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시각>_ Time Now
<지금 이시각>, 월간지 형식의 월간 아카이브 프로젝트
기획자 : 오종원, 발행 : 피그헤드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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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시각> 2023년 2월호, 참여필진 : 김희재, 석민정, 오종원, 이은우, 이채연
신규 참가자 및 게스트를 환영하고 있습니다.




이 채 연
창작가 / 관심 받고 싶어 하는 주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2022년 4월 25일 ~ 5월 5일)_3
지난 12월호와 1월호에 이은 세번째로, 지난 4월 말에서 5월초 다녀온 스페인 여행에 대한 글과 그림이다. 이번호부터 보신 분이나, 지난 글을 봤지만 기억 안 나는 분들을 위해 지난 글 앞부분을 요약한다.
「친구인 S작가의 전시회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있어서 떠나게 되었다. 친구의 전시진행스텝도 하고 관광도 할 겸해서. 여행의 여정을 재미나게 쓸 자신이 없어서, 메모 같은 기록과 미술인이라는 본업에 충실히 하여 여행 중 기억에 남는 이미지를 그림으로 남긴다. 여행의 풍경들이 잊혀 지지 않게, 꼭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올해가 가기 전 꼭! 」
귀국_
인천공항에서 남편을 위한 선물-술 한 병을 잊지 않고 사고(이런 건 절대 잊으면 안된다!!) 인천공항에서 기차를 타기 위해 서울역에 왔다. 기차 출발시간을 기다리는데 두통과 오한이 온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 것일까? 혹시 코로나? 코로나로 의심 가는 정황이 있었지만 귀국 전 스페인에서 pcr검사를 통과해서 괜찮지 않을까 했었다. (이때는 해외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려면, 입국 48시간 전 pcr검사 결과가 음성이어야 입국이 허용되었다. 입국후에도 pcr검사를 해야 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에 오자마자 격리했고 다음날 pcr검사를 했다. 결과는…두둥 코로나가 왔다. 혼자 방에서 열흘동안 격리했다. 다행히 남편이 재택근무가 가능해서 아들과 나를 돌봐 줄 수 있었다. 10일의 격리기간 중 한 4일~5일쯤 앓았고, 그 후로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의 컨디션을 회복했다. 이때 그린 것이 1월호 마지막 장의 채색화(자화상, 53x16cm, 한지에 분채, 2022)와 아래의 수채화 3점이다.
귀국하자마자 격리해서 아들을 안아 줄 수 없어서 슬펐지만, 격리하는 방안에서 남편이 챙겨주는 밥 먹고, 자고, 그림 조금 그리고, 잠들고, 휴대폰 보고, 자고… 한 생활도 괜찮았다. 아프긴 했지만 이런 대접받을 수 있어 좋기도 했다.

저 멀리 맑은 하늘이 세력을 넓히고 있다. 앞선 먹구름은 서서히 힘을 잃는다.
귀국 전 pcr검사를 통과해서 제때 한국으로 돌아 갈 수 있기를 이 풍경 앞에서 빌었다. 무사히 집으로 가게 해주십쇼! 그리고 다음에도 이 곳으로 올 수 있게도요!


코로나 격리 마지막 날 밤에 격리해제 기념으로 건강을 기원하며 그렸다. 좋은 거 먹고 힘내자!?
내가 사는 곳은 충북 진천. 옆 동네 증평을 가끔 지나다닌다. 증평은 인삼이 유명해서 도로에 인삼 조형물이 곳곳에 있다. 내게는 조형물의 효과가 있었는지 ‘증평은 인삼’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격리는 끝났지만 후유증으로 두통과 무력감, 위장장애가 있었다. 보신용 인삼을 사러 진짜 가야하나 고민했다
여행을 정리하다 보니 드는 생각 _
이번 여행으로 가족과 가장 길게 떨어져 지냈다. 여행일정11일에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pcr검사와 코로나 확진 격리로 11일이 더 추가되어 총 20일 넘게 떨어져 지냈다. 현실적으로는 살림과 육아를 맡은 사람이 이렇게 장기간 집을 비우는 것은 어렵다. 살림과 육아라는 것은 대게 부모가 주로 맡아서 하는데 다른 누군가로 대체할 수 있기도 하지만, 강한 책임감을 요구되는 일이기에 그렇게 하기는 어렵고, 되도록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일의 강도와 시간을 혼자 결정할 수 없고, 일의 on/off를 나누기 어렵고, 금전적 보상과 휴가가 없다. 대신 사랑은 많이 받을 수도 있다.(경우에 따라서!) 고로 살림과 육아의 담당자는 꼭 만나야 될 친인척이 있거나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이 있거나 와 같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떠날 명분이 생긴다. 어찌 보면 참 좋은 기회이고, 도전이었다.
이 여행을 다소 거창하게 ‘좋은 기회와 도전’이라고 쓴 이유를 대부분의 육아 맘과 대디들은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언제 이런 날이 다시 있을까? 아마도 아들이 성인이 되는 그날이지 싶은데…..그렇기는 하지만 그 전에 나의 작업(그림)을 들고 해외로 떠날 날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앞으로 한 6년정도는 3일 이상 가족없이 하는(혼자 하는) 여행은 없으리라는 아쉬운 마음을 여행 유튜브를 보며 달래고, 다음 여행에 대한 기대로 넘기며 버킷리스트에 올렸다. 다가올 육아 자유의 날 -그 날 떠나기를 계획하고, 기다리며 돈을 모아야겠다. 과연…
여행하면서 마주쳤던 모든 것들이 마음, 영혼, 몸 구석구석에 자국을 냈다. 자국은 실금을 만들어, 어떤 금은 파삭하고 깨어졌고, 어떤 금은 지금도 실핏줄처럼 내 전부를 타고 다니며 시각과 생각에 틈을 내주고 있다.
이금이, 「페르마타, 이탈리아」 중
석 민 정
삼십대 / 문화예술인 / 교습소운영
우리 결혼할 수 있을까_7
ep. 20 당근표 선물
헤어지기 며칠 전 퇴근 후 얼굴이 벌게진 채로 들어온 그 애는
진짜 말 그대로 거대한 쇼핑백을 나에게 던져버렸다.
퍽소리 나게 맞은 나는
“아 뭐야!”
가뜩이나 사이도 안 좋은데
뭐 잘 못 먹었나, 열이 확 오를 때
쇼핑백에 적힌 ‘프라다’
“남들처럼 가방 하나 못 사줬는데, 명품가방 하나 사주고 싶었어…”
자기가 말하고 자기가 슬퍼졌는지 말끝을 흐리는 술 취한 사람
괜히 감동하여 급히 풀어봤다.
프라다는 맞는데, 너무 안 예쁘잖아…
미안하지만 예의상 한 번 들고 재당근.
미니멀라이프에 대해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환경을 생각하게 되었고.
작은 실천으로 소비를 줄이고, 중고물품을 구매하고 있다.
대딩 때부터 중고거래를 애용하던 그 애는 간혹 술을 먹고
당근표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한다.
“나 내일 언니네 놀러가서 언니네서 잘 거야.”
“아 그래?”
허겁지겁 달려온 그 애 손에 두번째 명품이 들려 있다.
“이거 하고 가라구…”
“나 요즘 좀 초라해 보이지? 귀걸이라도 하고 다닐 까봐.”
하며 길거리에서 구매한 5000원짜리 귀걸이를 몇 달 째 하고, 그 마저도 한쪽을 잃어버렸을 때
그게 마음에 쓰였던 걸까?
서프라이즈 선물 장인 남자친구를 둔 언니를 부럽게 보는 내가 신경 쓰였던 걸까.
“당근으로 샀어?”
“응…”
고마워 당근으로 사줘서. 진심으로.
ep. 21 물이 새는 방
지독하게 비가 많이 내린 지난 여름.
벽화마을 목조건물인 작업실에 이변 없이 물이 샜다.
전 년 여름 테라스 방수 공사를 하고, 벽지도 새로 발랐건만 소용이 없었다.
비가 벽지를 타고 내려와 벽지를 들어내었다.
진작에 작업실을 나온 나는 상관이 없었지만, 집을 끔찍이 생각하는 그 애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어쩌라고- 물 새는 집에서 혼자 잘 살아봐.
나는 고소했다.
5평이지만 단독 신축 편백나무집으로 이사 온 나는
그 작은 방이 꽤나 맘에 들었었다.
그런데 배신이었다.
퍼붓는 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내 집 또한 나무천장 위에서 비가 뚝뚝 새기 시작했다.
현관에는 물이 고이고,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을
내 고양이는 속 없이 구경하고.
어느덧 현관 불까지 물에 젖어 고장이 나버렸다.
주인에게 동영상을 보내고 매번 문자를 보내도 비가 계속 와 당장 고칠 수 없다는 말뿐.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겨울이 오고.
눈비가 올때마다 물을 받아내다
결국 누전이 되어 차단기가 내려가 냉장고의 음식들이 버려졌을 즈음,
내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얘나 나나 물 떨어지는 방에서
비루하다 비루해.
우울감이 덮쳐왔다.

ep. 22 다시 시작해보자.
다시 같이 살아보자.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자.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던 2020 여름 이별 뒤, 1년 몇 개월 만에 다시 시작해보기로 한다.
애증의 벽화마을을 떠나기로 결정한 건 그 애에겐 큰 마음의 결정이었다.
익숙한 곳을 좋아하는 그 애는 사실 그 무너져가는 작업실에서 2-30년도 살 수 있었을 거다.
다시 시작해보기로 결정한 이유 중 결정적인 것은 물 새는 나의 작은 방이었다.
물 새는 작은방의 내가 불쌍해 보였던 것 같다.
우리는 또 다시 부동산으로 달려갔다.
“전세로요… 대출은 받을 거고요. 여유자금은 얼마정도 있어요…”
“구옥이어도 상관없어요. 그런 집에 많이 살아봤어요. 옵션 같은 것도 필요 없어요.”
3-40년된 빌라, 말도 안되는 지하, 엘베 없는 6층.
화장실에선 허리 못 펴는 집, 입구에 싱크홀이 있는 집…
여러 곳을 돌아다녀도, 우리 가진 자금보다 훨씬 웃도는 전세금이었다.
‘하 쉽지 않네...’
주변에 결혼하는 친구들은 다 신축 아파트에 들어가던데
우리에겐 방 두개 구옥도 왜 이렇게 힘든 걸까.
현실이었다.
“대출을 더 받아볼까…?”
“한번 알아보자”
“이자가 1년이면 —만원이야.”
“….”
우리 진짜 결혼할 수 있을까?


오 종 원
문화예술인력 / 피그헤드랩 운영
미대 졸업 후 할 수 있는 직업은 뭐가 있을까
시각예술 전공을 졸업한지 10년이 넘었고, 이러나 저러나 불안하고 빈약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내가 가진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적지 않게 뜨거웠고 지금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만큼 이 안에서 계속 살아남고자 한다. 본 문은 내가 근래 하고 있는 미대 졸업자들에게 설명하고자 준비하는 글이다. 쓰면 쓸수록 내 경험과 상상력이 빈약한 것인지, 혹은 정말 이것 밖에 쓸 수가 없는 것인지 고민이 든다.
0. 아래 서술한 경우는 일부일 확률이 크며, 이중 겹쳐지는 경우가 많음
0-1. 부지런함이 제일 중요하다 생각하나, 다른 어떠한 영역이던 마찬가지이기에 굳이 언급하지 않음
1. 창작을 주로 하는 직업
1-1. 창작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1) 작업의 방향성을 마켓으로 할 경우
- 시각예술 전공의 주요 목표로 시장을 통한 그림 판매를 바탕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직업적 정체성
- 마켓을 목표로 한다는 것은 내 작품에 상품성을 부여한다는 것 : 상업적 목적이 바탕이 되는 창작활동 필요. 내가 하고싶은 창작이나, 혹은 대중성을 참조하여 제작하였다 해도 대중이 좋아한다는 보장은 없음
- 생산자로서 정체성 필요 : 작품은 갤러리와 페어라는 플랫폼을 통해 판매되며 수익 분배는 전통적으로 5대 5. 갤러리와 평생 협업관계. 이 관계에서 갑을 관계가 형성되는 경우도 있음
-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내 작품이 얼마나 팔려야 할 지, 팔릴 수 있을지 파악 필요. 갤러리를 통해 판매하고 작품가의 50%를 받는데, 1년 생활비를 벌려면 몇 작이나 판매를 해야 하는지. 평생 내가 상품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객관적 고찰 등이 필요
- 인플루언서의 정체성과 비슷하게 가고 있으며 실제로 유명세가 안정적인 생계를 유지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됨. 유명세는 철저한 자기 브랜딩과 인프라의 확보가 아니면 얻기 어려우며, 이러한 사유로 인플루언서들이 유명세를 획득 후 예술계에 진입하는 경우가 종종 있음
- 시각예술 분야는 장르 특성상 공연 예술과는 달리 퍼포먼스를 직접적으로 보이기 어렵고 수동적인 지점이 있기 때문에 유명세를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보편적으로 성공한 시각예술 작가라 함은 과거, 근대 시점의 인물이거나 인플루언서 활동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음
2) 작업의 방향성이 비마켓(영리화 하기 어려운 방향)을 띌 경우
- 마켓 지향의 작품활동을 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창작적 활동을 바탕으로 하여 프로젝트 및 특정 종류로 명시하기 어려운 창작활동을 하는 경우를 뜻함
- 주로 공모를 지원하거나, 지자체 및 기관, 사기업의 사업에 참여하는 등 큰 틀의 파생활동으로 지원금 및 예산을 받으며 활약. 이들이 속하는 사업의 수명은 보통 길지 않다.
- 사실상 직업으로 보기 어려워 훌륭한 생계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
- 독립 기획자 / 개인 사업자의 개념으로 활동영역 확대 : 경험을 통한 개인의 능력상승 및 주변 인프라의 도움으로 활동 기회 부여, 문화예술 사업가로서 활동. 사업계획서부터 시작하여 행정에 대한 이해 필요 (이는 근래 모든 예술분야 활동가에게는 필수 요소로 자리잡음)
- 의외로 예술 활동가로 경력을 쌓기에는 마켓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것보다 문턱이 낮을 수 있으며 본인의 정신력만 있으면 어느 정도까지는 활동이 가능. 근래에는 세간의 예술에 대한 인식이 상승하며 다양한 창작 활동들도 인정받는 추세. 그러나 직업적 정체성으로 구분하기에 아직 가야할 길이 매우 멂
1-2. 콘텐츠 제작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1) 웹툰(만화), 일러스트 등 이미지 제작 영역
- 시각예술 전공을 떠나, 그림을 좋아하는 많은 이들이 입문하면서 생각하는 영역. 그런 만큼 1인 제작자 및 관련 업체가 넘쳐남
- (그림을 배운 입장에서) 근래에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너무 많음, 이미지의 배급기술 발달로 이미지제작 수준은 갈수록 상향평준화
- AI가 발달하며 자동 이미지 제작 기술은 이미 어느 정도의 정점, 최종 감수해줄 인력만 남고 나머지 이미지 제작 산업은 자동화에 기댈 확률이 크다 봄 (근래 인디 게임이 오로지 인터넷 배포 이미지만을 활용하여 제작해, 크게 성공한 사례 있음)
- 1인 콘텐츠 제작을 업으로 하려는 경우, 일찍부터 독특한 자신만의 세계관으로 꾸준히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면 추천하기 어려운 영역
2) 사진 촬영 및 영상 제작 및 편집, 관련 콘텐츠 개발자
- 근래 시각예술 전공자들이 많이 선택하는 영역 중 하나. 과거에 비해 관련 기기와 프로그램을 배우는 것에 어려움이 덜하고, 시각예술작업들이 미디어로 많이 확장되면서 상대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입문하기 좋음
- 미디어의 발달 및 코로나19 등의 계기로 이미지 데이터의 사용 범위가 넓어지며, 특히 메타버스 및 SNS 등에 활용하기 위한 관련 콘텐츠 필요 확대
- 1인 미디어 기기의 보급으로 근래 미디어 콘텐츠 개발자들이 매우 급증하는 상황. 아마추어도 쉽게 입문이 가능. 그러나 양적 증가가 질적 감소로 이어질 확률이 매우 큼
- 기술은 배우기 쉬워졌으나 사업 단위로 운영하는 것은 별개. 특히 사진 및 영상촬영의 경우 용역의 관계로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며 당연히 이를 위한 경력과 인프라 필요.
3) 시각, 광고 등 다양한 디자인 분야
- 시각예술 전공자들이 많이 선택하는 영역 중 하나로 직접적인 취업에 많은 부분을 차지.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등의 프로그램이 보급화 되고 해당 기술을 배우기 용이해지면서 문턱이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있음
- 근래에는 취업율을 의식한 교내 자격증 준비도 체계화되어,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술을 습득할 수 있고 또 관련 업체들도 자격증을 기준으로 구인하는 경우가 종종 있음. 상대적이지만 해당 업체들은 TO가 적지 않은 편
- 상대적이지만 해당 업종들은 대체로 업무의 강도가 높고 업무 환경이 쾌적하다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음. 업체가 많은 만큼 다양한 근무환경이 존재하나, 전반적으로 업무에 크런치 타임 존재
- 업무에 수명이 존재, 연령대에 따라 업무 적합도가 변하는 경우 있음
- 조직경험 이후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으며, 일정 실력과 인프라를 확보 시 나쁘지 않은 환경으로 직업 유지하는 경우가 있음
4) 공방, 인테리어, 환경 조성 등의 운영
- 해당 카테고리의 범주는 넓은 편이나 자신의 창작물을 콘텐츠화 하여 영리적 구조를 취하는 것은 동일하며, 타 분야보다 자영업으로의 관점이 좀더 큼
- 공방의 경우 종류가 많은 편이나, 근래에는 1인 소량 생산 및 온라인 커미션, 플리마켓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공산품이 아닌 희귀한 에디션을 구하려는 욕구가 많아진다는 점에서 과거보다 희망적이라 생각. 인테리어 및 환경조성의 경우에도 근래에는 주거 환경, 관광 자원 확보에 관심이 많아지는 만큼 마찬가지. 또한 근래에는 한정된, 개성 있는 콘텐츠의 수요가 확실히 많은 만큼 다양한 개성과 실력을 갖춘 업체에 줄 서서 대기할 만큼 수요가 있다고 봄. 다만 이는 케바케일 수 있음
2. 교육 및 관련활동을 바탕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1) 임용을 통한 미술선생님
- 전통적으로 시각예술 전공자들이 많이 지원하는 분야이며, 미술대학의 경우 일부 인원에게 교직 관련 혜택을 주는 등의 경우가 있음
- 선생이라는 직책이 가진 전통적인 매력과 안정성이 장점, 다만 근래에 들어 선생이라는 직업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해지는 경향
- 선생이 되기 위해서는 임용고시를 봐야하나, 타 분야와 마찬가지로 임용고시 자체가 매우 심각한 경쟁률을 갖추고 있으며 3년, 5년 이상 준비하는 경우도 흔치 않음. 임용고시를 보지 않을 경우 계약직을 연연하며 안정성을 장담할 수 없음
- 출산율이 감소하며 학교가 줄어드는 와중에 임용이 되어도 대기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으며, 향후 학생이 더 줄어들 전망에서 선생이라는 직업에 대해 냉정한 고찰 필요
2) 미대 교수
- 대체로 많은 시각예술 전공자들이 학교를 다니며 지향점으로 생각할 수 있는 어떠한 위치. 직업적 관점으로도 있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위치적인 지점도 무시할 수는 없음
- 교수가 되는 방법은 결론적으로 학교에 지원하고 선발되는 것이지만, 이 과정에서 이뤄지는 것은 다양하다 알고 있음. 다만 어떠한 위치로든 개인의 능력과 경험도 중요하지만, 환경적 요인이 받쳐주지 않으면 어렵다고 생각
- 국내의 아카데미는 대체로 동시대 예술을 따라갈 수 없는 환경이며, 지금의 대학 시스템과 현대미술이 처한 상황을 보았을 때 대학 교수의 예술적 전문성에 대한 의문은 컨템포러리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으며, 교수 타이틀을 겸하며 현대미술 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이는 많지 않은 편
- 출산율 저하로 인한 학생 감소 및 비전공 예술가의 성공, 더 이상 학력에 연연하지 않은 풍조가 대세가 되어가며 과거 학벌에 연연하여 작가를 평가하는 관점은 사실상 사라졌음
3) 미술학원 개원
- 시각예술 전공자, 특히 평면예술 출신자들이 많이 선택하는 영역으로 시각예술 대학을 다니면 반드시 인연을 맺게 되는 일 중 하나. 여기서는 개원으로 자영업자를 말함
- 사업적 수완 및 원만한 대인관계 능력 필요. 자리를 잡아야 하고 초기 투자금이 들지만, 반대로 자리를 잘 잡고 커리큘럼에 신경을 많이 쓰면 대체로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경우 많음. 의외로 실패하는 경우가 적은 편. 그 이유는 근래에 들어서 자녀들에게 다양한 예술적 감각을 키우려는 학부모들이 많기 때문이라 생각
- 남성은 주로 입시미술 및 성인 미술 쪽으로, 여성은 아동미술을 포함한 전방위적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지배적. 남녀차별이기 보다 남성의 경우 학부모들이 학생들을 잘 안 맡기려는 성향이 있음
- 경기 불황에 빠르게 영향을 받는 학원 중 하나이며, 출산율 저하시대를 맞아 향후 비전에 대해서는 장담하기는 어려움
4) 대학 강사를 포함한 단기 교육 강사(학원 등)
- 전통적으로 시각예술 전공자들이 많이 선택하는 영역 중 하나로 다양한 플랫폼에서 대체로 계약직 혹은 단기로 활동하는 경력의 강사를 뜻함
- 예술가로서 일정 이상의 경력이 쌓이면 수준급 강사활동 가능. 어떠한 영역이던 경력직 강사는 어느 곳에 가도 나쁘지 않은 수당이 지급됨. 또한 노동자의 권리 증대로 과거처럼 착취당하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기 어려움. 근래에는 교육 업체 및 대행사 등이 많아졌고, 공방 등에서 이벤트 성향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도 늘어나는 등 인프라만 확보되면 다양한 활동이 가능
- 대학 강사의 경우 많은 이들이 지향하는 과정 중 하나일 수 있으나, 경력과 실력도 중요하지만 인프라를 무시 못한다고 봄. 경우에 따라 내정자이거나 해당 학교의 인프라 안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음. 또한 강사 급여 자체는 높다고 보기 어려우며, 교수와 대학 시스템이 가지는 문제, 갈수록 학생이 줄어드는 지금 시대에 강사라는 정체성을 아르바이트 이상의 개념으로 보기 어렵다고 생각
- 어떠한 강사이든 ① 하나의 교육시설에 오래 몸을 담아 정규직 및 높은 급여가 책정하거나 ② 다수의 강의를 연달아 해결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부업 밖에 되지 못함
5) 미술 관련 심리 치료사
- 자세히 알지 못하는 영역이므로 설명 불가
3. 문화 행정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1) 큐레이터(학예사 / 사실 학예사라는 범위에 큐레이터가 들어간다고 하나 편의상 큐레이터로 표기)
- 시각예술 전공의 경우 고려할 수 있는 직업 중 하나로 학예사 자격증을 소지하여 관련 기관에서 근무를 하는 경우를 뜻함
- 등록기관인 미술관, 박물관에서 일하는 이를 학예사 및 큐레이터라 하며 자격증을 바탕으로 함. 갤러리에서 일하는 이는 갤러리스트라고 하며 이는 별도의 자격증이 필요하지 않음. 학예사는 소속 기관의 콘텐츠를 개발하고 연구하는 것에 중점을 두며 갤러리스트는 갤러리를 운영하고 수익을 내는 것에 중점을 둠 (갤러리스트의 경우 후술)
- 기관이라 함은 미술관 뿐 아니라 박물관, 기념관 등 종류가 다양하며, 큐레이터를 배출하는 전공의 경우 시각예술 뿐만 아니라 이론 및 사학 등 특정 인문학 전공들이 더 있음. 이에 따라 보통 기관의 성격에 맞는 전공을 나온 큐레이터들을 발탁함
- 대중들이 큐레이터를 인식하는 경우 중, 작품 앞에서 설명과 안내를 하는 역할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을 도슨트(전시해설사)라고 부름. 엄연히 따지면 학예사의 업무 중 하나이긴 하나 보통의 경우 전시해설사를 따로 운용하고, 학예사가 업무 중 하나로 기획 및 운영하는 경우가 정석
- 국내외적으로 큐레이터라 함은 연구직 및 전문직으로써 어느 정도의 명망을 인정해주는 분위기
- 큐레이터는 전형적으로 특정 수준 이상의 학력을 필수로 하는 연구직이나, 국가직을 제외하면 대체로 급여나 처우가 좋지 못한 경우가 많아 이에 대한 개선책 요구가 늘어나는 중. 열악한 환경에 일조하는 것은 매우 제한적인 일자리와 급여의 한계가 큰 영향을 미침
- 큐레이터가 되려면 경력을 쌓고 자격을 받아야 하지만 전국의 문화기관의 수를 생각해봤을 때 상대적으로 큐레이터의 수는 적지 않으며, 고용 또한 계약직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음. 가령 국내의 경우 한국박물관협회나 사립미술관협회에서 계약직 채용 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정작 기관들이 이를 악용하고 있어 2년을 넘기는 채용이 잘 안 이뤄지고 있음. 당연히 이로 인해 내가 하고싶은 전시, 하고싶은 연구를 꾸준히 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으며 이는 곧 해당 직업군의 한계와 다양한 단점들, 중도 포기를 만들어 냄
2) 갤러리스트
- 시각예술 전공을 졸업하고 취업을 염두한다면 상대적으로 빠르게 진입이 가능한 영역으로, 갤러리에 직원으로 들어가는 경우를 뜻함
- (큐레이터 파트에서 설명한 것처럼) 큐레이터는 자격증을 바탕으로 하는 전문직이고 갤러리스트는 영리 구조로 운영되고 있는 업체에 영업직으로 소속되는 것이기 때문에 엄연히 다른 직업. 예술이라는 영역을 제외하면 일반 회사의 직원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음. 갤러리스트 경력을 큐레이터 경력으로 치지 않음
- 갤러리리스트가 직함을 큐레이터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고, 이것을 자격증이 있는 큐레이터들이 기분 나쁘게 여기는 경향이 있음. 과거 신진 작가들에게 전시 기회 등으로 꼬드겨 갑을관계를 형성하여 폐단을 일삼는 갤러리들이 많았고, 이들이 큐레이터라고 스스로를 칭했기에 정작 전문 학예 자격이 있는 큐레이터들의 권위와 전문성을 훼손하는 경우가 있었음. 엄연히 따지면 근본과 규모가 있는 갤러리의 경우 자체 기획 전시를 제작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갤러리스트들도 큐레이터라고 말할 수 있겠고 실제로 그러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님. 하지만 대체로 갤러리는 영리 구조에 따른 플랫폼이며 자체 연구 구조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지 않기에, 갤러리스트를 연구직으로 칭하는 것은 어렵다고 봄
- 갤러리도 업체이기 때문에 해당 산업 상황에 큰 영향을 받으며, 전반적으로 대기업이 아니고선 안정적이라 보기 어려움. 더욱이 갤러리 자체는 자본력이 없으면 유명하지 못한 작가의 전시 및 대관전 등을 바탕으로 운영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전문성이 결여되는 등 평판이 좋지 않은 악순환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음. 그로 인해 고용 및 업무환경이 대체로 불안정함. 대기업이 아니라면 근무 환경과 급여가 좋다고 말하기 어려움
- 개인이 비전을 가지고 한 세월 가까이 나름의 연구와 노력을 병행하여 전문가급 갤러리스트, 연구자가 되는 사례가 있기는 함
3) 전시, 축제, 공연 등 업체를 바탕으로 하는 문화행정 업무
- 전시, 축제, 공연 등을 제작하는 대행사에 취업을 뜻하며, 꼭 예술 분야만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전공 및 관심 분야를 살리고자 하는 경우가 있음. 음악의 경우에 공연 관련 업계로 넘어가는 경우는 종종 보았음
- 대체로 지자체 및 기업 등의 행사건을 수주 받아 대행 진행하며 그로 인해 일을 따내는 이의 인프라가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음.
- 당연히 사업 단위로의 운영이 되며 개인이나 단체의 문화예술 가치관보다는 수주하는 기관의 가치관에 따르는 편. 사업 당 파이는 크다
- 일의 밸런스가 고르지 않고 쏠릴 때는 심하게 쏠리기 때문에, 평균적으로는 적은 인원 혹은 소규모 업체처럼 존재하다 일이 잡힐 때는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규모를 늘리는 식이 많음
- 일의 특성상 주말 및 공휴일, 야간에 업무를 하는 경우도 많으며 지역 출장도 흔하게 벌어짐. 직원 입장에서는 수명이 짧은 경우를 많이 봄
4) 독립기획자
- 앞서 1번 항의, 사업단위로 활동하는 예술가나 애초에 기획을 전공으로 하는 이들이 독립기획자가 되는 경우가 있음. 독립기획자를 직업 자체로 보기보다는 기획활동을 하는 다양한 정체성의 사람들을 표현한다고 볼 수도 있음
- 독립기획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는 부업의 수를 제외하고 공모를 통하거나 사업을 대행해주며 사업비 중 일부를 인건비로 챙겨가는 경우
- 기금사업의 경우, 전체 사업비의 10~15%정도를 기획피로 허용하여 몫을 챙길 수 있음. 사실 시각예술계의 경우 별도의 기획피가 등장하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과거에는 전체적인 사업 자금에서 다양한 요령으로 자신의 몫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았고, 이 과정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는 일도 많았음. 그 이유를 추측해보면 시각예술계가 타 분야, 특히 공연예술에 비하면 규모나 관객 반응, 영리적 구조 전환이 쉽지 않고 수동적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봄
- 독립기획으로 활동하다 사업자를 내고 자신만의 전시장 및 사무실을 가지고 활동하게 되는 경향이 있음. 특히 국가 기금 등을 노릴 시 일정 금액 이상은 사업자를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으며, 그렇게 되면서 대행업체와 비슷한 성격을 띄게 되지만, 그럼에도 완전 영리적인 기관보다는 좀더 본인이 지향하는 문화예술관을 어느정도 유지 가능
이 은 우
그림 그리는 사람 / 본업과 부업 사이 어딘가에서 표류 중
관찰일기 2월, 키키스미스 전 감상
나무 기록 1.
정자 바닥에 누워서 하늘을 본다. 아무생각 안하고 찌를 듯 높은 하늘만 쳐다본다. 양 볼이 차더라도 느껴지는 약간의 햇빛과 따뜻함은 기분을 좋게 한다.
나무 기록 2.
고요하게 우두커니 서 있는 앙상한 나무. 두 나무가 함께 있는 모습이 어쩐지 적막해 보이지 않는다.

나무 기록 3.
꼬불꼬불한 가시 돋힌 나무들. 벌써 나무 끝에는 붉은색 새 생명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
나무 기록 4.
그림자가 그리고 싶게 생겼다. 대게 사물 혹은 풍경을 볼 때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들면 이렇게 사진으로 기록을 한다.

- 전시를 보고 나서 -
시립미술관에서 진행하는 키키 스미스 전이다. 한줄평처럼 쓰자면 예리하지만 따뜻함이 묻어나는 전시였다. 이제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전시 관람이 가능하여 오랜만에 거리낌 없이 전시를 보러 갔다.
초입에 종이에 건재료, 콜라주 등을 한 작품들이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동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1층 중앙에 전시를 한 동물들 오브제는 나도 저러한 오브제를 만들고 싶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밝고 긍정적인 느낌만이 사랑스럽다는 마음을 들게 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금 알았다.
키키 스미스의 작품은 냉철하고 아름다웠다. 종이 재료를 좋아하는 까닭도 있겠지만, 선적인 드로잉들과 흑백이 주는 감성적임이 크게 와닿았다.
죽은 동물 사체를 그린 판화, 페인트로 그린 날아다니는 독수리, 풀을 뜯어먹는 토끼, 반짝이는 별 등 동화책에 나올 것 같은 요소들이 보였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작품을 보게 되니, 재료를 쓰는 방식과 표현 방법에 눈이 갔다.
한 때 판화에 참 관심이 많았는데, 특히 에칭이 재밌어서 몇번 꼼지락 거려봤지만 많은 노동이 들어가고 제대로된 공간이 필요했다. 2층의 태피스트리는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들었지? 싶을 정도로 작품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들이 강렬하고 섬세했다.
너무 즐겁게 본 전시다. 시간 가는줄 모르게-!
※ 해당 전시 사진의 저작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김 희 재
소리와 퍼포먼스로 세상을 이야기하는 예술가
사장이 6시가 되기도 전에 콜이 왔다
사장이 6시가 되기도 전에 콜이 왔다.
깜빡 졸고 있었다. 전화가 세 번이나 와 있다. 얼른 다시 걸었다.
"단이야. 왜 이렇게 전화가 안돼? 다른 애 부를 뻔 했잖아. 지금 손님 온대. 예쁘게 챙겨 입고 얼른 나와서 소리하고 가. 돈 벌어야지."
성질이 급한 사장은 숨도 안 쉬고 할 얘기를 쏟아낸다.
얼른 나오란 성화에 부랴부랴 가게를 나왔다.
돈 많으신 회장님이 오셨 댄다. 그의 옆에 앉아 잔에 얼음도 놔 드리고 어떤 과일을 좋아 하실까 하면서 고심하며 가지런히 과일도 놔 드렸다. 사장이 준 정보로 손님이 들으면 좋아할 만한 이야기도 살살 해드려 가면서.
저녁을 먹지 못하고 나왔다. 배가 고파서 앞에 놓아진 마른 조미오징어만 열심히 주워 먹는다. 이러면 배가 좀 차려나.
매상은 올려야 하니 부지런히 술을 입에 담아 빈 캔에 옮긴다. 지난번 넷이 앉은 상에서 4시간동안 술 한 병도 못 팔았다고 사장이 호되게 혼냈다. 그렇게 혼나야 한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지만 내게 두 번 실수는 없다. 이렇게 열심히 먹고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눈 앞에 앉은 사장에게 보여주려 애썼다.
앞 손님이 대뜸 너는 천재냐 묻는다.
앞에 나와 같은 신세인 서울대 출신 클라리넷 주자가 답했다.
"천재면 미리 뽑아 가서 여기 없죠. 외국에 있죠."
그럼 우리는 천재가 아닌 것일까?
인정하고 싶지 않아 방어하듯 얼른 답했다.
"천재는 0.01%에 불과해요. 거의 적다고 봐야죠."
앞손님이 동의한다.
"연예인들도 그래요. 우리가 아는 탑급 30~40명만 부자고 나머지는 다 가난하잖아."
내 옆 손님이 말한다.
"예술가들은 힘들어. 내 아들도 딴따라 라서 그런데, 그들은 자존이 서기가 힘들겠더라고.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이 찾아주고 좋아해줘야 존재가치가 서는 거거 잖아. 얼마전 연예인 하다가 한의사로 돌린 한 사람을 티비에서 봤는데, 그 사람은 잘 생각 한거야. 머리가 좋은 사람이더라고. 빨리 돌려야 해."
문득 나는 머리가 좋지 않은 천재가 아닌 음악가라 이 자리에 있는 것일까 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난 가난한 자인가? 일찍부터 노래에 매료되어 여즉껏 남아있는 나와 같은 사람은 그러면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 가난하게 사는 것인가? 그만두기엔 내겐 너무 강한 확신이 있다. 그 확신이 이 길에 나를 끝까지 메이게 한다.
하지만 30을 넘기며 지금껏 음악을 하는 동안 천재여야만 성공한다는 것이 아님을 무수히 눈으로 확인해왔다. 버티는 자가 성공하는 것이다. 또 팔자가 좋으면 언젠가 핀다. 그것은 내 믿음이 아니라 사실이다.
열심히 술을 마시는 척 머금고 빈 캔에 옮겨 대지만, 나는 나의 존재가치를 믿기 때문에 버티고 있다.
손님이 간댄다. 기다리던 순간이다.
인상은 좋지만 우리들을 흘끗흘끗 바라보며 여자 좋아하는 듯 보이는 호색한 같은 앞 손님이 우리에게 각 5만원 한장씩 내민다. 그래, 여기서는 그런 사람이 내겐 호인이구나.
여유있는 웃음을 지어보이며 사람 좋게 배웅보낸다.
배가고파 손님이 떠난 상에 남은 과일을 입속에 우걱우걱 넣었다. 따뜻한 족발 생각이 물씬난다.
과일을 씹으며 가게 화면에 무한재생되는 재즈 공연 영상을 본다. 고품질의 영상 속 아름다운 재즈 보컬리스트. 미인인데 연주도 노래도 수준급이다. 저 사람은 천재고 미인이라 저런 고품격의 공연장에서 대접받으며 공연하는것일까.
나는 여전히 손님이 남기고 간 골드키위를 오물거린다.
그래도 공짜로 값비싼 과일을 먹었으니 괜찮다.
지하인 가게는 바깥의 밤바람보다 춥다. 5월의 봄볕더위가 찾아왔어도 지하는 늘 차다. 마른 오징어와 찬물만 먹어댔더니 몸이 더 으슬하다. 얼른 옷가지 챙겨입고 바깥으로 나왔다.
발빠르게 집으로 향해가는데 옆에 아직 불켜진 족발집이 포장 배달 장사를 마저한다. 가격대를 슬쩍본다. 포장하면 3만원이라는 글귀가 붙어있다. 너무 비싸다. 2만원대면 먹었으려나? 아니야. 먹으면 또 살찌니까 오늘은 집에가서 꾹 참자.
집가는 버스는 언제나 반갑다. 돌아돌아 가더라도 집앞에 세워주니 고마운 버스다.
편하게 앉아 가니 좋다. 내일은 레슨이 3개다.
부지런히 할일하고 글도 열심히 써야지.
피그헤드랩
www.pigheadlab.com
피그헤드랩 워크샵 소식
22년 말 ~ 23년 초에 계획된 전시들이 다소 미뤄지며, 몇 달간 피그헤드랩은 휴식기를 맞이하였습니다. 물론 쉬기만 한 것이 아니라 공간도 정비해야 했고 또 이번에 미대를 졸업하는 신진 예술인과 함께 비공개 워크샵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과거 몇 번의 원고에도 밝혔지만, 한 10년 전에는 미대를 졸업하고 유명한 예술가가 되겠다는 열정으로 똘똘 뭉친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워크샵들이 있었습니다. 그 기회를 통해 다양한 작가들의 작업관이나 생각들을 알 수 있었고 또 내가 앞으로 어떻게 활동해가겠다는 나름의 계획들도 세울 수 있었지요. 근래에는 확실히 그런 자리들이 많이 사라졌다고 하길래, 이번 피그헤드랩에서 한번 시도해보고자 하였습니다.
지금 워크샵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물어봤을 때, 대부분 ‘방법’을 모르겠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방법이란, 꼭 성공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예술가로 활동하는 것, 포트폴리오를 예쁘게 만드는 법, 개인 작업을 잘 소개하는 법, 전시 기획서와 작업 소개서를 쓰는 법. 그리고 꼭 창작이 아니더라도 내가 배운 것을 활용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 미대를 나와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활용해볼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가르친다라는 개념보다는 소개한다는 개념이 맞을 것입니다. 워크샵을 진행하는 입장에서 참여하는 이들이 다 훌륭한 예술가가 되기를 바라기 보다, 어떠한 방향이든 적어도 가고자 하는 길에 작은 팁이 되었으면 하고 무엇보다 미대를 나온 것을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입니다.
현재 2회까지 진행한 워크샵은, 3회차에는 미대를 나와서 할 수 있는 직업에 대한 고민과 4회차는 기획서나 작업노트, 혹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등에 도움이 될 글쓰기 과정을 해볼 예정입니다. 물론 이 과정은 전체 피그헤드랩의 기회비용으로 운영되고 있고, 그러다 보니 당장 외부 강사를 초빙하기는 어려워 거의 제 재량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경험이 많으신 선생님 선배님들의 조언과 팁이 있으면 항상 환영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