밥을 해결해야 하는 이유와 작업과 밥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새삼 말하지만, 나는 작가다. 나의 작가로서의 소득(돈)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작업 재료비 정도다. 마이너스일 때도 있고. 그렇다면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직장이나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데, 나는 그것 대신 밥하는 일 즉 살림을 택했다. 취집인 셈이다. 살림을 직장처럼 여기고, 작업과 살림. 이 두 가지를 투잡으로 보기로 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는 않지만, 내가 돈을 벌지 않아도 그냥 저냥 먹고 살 만할 것 같다고 생각 해주는 가족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언제까지 가능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이렇게 버텨 보기로 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엄마로서, 주부로서 당연한 일을 하고 있는데 투잡이라고 하는 것이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밥하는 일, 살림하는 일을 ‘잡’(job, 일)으로 보아야,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의 당위성을 찾을 수 있고, 작업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덜 수 있다. 살림을 해야 해서 작업하고 싶은 욕구를 내려놓아야 하는 데서 오는 답답함이 아니라, 살림을(일) 열심히 했으니 작업할 자격이 된다 로. 작업하느라 살림을 소홀히 하게 되어서 생기는 미안함이 아니라, 작업했으니 밥은 조금 게을리해도 괜찮아 로. 뭐 이런 자기 합리화가 다 있나 싶기도 하지만은 이렇게 마음을 먹어야 작업을 해쳐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작업을 하기로 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밀고 나가야 한다.
끼니 챙기기에 대해 쓰고 있으니 생각나는 그림이 있다. (그림2) 나뭇가지 사이의 둥지, 새들의 보금자리. 거기에 자신의 능력치 이상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아기 참새들이 있다. 배가 많이 고픈 것 같다. 그와 같은 식솔(食率)들이 내게도 있다. 나의 아기 참새들, 가족. 특히 아들. 그들에게 밥을 챙겨 주어야 한다. 배고픔에서 빨리 벗어나게 해야 한다. 마음이 급하다. 만약 밥을 차려내지 못할 상황이라면, 두뇌를 풀가동해서 대체 먹거리나 외식 메뉴를 정해야 한다. 어서! 곧 6시다.

+추가
- 사실 난 김장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김장으로 바쁜 것을 보면 덩 달아 마음이 김장모드가 된다
- 평소 "밥은 (뭐야)?" 라고 기본 하루 5번 정도는 묻는 아들 덕분에 밥 차리기의 본분을 잊지 않게 된다. 하루 생각의 8할은 '뭐 먹나' 이다. 얼마 없는 창의력을 ' 밥 생각'에 소진해버리게 된다.
- 이렇게 쓰고 보니 잘 차려 먹는 것 같지만, 절대 아니다. 간단하게 먹고, 외식도 자주한다. 참 에너지가 없는 사람이라서 조금만 일이 많아져도 부담이 많아져서 이렇게 하소연한다. 이해 부탁합니다.
- <그림 1>은 작업 후 보니 플레이보이가 떠올랐다. 절대 의도한 것 아님!
이 안
원형아티스트 / 누가 뭐래도 세계에서 젤 잘나가는 만신
삼재를 믿어야 할까요?
※ 편집자 주 : 원문엔 5개의 각주가 있고 각기 설명이 있으나 본 인터넷 웹페이지 상으로는 구성을 하기 다소 어려워 제외 되었습니다. 첨부된 pdf파일 혹은 이미지 파일을 참조 바랍니다.
아니요, 최소한 저는 믿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함께,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삼재, ‘삼년동안 재수 없음, 혹은 삼년동안 재앙이 따른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지 반문하고 싶습니다. 아니 “무당이 왜 저래” 싶죠? 아이러니하시나요?, 맞습니다. 삼재를 믿지 말라고 말하는 게 만신으로써 살아온 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은 당혹스럽지 않으실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띠로 사람들을 캐릭터화하고 삼재가 들었으니 삼재를 풀어라, 부적을 쓰란 말을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소띠는 소처럼 일만 한다고 하고, 호랑이띠 여자는 성격이 드세니 결혼을 늦게 해야 한다는 어불성설을 저는 차마 못하겠습니다. 이렇게 캐릭터화된 띠, 지지1)는 도교를 근간으로 하고 불교와 여러 민담과 무속적 성격을 가지고 형성되어 내려온 삼재의 존재를 인정하고 정의하는데 사용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를 배재하고 오로지 신의 언어를 인간의 길위에 돌다리 놓아주듯, 신의 언어를 인간의 말로 전달하는 것 즉 신점을 보고 공수를 내는 것이 강신무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강신무인 저의 입장에서는 삼재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삼재는 신이 말한 그들에 관한 기록이 아닙니다. 어쩌면 삼재는 ‘공포 마케팅’(Fear marketing)읜 원조격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삼재는 어떤 사상과 이론을 배경으로 단단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오래된 풍습 중 하나일 뿐입니다. 오래되었다고 무조건 이를 따를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삼재란 무엇일까요?
근데 도대체 삼재가 무엇인디?
“삼재가 들었나? 왜 이렇게 재수가 없어?”라고 말은 하지만 정작 삼재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요. 이는 동물로 상징되는 12지지를 바탕에 두고 돌아오는 해의 띠와 내가 타고난 해의 띠의 조합에 따라 삼재인지를 가늠합니다. 예를 들어 올해 23년도는 토끼해고 자신의 태어난 해의 띠가 원숭이띠, 쥐띠, 용띠라면 삼재에 해당 됩니다. 삼재도 종류가 있는데 3년 동안 지속되는 첫 시기를 들삼재 중간 해를 눌삼재 마지막 해를 날삼재라고 합니다. 첫 삼재보다 마지막 삼재가 더 독하다는 말도 있지요. 개인적으로 삼재가 끝났는데도 왜 계속 운이 없냐는 질문에 어느 무속인이 삼재가 끝나고 난 다음해 생일 달을 지나야 재수가 돌아온다는 말을 손님들을 통해 들은 적도 있습니다.
삼재는 3가지 재앙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불행을 카테고리화됐던 가장 오래된 분류이기도 합니다. 도병재(刀兵災):연장이나 무기로 입는 재난과 역려재(疫癘災):전염병에 걸리는 재난 그리고 기근재(飢饉災):굶주리는 재난으로 나뉩니다. 고려시대에 삼재의 흔적이 나온 것을 보면 꽤 오래 전부터 분류되고, 상징화되어 우리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어요. 지금까지 삼재가 내려온 것을 보면 삼재가 진짜로 존재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심지어 무사히 3년을 나기 위해서 들어오는 첫해부터 매해 마다 삼재가 들어온 이들이 삼재퇴치의식을 행했다고 합니다. 이는 무속뿐만 아니라, 불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식은 무속에서든, 불교에서든 연초에 집중적으로 행해졌어요. 한 해를 잘 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보이는데요. 지금 이 시대에도 불교에서도 그들의 방식대로 삼재를 소멸하는 의식을 거행하고 명리학(사주)을 전문적으로 보시는 분들도 삼재부적을 사용하여 삼재를 없애는 행위를 합니다. 또한 신도를 거느리고 어느 정도의 연차가 된 무속인들은 매해 연말 연초 사이에 삼재풀이 의식을 진행하고 연례행사 중 하나로 매우 중시 여깁니다.
이 행사는 특정한 날짜에 일정한 금액을 지불한 신도들을 위해 한 날 한 시에 다 같이 삼재풀이 의식을 행합니다.
삼재풀이 의식은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 통북어에 싼 사주판 혹은 재가집의 옷등을 감싸서 풀기도 하고 한지로 오린 사람형상 등으로 의식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특히 무속인이 봤을 때 심한 화가 올 것 같은 집안이나 혹은 개인, 그리고 스스로 삼재에는 꼭 굿을 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은 작은 의식보다는 큰돈을 들인 굿으로 열두 달을 무사히 나기를 기원합니다.
또 다른 삼재들 –유형화된 혈액형, MBTI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어딘가에 소속되고자 하는 욕구와 타자화를 통해 자신의 우열을 가리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지요. 그리고 그 과정으로 자신을 규명하려는 본능에 대해 많은 철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이 여러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도 끊임없이 이러한 과정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우생학의 일종으로 발전한 혈액형의 첫 발단은 나치즘에서 발전했습니다. 아리아인(Aryan)이 우위에 있다는 결론을 만들어 내기 위해 혈액형을 분류하고 나누기 시작했고 그 혈액형에 생물학적 의미를 넘어 유대인의 박해 수단으로도 사용했습니다.
이를 이어받은 일본은 우생학의 절정을 이루는데요, 지금 우리가 혈액형에 따른 성격 분류부터 유사과학에 유난히 집착해 내선일체를 이루려고 했죠. 패망한 직후에 이러한 연구는 마치 실체가 있는 연구로 둔갑하여 과학적으로 보이기까지 해서,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는 이 혈액형별로 개인들이 심리적, 성격적 성향을 정의하고 각자 혈액형과 어울리는 혈액형을 분류하는 것까지 발전하더니 어느새 변형과 변형을 거듭해 혈액형으로 점을 보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혈액형으로 점을 본다는 간판을 본 이들은 저 뿐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한참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MBTI도 마찬가지입니다. Myers-Briggs Type Indicator 의 약자로 심리학이라는 과학의 영역에서 출발했지만 정확도와 타당성 그리고 신뢰되는 부분에서의 의문점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1962년 첫 등장하여 1998년도 까지 업데이트 되었지만 자의적, 타의적 격리된 삶을 살아야 하는 코로나 시대 전 후부터 유행하면서 지금까지도 전세계에서 폭발적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MBTI가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이유는 자의적으로 검사에 응하고 멈출 수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방향의 성향과 나의 성향이 일치될 경우 나를 정의 해주는 욕구를 채워주기 때문입니다. 또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내고서 나와 반대되거나 맞지 않는 이들의 성향의 이들도 그룹화 하여 실제적으로 사회적 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온라인에서 만큼은 집단생활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었고, 나를 정의해 주었으며 타자화를 통해 자신의 우열을 드러내려는 인간의 근본적 욕망을 잘 드러나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심리학 내부에서도 유사 심리학으로 보는 이들과 심리학적 기반이 매우 약하기에 최악의 심리학 평가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저는 무당으로서 아니 이러한 현상을 관찰하는 한 자연인으로서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조만간에 어느 점집에서는 분명 MZ세대로 호명된 이들을 대상으로 MBTI를 바탕에 두고 점사를 보는 ‘사태’를 마주할 것입니다. 왠지 장담하고 싶어지는걸요.?
그러니까 삼재도, 혈행형 점도, MBTI도 미신의 한 부분 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이들은 미신의 전형적 사례입니다, 국어사전에서의 미신은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으로 여겨지는 믿음 혹은 이러한 것들을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앞서 말한 봐와 같이 이들의 공통적이기도 하죠? 제가 정의하는 미신, 즉 미혹된 신념과 믿음이라는 기준으로 이것들을 들여다봐도 삼재도 우생학의 혈액형별 유형나누기도 MBTI도 미신의 한 종류일 뿐입니다. 띠별은 오래된 만큼이나 띠에 상응하는 동물의 특징으로 인간의 캐릭터에 투영하여 성향을 나눌 뿐만 아니라 이는 도교의 영향을 받았고, 명리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사용하여 그럴 듯한 믿음은 배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 삼재를 넘어, 나와 맞는 띠는 궁합이 좋고 나와 맞지 않는 띠는 상충살이 들었다며 한발 더 나아가 부적을 쓰거나 이들을 해결하기 위해 삼재풀이 이 외에 또 다른 어떤 의식을 진행하기도 하죠.
유사 심리학으로 평가 절하되고 있는 MBTI와 우생학에서의 혈액형이 본격적으로 점술의 도구로 사용되기 시작한다면, 게다가 거기에 안 좋은 점괘나 원하지 않는 점술이 나온다면 이를 정화하거나 좋게 하는 의식이 생기지 않으리라 우리는 단언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때의 유행이었던 삼재는 믿고자 하는 것만 믿으려하는 경향의 확증편향을 거쳐 더욱 견고해진 믿음으로 ‘실재하는 삼재’가 되어 이를 풀어내는 의식까지 발전한 것,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와 우리는 이것에서 지금도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띠별, MBTI, 혈액형별은 미신이라는 공통점뿐만 아니라. 그럴듯하지만 지지기반이 약한 이론을 배경으로 맹목적 믿음을 가지게 만든다는 것과, 소속되고자 하는 욕구와 타자화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욕구를 채워 주고 있다는 점에서 미신으로 다시 한 번 규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손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 이러한 의식에 사용되는 시장이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2020년도 연초에 발표된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점술과 무속과 관련된 유사시장까지 2019년에만 1800억대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고 합니다. 점술 시장에서 실제로 등록되지 않는 이들이 더 많은 것을 가늠하면 몇 배 이상으로 큰 시장의 규모로 이루어져 있고 지금 2023년도에는 이보다 더 큰 시장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자본주의에서 경제의 규모를 자랑할 만큼의 크기를 지녔다면 분명 그 시장에 뛰어 들기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대에는 감소하고 어느 시대에는 증가하면서 점술 시장에서 규모의 경제를 이루어 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무속은 미혹된 믿음이 아닌 ‘견고한 체계를 지닌 신앙’입니다.
무속에서의 ‘속’(俗)은 세속됨을 의미합니다. 고상하지 않고 속물적입니다. 그래서 무속은 현세기복을 중시함을 대문짝만하게 표방합니다. 현세 기복은 당신 그리고 우리가 서 있는 지금 여기에서 행복을 바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매우 실존적이며 현실적인 신앙체계입니다. 그래서 속돼 보입니다. 내세는 사라지고 현세, 지금에 집중합니다. 매우 실존적입니다.
무속은 아침이면 해가 뜨고 저녁이면 달이 떠오른다는 자연스런 이치 아래 눈으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존중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이 자연의 위대함에 끊임없이 감사하는 것을 지향합니다. 끝없는 우주 가운데에서 미물인 ‘너’와 ‘내’가 우리로 함께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이 일상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람인 것과 사람이 아닌 것 등 모든 존재를 신성시 하여 이를 존중하고 감사함이 무속의 근간입니다.
그렇습니다. 강신무의 입장이 아니더라도 무속의 어떤 사상에서도 삼재가 부합하지 않습니다. 신을 모시고 따르는 무속에서는 삼재는 그저 너와 나의 차이를 만들어 서로 무리를 지어 집단 사이에서 우리를 방황하게 만드는 ‘매우 그릇된 미신’입니다.
만신으로 살아가는 제가 이런 말을 하기까지 정말 어려웠습니다. 왜냐면 기존의 이들과 너무나 다른 견해를 가지고 지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삼재를 인식하고 이것을 풀어내고 해결하는 과정이 무속신앙인들과 불교에서 매우 큰 행사 중 하나이기에 솔직히, 이들의 밥줄 끊는 이야기를 하기가 쉽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제 견해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삼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 스스로 그리고 여러분들과 간곡히 상식적으로 한 번 더 생각해 보려 합니다. 대한민국 인구 현재 오천만 명, 삼재가 들어온 인구수는 매해 평균 천만 명 전후 정도이고 이 천만 명 중에서 불교를 지향하고 무속인과 무속 신앙을 통해 종교를 대신하고 신앙인의 삶을 사는 분들을 생각한다면 천만 명 안에서 꽤 많은 사람이 삼재의 영향을 받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크고 작은 의식을 치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 어떤 종교든 신앙이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굴레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기에 이미 형성되어 있는 시장 자체가 매우 크다는 점은 꼭 함께 인지하고 싶습니다. 미혹됨을 알면서도 이것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어쩌면 위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다 좋다 칩시다. 하지만 이러한 미혹된 믿음 즉 미신이 무속이라는 등식을 이제는 참을 수 없습니다. 무속은 미신이 아니기에 미신적 요소를 하나 하나 제거하고 믿고 따르는 자도 이 시장을 형성하는 자들도 다시 한 번 자성하는 계기를 가지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어려운 이야기 가슴속에서 조심히 꺼내어 여러 분 앞에 내놓아 봅니다.
부적 프로젝트_5
3월달 사연_1
J씨 : 8X년 X월 2일
얼마나 오랬동안 불면증에 시달렸는지 모릅니다. 이안쌤 부적에 소원을 불어넣 고싶어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어릴적부터 가위눌림이 심했고. 늘 나른하고 무거 운 몸과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성인이 되고나서 불면증을 고쳐보고자 일년 넘도록 XXX에서 생활하기도 했고 정말로 숙면을 하게되고 불면증을 완치했다고 생각했 습니다.
다시 사회로 나와 결혼을 하고 몇번의 유산을 겪으며 남편과의 갈등으로 또다시 수면제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수가 없습니다. 하루를 살아도 가장 기본적이고 본능 적인 것이 자연스러웠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신으로의 답변
안녕하세요 선생님 짧은 글인데 긴글 처럼 저에게 긴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하다 고 말씀해 주셔서, 어쩌면 선생님께서는 생의 아픔이 목록화 되어 있고 정리되어 있다고 보여지기 까지 했습니다. 저 짧은 글에 한 사람의 인생을 살아 오면서 겪은 그 아픔들을 저렇게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보낼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생애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셨기에 가능하다고 봅니다.
어디서 점을 보든 종교에 귀의하든 성령이 잘 임하겠다는 말 혹은 종교에 귀의해 야 한다. 마지막으로 신의 기운이 있다는 말씀을 들으셨겠지만 사실 그것은 인간 으로서 살아오면서 인간이 가진 능력치 이상으로 참아야 하는 상황을 많이 목격 하셨고 그것을 유연히 넘기기에는 너무 바른 사람이라 늘 살아온 생에서 일어난 일들이 임계치에 이르셨기에 그런 소리를 들으셨을 겁니다.
늘 차올라 있으니 비대해진 정신은 늘 힘을 주어 살아내야 했고 힘을 빼는 방법 보 다 힘을 꽉주고 버티는 방법만 아시는 분이 어떻게 잠을 잘 잘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렇게 긴장되는 상황속에서 살아내기 위해 잠을 청하셨기에 가위도 가수 면 상태에서 찾아오는 일종의 몸의 경고였으리라 확신합니다. 영적인 문제가 아니 란 말이지요. 그러니 저 부적을 한번 들여다 봐주시겠어요? 오랜시간 기도하고 선 생님을 생각하며 신력으로 부를 받아 일필휘지로 내렸습니다. 잘 들여다 봐주세 요. 왜 저런 모양이 나왔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보고 느낀 부분은 칼날 같기도 하다 원을 그리다 물처럼 흐르다, 또 한 흭이 또 한 흳을 이어나가 처음과 끝이 완결을 해냅니다.
저 부적은 선생님이 앞으로 살아갈 삶을 지켜줄 호신부인가요? 아님 살아낸 선생 님의 한 생의 아픔을 소멸해줄 악업소멸 부 인가요. 선생님의 부적을 내리면서 처음으로 느껴본 붓의 흐름과 처음으로 느껴본 종이 위 에서의 자유로움이었다는 것만큼은 꼭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제는 행복하실 선생님의 삶에 경의를 표합니다.

3월달 사연_2
K씨 : X1년 6월 1X일
고민이 있어서 사연 보냅니다. 직장에 대한 고민인데요~ 저는 기간제교사로 XX교 사를 하고 있습니다. 수업하고 학생들과 소통하는것은 엄청 좋아해서 이일은 계속 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요즘 드는 생각은 성격적으로 남 밑에서 일하는 성격은 아닌거 같습니다~ 같은 일이어도 내 마음대로 바꿔서 하고 의문스러운건 집요하게 묻거나 따져서 이 해해야 업무를 시작하니.. 상사들은 하극상?공격적으로 보더라고요~ 6개월이 지 나야 제가 그런 공격적인 의도가 아니고 일 잘하는거에 대해 이해하고 인정해주십 니다.. 근데 인정받기 전의 시간이 넘 힘들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동 안 운좋게도 일못하는 상사밑에서 내맘대로 하거나 단독으로 하는 일은 잘해왔어 서 이런 성격인지 이제서야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계약직이다보 니 1년단위로 업무가 바뀌는데~ 제가 원하는 업무를 고를수없고 내 소신과 업무 가 상이할수있다보니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앞으로 계획하고 있던 XX치료센터를 좀 빨리 차려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만신으로의 답변
너무 늦지 않았나 싶어 걱정이 먼저 앞섭니다. 한편으로 핑계이면 핑계이겠지만 늦은 이 부적이 어쩌면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네요. 하극상이란 말을 들을실 정도였으면 많이 당황하고 힘드셨을 텐데 잘 넘겨오셨음에 많은 내공이 느 껴지네요. 그리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 쓰는 물결 표시로 상황을 객관화 하는 도구 로 사용하셨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들 마음속에 답을 가지고 찾아 오지요. 무꾸리를 찾으며 이미 답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신의 말을 듣고 확신을 얻 으면 우리 삶이 좀더 가벼워 지고 디딤돌이 되기도 합니다.
선생님 소신대로 빨리 XX치료센터를 여는 것이 어떠실지요? XX치료 뿐만 아니 라 인지 치료 놀이치료등 어느 정도 규모의 치료실을 권해 드립니다. 그리고 선생 님 만의 스타일로 많은 선생님들과 많은 초등부 부터 고등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친구들과 함께하시길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올 가을에 제가 한국에 있다면 초대해 주시겠어요? 작은 창문아래 선생님께 인사드릴 날을 그려 보며 이 부적을 올립니 다.
시작을 알리고 그 일에 공명을 쌓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 사랑받고 인정받는 부를 종합부로 만들어 올립니다. 이 부적은 최소 삼년 동안 쓰임이 있을터이니 작은 도 움이나마 되길 바랄 뿐입니다. 치료센터는 어떤 이름으로 짓으실지 궁금하네요!

석 민 정
삼십대/ 문화예술인/ 교습소운영
춘자랑 영심 이야기
1. 우리 춘자.
중계동에 유명한 개할머니가 있었다.
그 할머니는 엄마 가게에 자주 놀러오셨는데
오실 때마다 개 냄새를 지우기 위해 강하게 뿌린 향수냄새가 대단했다.
할머니는 집에는 푸들이 잔뜩 있다고 했다.
“할머니네 개가 새끼를 낳았어”
춘자는 3개월 꼬물이 시절 우리에게 왔다.
갈색 푸들, 손바닥만했던 춘자는
어느새 10년이 지나 턱살 주글주글한 노령개가 되었다.
2. 열 살 춘자
꼬물이 춘자는 건강하게 자랐다.
언니와 내가 대학 생활을 하는 동안, 밤 늦게 돌아오면 아무리 늦은 시간에도 우리를 반겨주었고.(덕에 새벽에 들어올 때도 번번이 부모님께 들키곤 했다)
군대 다녀온 막내 오빠를 반겨주었다.
자취를 시작해 집에 잘 오지 않는 작은언니를 잊지 않아 주었고, 큰언니가 외국에 있을 때는 영상통화에 어찌나 그리워하던지.
언니와 내가 한 집에 자취를 시작하면서, 춘자는 우리와 함께 살게 되었다.
춘자는 언제나 내 친구이자 가족, 내 동생과 같았다.
그 애가 보여주는 헌신의 눈동자는 불안정한 하루를 보내고 온 나에게 큰 안정감을 주었다.
우리가족은 춘자를 너무 사랑한다.
3. 고양이는 요물이다?
“고양이는 무서워”
“고양이는 요물이야”
엄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무뚝뚝한 아빠는
“으휴 저 괭이 새끼들”
하며 우는 길고양이들을 욕했다.
그래서 나도 어릴때부터 고양이가 무서웠고, 부정타는 것 같아 싫었다.
인간은 참…
인스타중독자는 인스타그램에 즐비하는 귀여운 고양이 영상에 매료되고 말았다.
그리고 많은 고민 끝에 파양당한 ‘블리’를 작업실로 데려왔다.
4. 책임감.
오빠 우리 고양이 키울까?
데려오기 전에도 많은 고민을 했지만, 또 한 번.
‘내가 잘 한 일 일까?’
‘단순히 귀여운 모습을 보고싶다는 이유로 무책임한 선택을 한 것은 아닐까?’
‘내가 정말 생명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일까?”
5. 첫만남
‘블리’는 오자마자 싱크대 밑에 숨었다고 했다.
그 날 토요 알바를 갔던 나는 거의 가슴이 터지는 줄 알았다.
4년 동안 토요일 수업 알바를 했는데, 수업 내내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제발 빨리 끝나라. 제발.’
목동에서 혜화까지는 너무 길었다.
벽화마을을 올라가는 그 긴 계단을 쉬지않고 걸었다.
숨을 몰아쉬며 대문을 열고 오!빠! 불렀을 때.
중문을 열고 들어가니, ‘블리’ 모습은 보이지 않고.
“아직도 안나왔어. 내가 무섭나봐”
문익이는 시무룩해져 있었다.
“블리야~ 블리야~”
하고 부르니, 내 목소리를 듣고 요염한 걸음걸이로 나오는 아이.
나를 보자마자 내 팔에 몸을 비빈다.
나는 너무 놀라와 몸이 굳어버린다.
‘영심이’와의 첫 만남이었다.


오 종 원
문화예술인력 / 피그헤드랩 운영
분노와 복수의 콘텐츠
(본문은 의도치 않게 넷플릭스의 <더 글로리>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을 수 있다. 일말의 내용이라도 아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이번 글은 넘기는 것이 좋다.)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가 있으니, <더 글로리>(이하 더 글로리)이다. 파 트2가 공개되면서 졸지에 나도 넷플릭스를 켜보게 되었는데, 이게 보다 보니 꽤 흥미롭고 재밌더라. 처음엔 어휴 무슨 대사가 저리 오글거리냐, 너무 뻔한 것 아니 야 하면서도 다음화 버튼을 누르는 나를 느끼며, 슬픔과 아픔을 갖고 있는 주인공 이 복수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며 묘한 시원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정확히 완수 보다는 진행에 가까울 것이다.
간략히 내용을 설명하자면 유년기 학교폭력을 당하고 가족에게도 버려진 여주인 공이 성인이 된 후 악착같이 준비하여 학교폭력 가해자들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이 다. 이 과정에서 전체적으로 깔리는 것은 경제적 성공, 빈부격차에 의한 계급 구조 가 매우 강조된다는 점이다.
더 글로리로 본문을 채우려는 것은 아니니 아쉬운 지점만 조금 이야기하자면 남주 인공(남주인공이라 칭하기 어려울 수 있으나 일단 그렇게 칭한다)의 등장인데, 대 체로 기존 복수극의 클리셰들을 떠올려보면 조력자가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여기 서 남주인공은 단순 조력자라기엔 너무 사기캐였다. 그가 주인공 동은을 돕는 역 할과 범위가 시즌 2에 들어서며 다소 과대해진 감이 없잖아 있었고, 보통사람들의 상식선을 조금 벗어나지 않나 싶더라. 나름의 아픔과 또 누군가에 대한 사랑이 있 더라도 저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일까 싶은 것이다. 물론 그러기에 드라마겠지 만.
또 그가 단순 능력 있는 재력가라서 그 조력들이 가능하다고 하기엔, 무엇보다 이 드라마는 도입 과정에서 학교폭력도 학교폭력이지만 무엇보다 빈부격차, 재력을 통한 계급 구조를 바탕으로 주인공과 악당들이 구분되었다는 것이다. 재력이라는 힘에 대해 주인공이 그것을 갈망하거나 혹은 극복하려는 과정이 다소 어설프게 구 축되어 있었다. 나름은 극단적 노력으로 큰 돈을 모았고, 또 이를 악물고 복수를 진행하고자 준비를 하는 연출이 없지 않았지만, 결국 복수를 완성하기 위해 결정 적 증거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아무렇지 않게 도와주는 남주인공의 능력이 더 대단 했다. 작품 전체적으로 남주인공이 주인공과 사랑에 빠진 후 협조하는 과정들은 분노와 복수의 콘텐츠 오 종 원 문화예술인력 / 피그헤드랩 운영 결국 재력이라는 만능키로 무마되고 말았고, 이로 인해 사회적 약자처럼 보여졌 던 주인공의 분노, 원한의 시발점은 다소 빛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비슷한 의미로 여주인공이 복수한다는 내용인 <네 무덤에 침을 뱉아라>를 떠올려 보면 조금 씁쓸한 것이다. 여기서 여주인공은 오직 본인의 힘으로만 복수를 한다. 아무튼 그럼에도 복수극은 전통적인 드라마의 강좌일까, 결국에는 예상치 못한 위 험에서 주인공이 탈출하고 복수를 하나하나 완성해 나가는 것을 보며, 이를 악물 고 준비한 함정에 악당들을 빠뜨리는 것을 보며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꽤나 크 다. 특히 더 글로리에서 전체적으로 깔리는 학교폭력과 빈부격차라는 문제는 근래 의 사회적 큰 문제로 여겨지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의 학창시절을 되돌아봐도 행 하거나 당하거나 목격한 기억들이 분명 없지 않기에 어느 이상의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 방영되고 있는 TV드라마 <모범택시2>(이하 모범택시) 역시 비슷한 과정으로 일종의 복수,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힌 악당들이 주인공 일행에게 징벌 을 당하는 내용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다만, 필자는 모범택시의 전 화를 다 본 것은 아니라 설명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더 글로리와의 형태적 차이라면 전자의 경우 피해자 본인이 긴 와신상담의 끝에 복수를 한다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 전문 적인 대행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범택시의 경우에는 당연히 정의를 실현하 려면 그에 상응하는 사건이 있어야 하는데, 모범택시가 꽤 인기를 끄는 것은(그리 고 필자가 알게 된 계기에는) 에피소드 당 사건들이 실제 벌어진 일을 바탕으로 제 작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방영 채널이 SBS여서 그런지 에 도 소개된 사건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현실의 경우는 답답하고 속 시원히 해결되 지 못한 경우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모범택시에는 대체로 화려한 액션, 악당이 쳐 맞는 폭력이 가미되어 있고 이는 법적으로 어느 이상의 응징을 하지 못했던 실제 사건에 대한 대리만족을 안겨주는 역할을 한다. 다시 더 글로리가 우리 주변에 ‘만 연할 만한’ 거시적 분노라면(물론 고데기 폭력 등은 실제로 있었던 사례였지만 크 게 학교폭력과 계급 격차라는 틀로 보았을 때), 모범택시는 특정 지을 만한 사건들 이 있는 미시적 분노에 가까울 수 있으며, 그래서 더 글로리는 인물과 인물 사이에 긴장감을 쌓아 캐릭터가 관객에게 적당히 어그로를 끌 때까지 기다린 후 천천히 조여 드는 스릴러의 형식을 취한다면, 모범택시는 악당이 비교적 심플한 캐릭터이 며 대체로 시원하게 응징 당하는 것이다. 놀음이라도 시원하게 얻어터지는 꼴 한 번 보고싶은 그런 마음.
의도하였던 것은 아니겠지만 더 글로리를 보며, 근래 벌어진 국사수사본부장(이 하 국수본) 임명자 모 변호사의 아들과 관련된 학교폭력 뉴스를 떠올리게 만들었 다. 생각보다 크게 이슈가 될 줄 알았지만 지금은 적당히 묻힌 감이 있는데, 간략 히 소개하면 국수본 임명자이자 변호사인 누구의 아들이 학교폭력과 폭언으로 악 명세를 떨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가 되자 부모의 능력으로 이를 무마시킨 이슈는 현실에서는 더욱 자극적이었다. 폭력도 폭력이지만 부모가 인프라가 된다 며 피해자들을 멸시하고 조롱한 데에다, 아버지가 법을 잘 아는 만큼 재판을 통해 아들을 방어한 행각이 드러난 사건이다. 심지어 학교측에서도 반성의 여지가 없다 고 한다. 고등학생이 아버지와 정치인 빽 자랑하는 것을 보며 드라마속 악당들은 현실보다는 겸손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임명자는 해당 직위에서 사퇴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그 자식은 서울대를 가며 승승장구 하였고 피해자들은 자살시도까지 하였다는 뉴스를 보며 막연하게 그런 바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꼭 정의의 사도가 아니어도 좋으니 누가 대신 복수를 해 주었으면. 이 사건만 하여도 2018년도 사건이 이번 국수본 임용과 관련하여 불거 진 것인데, 그렇게 치면 밝혀지지 못하는 비슷한 사건이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다시 더 글로리로 돌아와, 현실이 그러하다 보니 다소 아쉬운 개연성이 있어도 또 뭔가 신데렐라 이야기 같아도, 너무 오버하지만 않는다면 그것에 크게 의식하지 않고 주인공의 복수가 찬란히 성공하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 결국 복수극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복수극이야 세익스피어나 장화홍련전만 생각하여도 원래 전통적인 콘텐츠 강자 였으니 새삼스러울 것은 없으나, 근래에 들어 어떤 복수나 분노의 표출 대상이 빈 부격차로 인한 계급 구조로 향해 있는 것들을 꽤나 보게 된 것 같다. 아니 꼭 근래 에 무엇이 변화했기 보다, 따지고 보면 대체로 악당은 권력과 힘을 가진 이들이었 는데 요즘에 들어 그 힘과 권력이 자본주의적 힘의 소유자로 좀더 뾰족하고 심플 하게 좁혀 들어가는 것뿐일 수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것에 대한 복수의 방식 이 어쩌면 점점 판타지로 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과거의 작품들을 생각 해보면 칼로 피를 불러 승부를 하거나 내가 어떻게 열심히 하여 성공을 하거나, 정 안되면 내 후대에 이 원망을 물러주어 꼭 복수해주기를 바란다면 근래의 미디어들 을 생각하였을 때엔 뭔가 현실감 느껴지는 복수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천재성 을 갖추고 인생을 배팅하는 도박꾼, 상식을 넘어서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졌으면서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경찰, 내가 찍은 대상을 백퍼센트 홀릴 수 있는 미모, 비현 실적인 초능력 등… 이제 더 이상 얼굴에 점 찍는 정도로는 엄두도 못 내는 것들이 다. 그리고 더 이상 이정도의 판타지가 아니면 물론 당연히 극이 재미가 없겠지만, 한편으로 그런 능력이라도 없으면 복수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세상이 아닐까 생각 도 해본다.
이 글의 끝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얼마전 들은 기막힌 뉴스를 떠올린다. 나는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며 YTN뉴스를 듣는데, 그 뉴스를 듣는 순간 정말 자전거가 휘청거릴 정도로 어이가 없어졌다. 피해자들이 아직 살아있고, 또 무수 한 증언을 남겨놓았음에도 국가가 앞장서서 가해자를 용서하고 피해자에게 국가 의 돈으로 배상을 해준 단다. 순간 저 사람의 이념은 공산주의인가, 대한민국 헌법 은 어디로 갔는가 묻고 싶더라. 이러한 나날이 있는 한 판타지적 복수극은 결코 수 요를 잃지 않을 것이다.
김 유 주
쉬어가는 사람
여행의 시작
여행.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인간의 본능이 아니던가. 누구나 한번쯤 마음에 품어봤을 바로 그 호기심. 어쩌면 내게도 그정도였을지 모른다. 때는 고1, 세계지리 시간이었다. 내가 사는 마을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공상을 좋아하는 시골 청소년의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은 이 때부터 무럭무럭 자랐다. 수업시간에 외우라는 것은 외우지않고 선생님의 이야기에 주특기인 상상을 덧붙여 수업이 끝날 때까지 다른 세계로 여행을 했다. 어느 날 세계지리 선생님이 각 반에 세계지도를 붙이고는 가고싶은 나라를 마음껏 낙서하라며, 어느반이 가장 지도를 더럽히는지 보겠다는 말씀을 남기고 떠났다. 나는 시도때도 없이 그 지도를 봤다. 생각보다 조용한 그 지도. 그리고 거기에 내 낙서는 단 하나였다. ‘인도'. 나는 그 후로 인도의 이미지 몇 장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함께 인도를 가는 사람과 결혼할거야' 라는 말을 연애 때마다 상습적으로 뱉으며.
판타지도 마음에 오래 품고 있으면 먼지가 끼고 뿌옇게 변하는 것인지 ‘인도'라는 중얼거림도 시간이 갈 수록 그 목소리가 작아져‘인도가 아니라도 해외에 나가고싶다' 로 변했다. 선명하게 반짝이는 작은 불빛에 먼지가 끼면 그 빛이 희미하게 퍼지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인도가 아니어도 어디든..’이라는 중얼거림 조차 작아지고 멀어졌다.
삼십 대의 어느 날, 친구와 밥을 먹으며 티비를 보다가 둘 중 한명이 먼저 중얼거리듯 말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가고싶다" 누가 먼저였는지 모르겠다. 나머지 한 명이 바로 "너도? 나도!"를 뱉고는 둘이 입을 모아 이야기했으니까. 나는 몇 일 뒤 학원 면접을 앞두고 있었다. "면접볼 때 삼 년만 일하겠다고 할게. 우리 딱 삼 년만 돈 모아서 떠나자." 나이가 들면서 삶이 퍽퍽해지는 것을 느낄 때마다 의식적으로 가슴에 판타지 하나씩을 심는다. 그 날 우리의 대화도 아마 그런 일이었을 것이다. 세계여행이라니.. 딱 1년만 임용시험을 준비해보라는 엄마의 잔소리에도 '1년동안 작업을 못 하면 미쳐버릴 거야.' 라고 말해왔던 나였다. 지금 와서야 그 말이 우습지만 그 때는 열정인지 치기인지 모를 그런 것이 있었고, 애착하는 생활을 떠나는 것이 두려웠으며, 나름의 희망도 품고 있었다. 별 볼일 없는 것 같은 일상이었지만 그 일상으로부터 훌쩍 떠난다는 것은 내게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그 비슷한 것이었다.
그 날 이후 친구와 나는 그 판타지를 말 그대로 '묻어두고' 지냈다. 대신 여행 스타일이 잘 맞는 편이라 몇 번 같이 여행을 다녔고 한 때는 자전거여행에 꽂혀서 자전거여행을 가겠다고 6만원짜리 중고자전거를 구입하고 자전거용품도 중고거래로 열심히 사들였다. 그것도 그 뿐이었다. 그래도 메말라가는 인생에 잠시나마 설레는 일을 꿈꾼다는 것은 나쁘지않았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감사하게도 학위를 마치고 인생의 새로운 막을 시작하는 마음으로 작업실을 구했지만, 설레이던 시작과 함께 준비한 전시가 코 앞에서 사라졌고, 코로나의 영향으로 간신히 월세를 내며 전전긍긍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불안함과 초조함에 빠져서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말 그대로 패닉이었다. 매일 작업실에 앉아 작업은 하지 않고 통장잔고를 확인하며 어떻게하면 돈을 벌 수 있을지 궁리만 했다. 프리랜서로 학원에서 일하는 덕분에 수업이 잡히는 날이면 다행이었지만, 한 푼도 벌지 못하는 때도 있었다. 수업이 다시 조금씩 생기면 나아질 줄 알았지만 출근하고 퇴근하고 9시쯤 작업실에 들어서면 가방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아 정적 속에서 가끔 들려오는 이명따위나 듣다가 자정이 가까워 질 쯤 집으로 돌아가는 하루만 반복했다. 점점 붓을 드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어떤 재료에 무엇을 담아낼지에 대한 고민은 그보다 먼저 멀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모든 게 흔들리던 시기 그래도 늘 그대로인 작업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내 꿈을 지키고 있다 느꼈을 정도였다. '나는 무엇을 위해 작업을 하나'에서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거쳐 '나 왜 사냐..'에 이르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설렘으로 구한 그 작업실에서 딱 2년을 그렇게 보냈다.
그리고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우리 떠나자. 나 더이상은 못 하겠어." 당시의 내 대답은 거절이었다.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데 어떻게 떠나?" 친구가 2년 전의 약속을 들먹이며 나를 설득할 때도 나는 "아직 3년 안 됐잖아." 라며 회피했다. 이 대화에서 내 머리를 후려친 것은 친구의 말이 아니었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데?' 그 날의 대화 이후로 이 말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않고 내 머리를 두르렸다. 엄마의 잔소리에 대답할 때처럼 작업 핑계를 댔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대답은 핑계가 아니었다.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들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고 그게 2년간의 내 현실이 되어있었다. 그 현실에서 나는 다른 어떤 것에도 에너지를 쏟지 못했고, 내 삶에 만족하지 못 하고 있었다. '그래, 뭐든 필요해.'
나는 일주일도 안 되서 일하던 학원에 그만두겠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눈물을 머금고 작업실을 뺐다. 2년 동안 작업실을 채운 것은 작품이 아니었다. 좌절하고 패배감에 절어있던 나의 흔적들이었다. 작업실을 비우며 복잡한 감정이 요동쳤다. ‘다시 돌아올거야. 그 때는 이런 시간을 반복하지 않아.’
보증금에 몇 푼 안 되는 돈을 보태 세계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것, 꿈을 꿈으로만 두지 않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했다. 가장 큰 꿈이 당장 불가능하다면 작은 꿈이라도 먼지를 거둬내고 현실로 끌고 와야했다. 이대로 내가 처한 상황에 빠져서 그것이 현실이라며 살 수는 없었다. 같은 삶을 산다해도 ‘내가 선택하는 것’과 '어쩌다보니 그렇게 살고있음'은 다른 것이었다.
우리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차근히 준비해온 것도, 설레임이 가득했던 것도 아니었다. 구체적인 계획도 없었고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오히려 ‘어쩌다보니’에 더 가까울 것 같다. 나 혼자서 여행을 꿈꾸고 떠날 수 있었다면 훨씬 더 일찍 떠났겠지만 나는 그런 추진력도 없었고 당시에는 여행 자체에 대한 욕심이나 열정이나 애정도 없었다. 늘 하는 얘기지만 서로 타이밍이 맞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절대 떠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친구가 더이상 버티기 힘들다며 함께 떠나자고 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 때의 나를 제대로 보지 못했을 것이고, 그 때 작업실을 정리하지 않았더라면 그 작업실을 채운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시작부터 쉽지않네
일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는 날까지 매일 여행 계획과 체크리스트를 확인하고 수정했다. 가장 필요한 것은 체력이라고 생각해서 헬스장을 한 달 등록해 그 어느때보다도 열심히 운동했다. 그렇게 출국일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상태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주유를 마치고 나가는 내 차를 발견하지 못한 화물트레일러가 차를 쳐버린 것이다.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충격이 컸고 그 순간에는 '아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수수료를 지불하고 출국을 늦춰 병원을 다녔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어서 3주의 시간을 두고 몸도 마음도 재정비하고 떠나기로 했는데 두번째 출국일을 3일 앞두고 앓아누워버렸다. 열이 나서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코로나검사를 세번이나 했는데도 출국이나 입국이 거부될까봐 마음이 불안했다. 이토록 간절히 낫길 바랐던 적이 또 있었을까. 열만 떨어져도 어떻게든 출국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게는 여행 직전 해야할 일이 있었다. 등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를 밀어내는 일. 여행을 떠나기 전에 머리카락을 기부하고 싶었다. 출국 전 날은 비가 심하게 쏟아졌다. 이틀을 누워만 있던 나는 드디어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내일 출국할 수 있을 것 같아.’ 몸은 기운이 하나도 없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쉬지 않고 웃음이 났다. 비를 뚫고 동네 미용실로 갔다. 머리를 밀겠다는 얘기에 미용실 사장님은 나를 설득했지만 이미 마음 먹은 이상 내 뜻은 확고했다. '내 두상이 이렇게 생겼구나?'
머리를 자르는 것은 여행을 결심한 순간부터 계획했었다. 나는 달력보다 머리카락이 훨씬 더 이 여행의 시간을 잘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손으로 만지고 거울로 보고 피부로 느껴지는 시간. 여행 직전 머리를 밀고 여행내내 한번도 자르지 않은 채 돌아왔을 때의 내 머리가 기대됐다. 내 머리가 보여줄 여행의 시간이. "머리를 밀면 그 땐 진짜 여행을 떠나는 거야." 드디어 여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비록 아직 앓는 몸이었지만.
첫 여행지는 싱가포르였다. 우리는 저예산 여행자였기 때문에 저렴한 숙소를 찾아야 했고, 리틀인디아라는 지역의 6인 도미토리룸을 예약했다. 당장 누울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문을 열자마자 암모니아 냄새와 나프탈렌 냄새가 코를 찔러 눈물이 핑돌았다. 창문은 없고 좁은데다가 오랜시간 방치된 것처럼 보이는 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게다가 공용 욕실은 여성전용이라고 되어있지만 매번 몸의 일부만 가린 남자들이 들락거렸고, 빛이 들지않는 로비에는 남자들이 앉아서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낄낄댔다. 여기서 3박을 해야한다니. 새로운 환경, 낯선문화. 이것이 여행이구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몸은 아프고 숙소는 들어가기 싫고 잠을 못 자니 입맛도 없었다. '리틀인디아라서 인도사람들이 많다는데 그래서 그런가? 리틀인디아도 이렇게 힘든데 나는 인도를 갈 수 있는 걸까?' 결국 이 숙소에서 3박을 견뎠고, 그 3박은 아주 길었다. 아픈데 못 쉬는 게 서러워 울기도 했지만 나중엔 로비의 실실대는 남자들 옆에 앉아 핸드폰하며 쉬기도 하고 여자 샤워실에서 수건으로 대충가린 남자가 나와도 놀라지 않게 되었다.
우리에게 이 시작은 아주 중요한 경험이 되었다. 여행 중 어떤 일이 닥쳐도 그 날을 떠올리면 긍정적인 마음이 올라오게 하는 효과가 있달까. 우리는 이후 숙소 찾는 기술이 아주 좋아졌고 웬만한 시선엔 불쾌해하지도 않으며 예상치 못한 상식 밖의 일에도 놀라지 않는 배짱이 생겼다. 여행 3일만의 일이었다.

피그헤드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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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헤드랩 23년 3월 소식
요 며칠 피그헤드랩은 다시 바빠졌습니다.
먼저 연말 연초 긴 휴가를 맞이하며 조금 구조의 변화를 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서재의 등장입니다. 아무래도 피그헤드랩이 상대적으로 작은 공간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인근에 문화공간이 즐비하여 잠깐 들릴 수 있는 곳도 아니다 보니, 부가적인 콘텐츠의 필요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일단 많은 양은 아니지만, 편집자 오종원이 개인적으로 수집한 미술서적(자료), 소설, 그리고 오종원의 개인 전시 자료 등을 비치하였습니다. 서울아트가이드도 한동안 모은 것을 비치하였는데, 과거 약 10년 가까이 모았던 것들을 어디 둘 곳이 없어 싹 다 버린 게 떠올라 아쉬움이 컸습니다. 아무튼 앞으로 피그헤드랩을 방문하시면 해당 서적들을 자유롭게 관람하실 수 있으며 향후 나름 귀하게 모은 자료도 비치할 계획이니 한번씩 훑어보고 가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다음으로 23년도 <터닝포인트> 공모도 지난 19일 마감하였습니다. 원래 <터닝포인트>는 매 연말에 모집하여 다음해 겨울 진행하고는 하였는데, 이번 겨울에는 비공개 워크샵을 진행하였기에 조금 늦춰서 공모를 올려봤습니다. 모집 시기로 인한 것인지 혹은 시각예술씬의 어떤 변화인지, 피그헤드랩의 외부 인식 변화인지 예년과는 조금 다른 지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느낀 것이 무엇인지, 곧 자세한 작가소개와 함께 설명할 수 있도록 하겠지만, 올해도 마찬가지로 열정이 넘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아울러 <터닝포인트>는 올해부터 워크샵이라는 개념보다 오픈콜 커뮤니티의 개념으로 진행하고자 합니다. 열린 방향으로 터닝포인트 참여작가와 게스트, 그리고 자유로운 참여자들 간의 소통을 중심으로 활동하고자 하니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또한 23년 첫 전시인 황문익 작가의 <레드라이트(REDLIGHT)> 전시가 3월 25일(토) 시작합니다. 사실 작년 마지막 전시로 계획했던 것인데 서로 좀더 고민의 시간을 갖다 보니 따뜻한 봄날을 맞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피그헤드랩의 매해 마지막 전시는 연말파티와 함께 좀더 신경 쓰는 전시인 만큼 황문익 작가의 새로운 신작 시리즈가 어떠한 모습으로 보여질지 저 또한 기대가 큽니다. 오프닝 리셉션은 25일(토) 오후 4~5시 경이며, 자세한 전시소식은 다음달 <지금 이시각>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