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지금 이시각>_ Time Now

타임나우.png

<지금 이시각> 2023년 10월호, 참여필진 : 김유주, 김희진, 오종원, 이안, 이채연

​신규 참가자 및 게스트를 환영하고 있습니다.

이 안

원형아티스트 / 누가 뭐래도 세계에서 젤 잘나가는 만신

단 1%의 가능성이 있다면 무엇이던지 해요, 해야 한다고요

무속에서 음력2월과 10월에는 ‘황천부정’이라 부르며 유독 그달에 사람들이 많이 죽기에 따로 그 달만을 콕 집어 부정을 내치기도 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거나 날씨가 갑자기 따뜻해 지면서 뇌출혈이나 심혈관계 질환이 봄과 초겨울에 몰리고 얼음이 녹거나 얼면서 낙상수 그러니까 넘어지거나 잘못 헛디디어 떨어지는 문제가 생겨 죽음을 겪는 것 등 이러한 죽음들의 통계수치와 함께 여김 없이 저맘때의  뉴스를 보면 일기예보와 함께 모자를 잘 쓰고 나가시라, 혹은 미끄러움을 조심하시라는 아나운서의 맨트가 매년 반복되는 걸 보면 소위 말하는 지금시대에도 별반 다를 바 없지요.

그 어느 날의 이야기 
그 어느 날의 이야기입니다 혹은 그날이 아니어도 내 머릿속에 박힌 죽음을 맞이했던 일들의 이야기입니다. 바라지 선생님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지체 없이 저에게 걸어오시며 말을 겁니다.


아프시다는데 급박하시대요 연결할까요? 

이런 전화가 오는 순간, 저의 모든 일상은 멈춰집니다. 만신의 일상이라고 해봐야 뭐 다르겠습니까. 남들처럼 밥 먹고 음악도 듣고 일도 하고 다 같지만 그 일 이라는 게 신은 꽃위에서 노니고,, 귀신은 뫼 (밥 위에) 논다고, 몇 십전만에도 예전에는 지화(종이 꽃)를 굿이나 특별한 날에만 올렸지만 저는 무속의 현세기복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다른 것들은 옛 것을 고수하려 하지만 꼭 꽃은 생화로 직접 꽃아 공양합니다, 공양 중에 최고의 공양은 꽃 공양라는 말고 있구요. 굿 날이 다가오는 날에는 여러 기물을 손수 만들고, 다녀 난 모든 이들을 기도와 개인적인 기도를 하고요, 이제 어느정도 준비가 끝났으면 예약하신 단골네 들을 모시고 점사를 보고, 한바탕 점사를 보고 나면 또 시간과 그날의 몸 상태 영적인 상태에 맞추어 부적을 쓰고, 양기가 찬 비방을 해주고 마음속에 걸리는 손님에게 전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 말, 생사가 오고 가는 있다는 모두의 암묵적 받아 드림과 동시에 일상이 흔들리게 하는 저 말, 


아프시다는데 급박하시대요 연결할까요? 

맞습니다. 병마와의 싸움에서 이제 죽음과의 싸움으로 넘어갔다는 저 말에 말 그대로 위에서 말한 모든 일상을 멈추게 합니다. 응급실의 의사선생님처럼, 장의사의 염습선생님처럼 죽음과 삶을 넘나 든다 해도, 살아있음에서 살아있지 못함으로 넘어가는 그 과정은 만신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쉽지 않는 일입니다. 겪고 또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왜냐면 저는 그들이 모두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기 때문입니다. 생노병사에 죽음은 천하의 진시황도 막지 못했다 만은 제발 이 고비를 넘기고 살아서 주변이들에게 이별을 준비할 수 있는 한번의 기회를 더 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한 많은 망재와 한 많은 유가족들이 저에게 급하게 연락한 사람들은 겪지 않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갑자기 급속도로 안 좋아 지신다고 방금 연락 왔어요. 혹시... 아버지가 돌아 가실까요” 
“기침을 조금 하시다 병원에 갔는데 급성 폐암 이래요 지금 입원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머니가 뇌혈관이 터졌대요, 수술 중인데 10 시간이 지나도 안 나오시다가 나왔는데 몇일 남지 않았대요 정말 돌아가시면 저희는 어떻게 살아요.”
“요양병원에서 전화 왔어요. 돌아가신다고 그래도 고비 고비 넘어가셨는데 이번에는...” 
이번에는… 이번에는 그 말끝에 택시를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화경이 없어도 머릿속에 훤히 그려집니다.  

저 모든 질문에 총알을 쏘듯 가슴팍에 새겨지게 매정하게 하는 첫 번째로 대답하는 나의 한마디 
“돌아 가셨다고 연락 온 게 아니잖아요. 생사를 오고 거시는 거지. 정신 똑바로 차려요! 
하고 불호령을 내립니다. 

그리고 잠시만 다 멈추고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우선 지금 내가 죽음의 문을 여신다. 다시 여기 세상으로 오신다고 점사를 보는 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드립니다. 연락 주신 단골네가 진정이 되면 우선 종교를 묻습니다.
기독교를 믿고 있던 분들이라면 예수님과 하나님께 한없이 부르고 찾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목사님을 찾아갈 형편이나 상황이 되면 꼭 부탁해서 함께 단체로 기도하라고 일러줍니다,(대신 나의 생각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혹시나 편견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 걸 본적이 있어서 그런 오래 신이주신 밥을 먹었던 노련함이 이럴 때 발휘됩니다.) 성당에 다니는 이들에게는 원래 찾았던 성인이 있으면 그분에게 직접 기도하시고 아니면 성모님을 찾으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꼭 신부님을 만나 기도를 부탁드리라고 하죠.  

불교의 특성상 대놓고 매주 나가거나 신앙 생활이 지속적이지 않는 이들에게는 약사경의 어떤 주문을 외워라, 약사여래불을 염불 하라, 화엄성중을 찾으라, 혹은 무속을 따르는 자에게는 비방을 알려주기도 하고 급하게 여러 방법을 쓰기도 하고 부적을 쓰기도 합니다.  

이들에게 말해주는 모든 공통점은 이것입니다. 영화 속 천사가 내려올 때 정말 큰 빛이 생긴 다음 환환 하얀 빛이 주변을 모두 집어 삼킨 다음 천사가 내려오는 장면 마음속에 있지 않냐고 바로 그렇게 환한 빛을 생각하고 그 빛이 누워있는 생사를 오고 가는 이에게 비추고 있어서 그 빛이 모든 아픔을 녹이게 하는 상상을 하라고 말합니다. 

언젠가의 우리의 일일 것이고, 또 일이었던 의뢰자들의 마음을 어떤 단어로 형언할 수 있을까요.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일이 바로 코앞에 일어나 마비되어 있는 그들은 두려움이 가득 차 조심스레 묻습니다.

엄마, 아빠가, 나의 형제 자매가 죽을 운명입니까?
저희.. 준비해야 할까요?  

저의 대답도. 자세도 그리고 목소리 톤도 항상 같습니다. 뼈속까지 애렸던 어느 겨울날의 추위의 한기를, 품고서 봄날의 뭉긋한 따스함으로 인간애 대한예의를 지키려 노력하며 말하지만 
말문을 처음 띄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선생님 죽음이 천지신명만 안다고 하죠. 결국 아무도 모른다는 거에요. 죽음을 말하면 명이 다해서 못한다고 하죠 몰라서 그런 거에요. 이치에 맞지 않아요? 천기누설? 세상에 비밀이 없고 임금님 귀는 당나기 귀인데 어찌 하늘의 비밀이라 할지라도 지켜지겠어요 다들 말하고 다니지.  그건 누구도 죽음을 예언할 수 없다는 거에요”   
그래서 꼭 말합니다. 다시 말합니다. 목소리에 힘을 꽉 주고 정신 차리고 잘 들으라고 합니다

“죽음에 다다랐다는 연락이 아직 우리는 1%의 가능성이 있어요. 정신 차리고 들으세요! 지금 부고소식 받지 않으셨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야해요. 영적으로 할 수 있는 그 모든 것. 지성이면 하늘이 감응을 하신 대요.

그러니 이게 마지막이 될지 고비가 될지 모르지만 일프로의 가능성이 있는 이순간 제가 같이 할 테니 함께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모든 걸 할게요. 같이 해봐요. 제가 의사라면 의사의 위치에서 어떻게 도와 드리겠지만 저는 만신이고 만신인 저에게 연락을 주셨기에 거기에 맞게 해봐요 떨지 마시고 포기도 마세요 손 놓지 마시라고요. 아픈 사람 누워 있다 해도 다 느낀단 말이에요. 우리가 힘을 내고 움직여서 그 힘을 거울이 되어 반사 시켜 누워 계신 그분께 드려야죠.”  

내 마음은 항상 급해집니다. 내 입장에서 영적인 문제로 고비가 오는 것인지, 정말 가야 할 때 가야 하는 것인지, 우선 판단을 하고 지금 생사를 오고 가는 환자의 상황에 맞춘 각종 경전 중 상황에 맞는 것을 권해주고 식구에서 혹은 친구에서 혹은 동료에서 보호자로 역할이 바뀌어 정신없을 그들에게 일반사람들이 쉽게 구하기 힘든 것들 예를 들면 경전이나 비방을 하는 재료 등을 직접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 당일 배송으로 배달해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유튜브로 경전의 한 주문을 연속으로 들을 수 있는 유알에이를 알려주고 당장 부적을 받을 수 있는 주소를 알려 달라고 합니다. 

나의 일상은 오로지 이들에게 맞춰집니다. 다 맞춰집니다. 그 1%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자는 그 말, 꼭 지킵니다. 왜냐면 그들에게도 마지막 일 수 있지만 나에게도 마지막 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몸 없이 혼으로 찾아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급하게 비방을 제가 직접 하기도 하고 치성을 올리기도 합니다. 이 상황만큼은 아무리 이것이 내 직업이라 할지라도 그건 두 번째 문제입니다. 지금 그 1%의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고 내 모든 신들에게 고합니다, 

“살려주세요. 할마이, 할바이. 우리 신령님들.. 제발요...” 하고 향 하나 사릅니다. 

그리고 한 고비 넘겨 전안에 털석 주저 앉습니다. 네, 압니다. 지금까지 읽어 내려 오시면서 그래도 죽을 사람 안 죽을 사람 알지 않겠냐고. 네. 압니다 이렇게 급히 몫전까지 온 상황이면 대부분의 영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죽음의 기운을 느끼고 ‘못산다’고 말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내 신명이 그렇게 보여주고 말씀해 주셨다 하더라도, 안 믿고 싶습니다. 

어느 해, 어느 날 이었습니다. 
손님을 만나고 저와 같은 영적인 능력을 가진 이들이 여러 나라에서 오는 이들이 모이는 모임에 일년에 한번씩 나가게 되었지요. 세도나라고 불리우는 미국의 서부 어느 사막이었구요. 나와 같은 사람들 하지만 서로 다름을 존중하는 이들의 모임이 자연스레 만들어져 정말 좋았습니다. 몇 년 째 꾸준히 겨울 마다 나가다 보니 그렇게 나가는 걸 알게 된 여러 손님들이 생기게 되었고 각주에 다니며 그 손님을 만나며 그해 따라 다른 때와는 다르게 긴 여정을 보내고 왔습니다. 

좋은 기운 담고 오고 좋은 사람들 만나고 나와 통하는 사람들을 만나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그런 어느 날 손님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고모님이 돌아가셨어요” 네? 아. 그분. 자식도 없이 혼자 살아 내셨던 분 여기저기 아파도 이번 고비만 넘기면 살 수 있다고 괜시리 마음이 가던 단골네. 육십이 나이냐며 이 번에 나으면 장사해서 돈 많이 벌 수 있으니 산자락 입구에서 막걸리와 파전 팔자고 작게 한번 해보자고 매달 만나면서 힘을 서로 주고 받았던 분. 그분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허망했습니다. 늘 있는 일이지요. 하지만 마음이 간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간 만큼의 몇 곱절로 허망합니다. 그분에게 면회를 갔을 때 물어 보더랍니다. 

“이안 선생님은 한국에 오셨다나, 아니 내가 날 병인가 언제 퇴원하나 물어나 봐라 내 낫겠나” 
그리고 며칠 뒤 가지고 계신 지병이 급성으로 악화되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이안 선생님이 내가 난다고 하더나?” 

네 그럼요 나아요 힘내세요. 언능 나오세요 다 낫고 다시 돈 버셔야죠 그나마 육십 평생 중 지금이 가장 행복하고 돈 도 버시고 그래도 자매들 앞에서 떳떳해 지셨잖아요. 오늘 까지만 아프고 내일은 나오세요. 라고 저는 말하지 못했습니다. 시차와 기도와 또 여러 이동하면서 방해받고 싶지 않는 마음에 한국과의 연락에 뜸했습니다. 그때 내가 네 다 나으실 거에요 걱정 말고 언능 나오세요 라고 말 한마디 했다면 어땠을까 지금도 기억에 지워지지 않습니다. 

자식도 없이 그렇게 가버린 어쩌면 나의 미래일지도 모를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었을까요. 아무도 죽은 자를 위한 진오귀 굿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형제 자매 있더라도 다들 각자 살림이 있고 생이 있으니 이해합니다. 너무나 죄스러운 마음에 대답한번 그 1%의 가능성에 열어 보여주지 못한 죄책감에 내가 진오귀 굿을 아주 당연히 며칠을 준비해서 넋을 올려 만나는 그 순간 베시시 웃으시던 그 모습에 눈물이 터져 오열했던 그 기억이 가슴에 새겨져 지금도 그분이 떠난 어느 가을날이면 마음이 아려 옵니다.

네 그분이 알려주셨습니다. 이제는 어딜 가셨는지 모르겠지만 불러도 잘 나오시지도 않으시네요. 그 1%가능성은 우리모두 사경을 헤매는 이들이 죽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저 먼저 포기 하지 않는 것이산자는 최선을 다했다는 그 최책감을 감쳐줄 작은 천쪼가리를 주는 것일 테이고 망자가 되실 분에게는 나를 위해 마지막까지 이렇게 힘을 합쳐 생각해줬구나 죽어서 알게 된다면 그,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첫 여정의 출발선에서 가슴에 봄바람 불 듯 따스함으로 죽었다는 한이 덜 할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습니다. 
전화를 해온 그들도, 전화를 받은 바라지 해주시는 선생님도, 일상을 바로 접어버린 나도 모두 압니다. 죽음을 받아드리는 시간과 방법을 서로에게 가지는 시간이라는걸. 또 한편으로 1%의 기적을 바라는 마음이 영화같이 이루어 질 거라는 그 짧은 순간에 믿음이 무너진다 해도, 그래도 그 믿음이 그 바람이 산 자와 가신자를 토닥여 주기에 저는 아마도 큰 인생에서 변화가 없는 이상 이렇게 그 1%의 희망에 힘을 싣을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든 온 마음 다해 누워있는 저들을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 다시 만날 그 시간을 위해서요.  


후회할 것 같은 행동은 하지 마세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야 해요 꼭. 

김 유 주

쉬어가는 사람

내 꿈은 세계평화

1년 여의 여행이 끝이 났다.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티비 앞에 앉아 아름다운 풍경이나 혹은 그 안에서 행복해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여행의 반짝이고 아름다운 모습들만 상상했던 적이 있다. 현실은 먼지로 떡진 머리, 닳아서 찢어진 청바지, 늘어난 기미와 주름, 어딘지 냄새나는 행색으로 맞이하는 하루하루였다. 그렇게 매일을 한 걸음 한 걸음 걷다보니 지금, 서울의 내 집에 앉아있다. 모든 것이 꿈만 같다.  
집으로 돌아온 지 한 달이 흘렀다. ‘그래, 그렇게 여행을 다녔으니 얻은 게 뭐야?’ ‘앞으로 뭐 할 거야?’ ‘달라진 게 있어?’ 그 사이 주변에서 걱정과 동경이 어린 질문을 꽤나 받았다. 돌아온 직 후 들뜬 마음으로 글을 쓰다가 다시 접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고민해보았다. 답은…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여행을 돌아보며 꼭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보기로 한다.

하루하루만 살아보는 것
대체로 동경 어린 질문을 해 온 사람들은 한 번쯤 배낭여행을 마음에 품어 본 사람들이었다. 여행을 통해 얻어지는 것에 대한 그 기대어린 눈빛을 마주하고 있으면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아직까지 이 여행을 통해 내가 얻은 대단히 거창한 아웃풋은 없다. 대신, 확실히 대단해 보이지는 않지만, 여행에서는 하루하루를 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자!’ 라는 긍정적인 문구는 일상에서도 많이 접할 수 있으니, 시시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과는 다르다. 
장기 여행에서 어차피 내가 예상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하루 이틀 정도였고, 그마저도 예상대로 되는 법은 없었다. 그러니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레 미래에 대한 생각도 잊게 되었다. ‘위클리 플랜’, ‘먼슬리 플랜’ 혹은 ‘미래 설계’ 같은 말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말이다. 
단기 여행이라면 돌아갈 날을 떠올리며 하루하루를 아쉬움에 보내거나 이미 충분히 준비해 온 계획표를 따라 일정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장기여행에서는 많은 나라를 도착 전에 정보를 취합해 일정을 완벽히 세우는 것이 불가하기도 하고, 어제까지 예정에 없던 나라에 내일 도착하기도 한다. 가려던 곳에 못 가서 돌아오거나 돌아오는 길에 다른 곳을 가게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네덜란드로 들어가기 위해서 함부르크까지 갔다가 마침 행사기간이 겹쳐 숙박비가 말도 안 되게 올라버린 데다 간 김에 보고 오려던 고흐미술관은 예약이 꽉 차서 결국 네덜란드 땅은 밟지도 않고 예정에 없던 독일의 다른 도시를 여행하게 된 것이 그런 경우다. 동남아 6개국을 3개월 동안 여행하려고 했지만 태국에 푹 빠져서 두 달을 꽉 채워 여행하게 된 것도 그런 경우다. 반대로 캄보디아처럼 도착하자마자 마음에 들지 않거나 라오스의 시판돈처럼 물이 몸에 맞지 않아서 계획보다 일찍 떠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보니 해야 할 일은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보내고 나의 마음에 솔직해지는 것, 당장 펼쳐진 것들만 즐기는 것이었다. 그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도, 해야 할 것도 없었다. 오늘의 내가 내일을 선택할 것이고, 내일이 지난 미래는 예측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소한 일상도 미션이 되는 것
사실 여행에서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만 해도 벅차다. 모든 것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낯 선 나라에서는 밥 한 끼를 먹는 것도 미션이 된다. 한국에서는 숨 쉬듯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들이 낯 선 곳에선 모두 ‘해내야’ 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돈이 많다면야 그것마저도 수월하겠지만 가격표가 없는 낯선 언어로 가득한 메뉴판을 들여다보는 것이나 알 수 없는 간판을 보며 메뉴와 가격대를 살피는 것이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음식이 적당한 금액에 현지인의 삶을 맛 볼 수 있는 것이었을 때, 그 뿌듯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이렇게 일상에서는 당연한 일들도 노력이 필요하고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하나의 미션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밥 세끼 먹고 길만 잘 찾아가도 하루가 고단함과 성취감으로 가득 채워질 수밖에 없다. 장기여행은 계획을 세울 수 없는 만큼, 눈을 뜨는 순간부터 직접 부딪혀서 얻어야하는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일상적인 것의 소중함을 더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내 경우, 어릴 때부터 고소공포증이 있었는데, 여행을 하면서도 그것 때문에 많이 울고 좌절해야 했다. 한국에서야 그걸로 고생할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에서는 달랐다. 예상하지 못한 환경에 처하는 일이 많았다. 매일 그것을 극복하는 게 나의 ‘과업’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고소공포증을 극복하는 데에 큰 성과를 올렸다. 이런 표현들을 쓰는 이유는, 일상에서는 일이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여행에서는 ‘나’와 관련된 사소한 것들이 이루어내야 할 ‘일’이 되기 때문이다. 

다양한 삶을 통해 위로 받는 것
여행하면서 다양한 삶의 모습을 구경했다. 풍경이나 유적지 같은 관광지는 어느 순간 감흥을 잃지만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흥미로웠다. 
직장인의 삶은 다 똑같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직장인도 나라마다 달랐다. 긴 휴가 때마다 배낭여행을 간다는 사람들을 보면서 직장인이 아니어도 5박 6일 단기여행조차 어려운 한국을 떠올렸다. 스무 살 때부터 집 없이 수십 년을 여행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단벌신사인 그녀는 언제나 자신감 넘치고 멋있었는데, 조금만 대화를 해보면 들고 있는 것은 단촐 해 보이지만 그녀가 품은 세계가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한국을 여행했을 때, 한국인에게 받은 친절을 잊지 못한다며 우리에게 큰 친절을 베풀어 준 베를린 출신의 친구는 에어비앤비와 주식으로 수익을 내며 집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함께 네팔로 국경을 넘은 일본인 친구는 요가를 공부하러 왔다가 몇 년 째 인도에 살면서 인터넷 강의로 요가 수업을 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물론, 외국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도에서 만난 멋진 60대의 한국인 친구는 평생 교편을 잡다가 은퇴하고 철인삼종경기의 한 종목에서 활약했다고 했는데, 갠지스 강으로 유명한 바라나시에서는 꽃무늬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신나게 도강을 하시기도 했다. 그리고 여행에서 만났다는 그녀의 동년배 친구 분도 언제나 긍정적이고 편견이 없는 맑은 분이셔서 배울 점이 많았다. 두 분은 여전히 내 짐보다도 훨씬 큰 짐을 메고 배낭여행을 하고 계신다. 
그 외에도 처음보는 직업들을 가진 현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고,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낯선 삶의 풍경들을 보며 내가 살아온 삶이 얼마나 좁은 틀 안에 있었는가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삶들 중 아름답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고, 그들 사이에 우열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아,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하는 탄식어린 말이 입 밖으로 나왔을 뿐. 
여행지의 풍경들은 잊어도 사람들의 모습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게 당장 나에게 가장 간절한 소원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그 모습들이 내가 불안해질 때마다 “그렇게 살아도 돼.” “지금도 괜찮아” “그것도 좋지” 하는 응원의 목소리가 되어줄 것 같기 때문이다. 

포장을 벗겨낸 나를 만나는 것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나의 모습을 많이 봤다. 썩 좋지만은 않은 모습들이었다. 그 모습이 예전에는 숨겨야하는 것이었다면 여행을 하면서는 그 모습조차 내 모습으로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 작은 변화라면 변화였다. 내가 선하고 바른 사람으로 살기 위해,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부끄러운 내 모습을 숨기기 위해 참 정성껏 곱게도 포장을 해오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타인을 위한 것인지 스스로의 가치관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유가 어찌 되었건 그 선택들로 내가 나의 어떤 모습들을 배제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걱정과는 달리, 그 모습들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오히려 ‘이게 나구나.’ 하며 놀랍고 또 반가웠다. 반가움의 이유는 아마 그 모습에는 타인에게 사랑받는 나, 타인에게 미움 받는 나가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냥 온전히 ‘나’가 있었을 뿐. 그리고 포장을 벗겨낸 내 모습도 뭐, 썩 나쁘지는 않았다. 찌질하고 한심하고 때때로 못되기까지 한 내 모습도 싫지 않았다. 마음 속 한 구석에서 중얼거리는 소리를 인정하고, 그것이 누군가에게 피해가 된다면 솔직하게 사과하면 그만이다. 

순간의 소중함을 체험하는 것
누군가에게 여행을 추천한다면, 나는 앞에 언급한 것들은 이야기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다음의 단 한 가지 이유로 여행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는 것이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아갈 때는 몰랐는데, 방랑자의 시선에서 세상을 보니 세상은 정말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인도여행을 강력하게 추천해주신 지인 분을 돌아와서 만났다. 그 분이 인도를 여행했던 90년대에는 델리 길거리에 시체들이 아주 많았다고 한다. 지금의 델리는 빠르게 성장하는 인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기대를 보여주는 곳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아마 다음에 올 델리는 또 다른 이미지로 기억될 것이다. 내가 판공초에 있을 때쯤에는 한국의 예능방송에서 그 지역이 방송을 타며 이슈가 되고 있었다. 아마 판공초도 다음에 올 때는 더 많은 사람과 장사꾼들로 붐비고 있을지 모른다. 여행을 하면서 한 도시를 다시 돌아가는 경우가 있는데, 몇 주 혹은 몇 달 사이에도 많고 적은 것들이 변해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몸으로 변화를 체험하면서 순간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 내가 보는 이 땅은, 내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판공초에서 느낀 바람과 초모리리에서 느낀 고요함이 내일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걸 깨닫고 난 후부터의 여행에서는 “아, 여기 오길 잘했다. 지금 봐서 다행이야.”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나는 그래서 여행을 추천한다. 고민하지 말고 지금 당장 가라고 말이다. ‘오늘은 내일 존재하지 않는다.’ 그걸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 나에게는 큰 경험이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그 경험을 통해서 지금, 오늘의 중요함을 크게 배웠다. 거기에는 당연히 사람들도 있다. 여행 중, 사랑하는 삼촌이 떠났다. 귀찮아서 피했던 전화, 다음으로 미루던 만남 모두 후회가 되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내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오늘에는 풍경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함께하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까지도 내일은 없을지 모른다.

1년이라는 시간은 무언가를 깨닫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우스갯소리로 ‘1년 여행해서 뭔가를 깨달을 거였으면 35년 동안 왜 아무것도 못 깨닫고 살았겠냐?’ 라는 말을 했었는데 정말 그랬다. 1년의 시간으로 인생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귀국하는 길 작은 다짐 하나를 해봤다. 얼마 안 갈 것 같은 다짐이지만 괜히 주먹도 꽉 쥐어보면서 말이다. ‘남들과 다른 삶을 사는 것을 불안해하지 말자’ 라는 다짐. 
남들과 달라질 때 나는 종종 두려웠다. ‘그래도 남들처럼은 살아야지’ 라는 목소리도 가끔씩 아니, 자주 들려왔다. 내가 떠나기 전, 내 주변은 다들 공통된 것을 갖고 있었다. 그 공통점을 모두 80%는 갖고 있는 것 같았고, 내가 그것을 갖지 못했을 때 나는 부족한 인간이 되는 것 같았다. “너 그 드라마 봤어?” “너 거기 가봤어?” “너 그거 먹어봤어?” 남들이 먹는 건 다 먹어보고 싶고, 남들이 가본 곳은 다 가보고 싶고, 남들이 다 갖고 있는 건 나도 갖고 있어야 기본은 갖추는 것 같다고 느꼈다. 거기에 “이 나이에...”가 앞에 붙으면 불안은 더 가중됐다. ‘이 나이에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나보다 어린 저 친구도 저렇게 잘 나가는데..’ 모두가 같은 언어를 쓰는 한 나라 한 도시에 살아가면서 나는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마치 눈앞에 있는 모두의 삶이 들여다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늘 나보다 나아보였다. 


1년 동안 가진 것 없는 허름한 행색의 여행자로 살면서 많이 가진 것이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 1년 동안은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이 부럽지 않았다. 

귀국 7일차, 오늘도 가장 바라는 내일은, 내가 바깥세상을 바라보느라 나의 세계를 바라보지 못하고 불안해지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이 바람이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지만, 그래도 바라보는 것이다. 출국 전의 두려움과 불안이 제발 내일 아침 나를 찾아오지 않기를, 조금만 더 늦게 찾아오기를. 
앞으로의 시간들은 높고 험하고 미끄러운 산을 맨발로 오를 때처럼 노력과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지금 내가 가슴에 품고 있는 이 마음을 절대 놓지 않을 노력과 용기. 뭐, 몇 일 안 가 실패하면 또 어때, 그때는 다시 또 떠나면 되지. ‘앞으로의 빛나는 내 삶을 응원한다!’ 하는 마음보다는 대단한 삶을 살 필요 없다는 마음이다. 그냥 내 삶을 살아가자. 내 세계를 더 들여다보자.  아, 문득 중2병 시절 교과서 여기저기 낙서하던 문장이 떠오른다. “내 꿈은 세계평화다. 세계평화는 모든 사람이 각자 아름답게 사는 거야.” 세상의 진리는 사춘기 때 깨닫고 성인이 되며 잊어버리나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세계를 살기를 꿈꿔보며 글을 마친다.  

23-10월호214.png

김 희 진
노동자

이성의 거주를 위한 살림 설계도

연극은 하나하고 둘에서 시작한다. 다음을 생각하고 정돈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익숙한 것은 시선을 끌지 못한다. 그래서 배우는 낯선 방법으로 몸을 드러낸다. 속옷을 살짝 드러내거나, 쇄골을 과시한다. 정교히 만든 얼굴을 약간 찡그려 여드름을 쥐어짠다. 감정을 과장하고, 쓴 목소리를 낸다. 기능이 결핍된 옷을 입고, 유혹의 단상 앞에 선다. 다리를 조금 벌리고, 허리를 약간 흔든다. 말하자면 사랑을 모방하는 몸짓이다. 매우 기계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피스톤 운동을 한다. 사실 감정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감정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다. 명심해라. 사실 같은 것은 본질과 별로 연관이 없다. 비록 모호할지라도 목적을 위한 경계를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제대로 웃어라. 어떤 모순에 고독을 느끼더라도 시선을 고정해라. 살아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
던져진 성기가 운동하는 이유는 시장의 톱니인 바구니를 벗어나 오히려 불안정한 위치에 있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고, 그는 다시 자신이 전시장에 위치하기 위한 것이었다. 어린아이가 자라는 (그래야 하는) 이유도 같은 이치다. 이런 식으로 톱니의 연극은 철저하게 존재한다. 누구든 잘 팔리는 것을 탐구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다채로움 없이 지루한 세계다. 얼룩의 벽에 갈겨 놓은 못은 앙증맞은 것이 아니다. 다시 나는 회전하고, 회전한 다음 또 흔든다.(흔들린다.)
사라지지 않고자 노력함은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이 특별히 안정적인 이상은 언제나 보존할 것이 있어야 성사되기 때문이다. 피리를 불면 어떤 공명이 일어나 상쾌한 소리를 낸다. 이렇듯, 고유함의 의미도 불연속적으로 나타나 분포한다. 무대 아래 관찰자는 다시 구체를 바라본다. 다들 작은 사각형 안을 들여다보며 늘어진 배를 내놓고 있다. 귀에는 알 수 없는 식물이 이어졌고, 어깨에는 옥색의 죽지 않은 끈이 겨우 걸쳐 있다. 가슴에 그려진 황금비율의 사각형이 그나마 안정을 준다. 
결국은 무릎을 꿇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처마에 피어난 꽃은 공들여 만든 페인트가 무색하도록 지나치게 화려하다. 신발 근처에는 노란색의 사다리꼴과 푸른색의 삼각형 주황색의 부채꼴이 피어 있다. 밑창은 근처에 많이 잘 존재하지 않는 흔적의 색. 천장은 많이 닫혀 있다. 도대체 다리를, 입을 웅크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을 항상 해왔는데. 지금은 그 동기조차 까먹었다.

술에 절인 손잡이가 흔들리듯 양말이 접혔다. 너무나 바란 것들도 자신을 소리쳤다. 서로 등을 맞대고 선 돌들이 홱 하고 돌아서 입을 맞출 때까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동안 초점을, 빛을 잃은 눈으로 무대를 돌아다녔다. 무엇을 바라보는지 나조차도 알지 못했다. 나를 바라보는 눈은 혹시 알고 있었을까. 연기가 아닌 울음을 연기하지 못하는 연기를 했다. 여태 이 표현을 너무나도 미워했다. 오히려 흔한 것이라 내가 감히 그대로 연기할 수 없을 것이라 두려워했다. 왜 그것을 물었나. 난 어떤 위치를 갖고있나. 사실은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자연스레 엎드려서 내 몫의 빛을 내었다. 잠시 연기 아닌 무대를 했다. 어두운 구름은 빛나는 태양 아래에서 움직인다.
극장을 나와 절인 오이를 비닐봉지에 한 아름 담아 휘두르며 걸었다. 팔에 놓은 획도 같이 돌았다. 때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음을 지으며.  
 

23-10월호217.png
23-10월호218.png

이 채 연

창작가 / 관심 받고 싶어 하는 주부

금쪽 살림 솔루션

아마도 눈치 챘겠지만, 글의 제목은 TV프로그램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왔다. 이 프로그램은 금쪽같이 소중한 자식을 육아하는데 있어서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베테랑전문가들이 모여 코칭을 해주는 내용이다. 주로 소아청소년과 의사이자 육아 멘토인 오은영 선생님이 코칭을 해주신다. 이 프로그램에서 코칭을 솔루션이라 부른다. 솔루션(solution) 해법, 해결책. 도무지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아이, 이미 굳을 데로 굳은 마음으로 인생을 사는 어른에게 오은영 선생님은 솔루션을 한다. 진짜 솔루션대로 하면 변화가 가능할 것인가? 그런데…. 바뀐다. 출연자 대부분은 개선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정도의 차이가 있고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해법(솔루션)이나 묘책이라고 하는 것을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라면 무어라도 믿고 해볼 수 밖에는 없다. 믿는자에게 길이 있는 것 같다.

어느 날 아침.
솔루션이 필요하다! 는 내 안의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금쪽이다!

솔루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들게 해준 것은 무쇠 팬이다. 요리할 때 쓰는 무쇠로 만든 후라이팬.
무쇠팬에 계란 후라이를 했다. 계란 후라이에 거뭇거뭇한 뭔가 묻어 있었다. 무쇠팬에 쌓인 기름때인 것 같다. 설거지할 때 빡빡 닦는데도, 닦아도 닦아도 검은 때가 나왔다. 묵은 때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아무래도 이렇게 검은 때가 많이 나오는 것은 정상이 아닌 것 같다. 이상하다. 그 전까지는 팬에 기름이 쌓이고 닦고 하면서 사용하기 좋게 길들여 진다고 생각했다. 어디선가 그렇게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잘못된 생각 같다. 그냥 검은 때, 이물질, 안 좋은 물질인 듯하다. 아… 이런…. 왜 이제서야 깨달었을까? 이런 바보 미련퉁이!

우리집에는 무쇠팬이 몇개 있다. 무쇠팬은 요리하기도, 관리도 어렵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 속에 ‘난 꽤 잘 하는 편이고, 센스도 있어~’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기도 했다. 사용 메뉴얼도 있고, 잘 모를 때는 인터넷에 널린 사용후기들 보고하면 되지. ‘뭐~ 그렇게 어렵진 않을 꺼야.’ 하며 고민없이 구입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고 팬에 들러붙은 기름 때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내 속을 썩인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음…. 당장 팬을 버려야겠다! 아니, 먼저 빨리 인터넷으로 팬을 주문해야지. 오전에 주문하면 다음날 배송 받을 수 있겠다. 그래야 내일 저녁식사준비에 팬을 쓸 수 있지! 10초안에 구매완료. 초스피드로 쇼핑에 집중하고 나니 에너지 소모가 크다. 조금 쉬고 버리는 건 좀 쉬고 하자.
아차, 저번 명절에 시어머님이 명절음식과 함께 챙겨 주신 후라이팬이 있지. 주방 수납장 어딘가 구석에 둔 것 같은데…. 그걸 깜빡했네. 그거 꺼내 써야지. 바로 아까 인터넷으로 주문한 후라이팬을 취소한다. 에고, 주문했다가 바로 취소. 뭐 한거지~~ 인터넷 쇼핑에 집중한 에너지가 아깝다. 에너지 충전을 위해 거실 바닥에 앉았다. 멍 하게 있다가 버릇처럼 자연스럽게 팔을 뻗어 옆에 있는 책장 선반을 슥 만져봤다. 먼지가 떡볶이 떡 굵기만큼 쓸린다. 이노무 먼지새끼 언제 또 이렇게 쌓인 거지. 참 잘 쌓인다. 먼지처럼 돈이 통장에 착착 쌓이면 얼마나 좋을까? 돈은 쌓이자 마자 곧 먼지가 된 것처럼 사라질 테지만…. 그래도 나는 부자다~ 먼지부자~
그러고 보니… 얼마전부터 두통이 있었는데, 집안에 쌓인 먼지가 원인인가? 팬에 묻은 검은때 때문인가? 아니면 둘 다 인가? 이런 생각이 들자, 가족들에게 미안해졌다. 살림을 이따구로 해서…. 아니, 그 정도로는 두통이 생기지는 않을거야~ 두통의 원인이 찾을 수 없어 답답하니까, 원망 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던 거야. 이런저런 방향을 잃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세탁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 우당탕탕탕당땅탕. 세탁기 내부가 부서지고 있나? AS 받았고 부품도 교체했는데 뭐지… 이유가 뭐지? 세탁기야 말을 해라!

암튼 
엉망이다. 모르겠다. 모르겠어 

어디선가 
오은영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에효 저런... 후라이팬 관리가 제대로. 안되었군요.” 
“에고...거기다 청소도.” 
“저럴 때는 말이죠……” 
내가 살림하는 모습이 방송되고 있고, 전문가와 패널들이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중요한 솔루션을 내리실 것 같은데…. 들리지 않는다. 소리가 흩어진다. 
 

+작업에도 솔루션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업이 좋기도 하지만 잘 안 풀릴 때는 나 자신에 대해 의심하고, 부정하고… 하는 나와의 대화를 하게 된다. 그 답이 없는 돌고 도는 대화는 늘 명확한 솔루션이 없었다. 누군가의 명쾌한 코칭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런데 그 어떤 솔루션을 듣더라도 제대로 들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살림을 잘 하는 편은 아니지만… 매사 어리버리 한 내가 이만큼 하고 있는 게 ‘의외’라고 생각된다. 대견하다. 그런 의미로 아래의 그림과 글을 넣었다.  

살림의 여왕의 트로피

무엇이든 뭐든 다 귀찮게 만들어 버리는 무더위가 기승인 어느 여름 날. 저녁준비를 하기 위해 찬장을 열었다. 그 안의 그릇이 뒤죽박죽 쌓여서 쓰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었다. 계속되는 더위에 살림의지가 꺾여버려서 신경을 못 썼더니, 그런 안쓰러운 모습이 되어 버렸다.

살림을 소홀히 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더운 날에 가족을 위해 식사 준비하는 내가 참 대견한 것 같다.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수고했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23-10월호222.png
23-10월호223.png

오 종 원

문화예술인력 / 피그헤드랩 운영

공모지원사업, 지원자, 주최자

지난 10월 14일, 짬을 내 우연히 라이딩을 나왔다가 잠수교 남단에서 뭔가 작은 축제의 장 같은 게 형성된 것을 보았다. 참고로 세빛둥둥섬 바로 옆이다. 이곳은 평소에도 이런저런 행사들을 자주 열었기에 쉽게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이날 따라 발길이 가게 되어 들렸더니 로컬라이프클럽(줄여서 로라클. 이는 해당 공식 홈페이지에도 언급되는 표현이다) 행사라는 것이 진행되고 있었다.
로라클은 전국에서 진행되는 청년마을 사업의 성과를 보여주는 일종의 부스행사라고 생각하면 좋다. 홍천, 보은, 진천, 예산 등 들어는 봤지만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지역들의 이름이 한 부스 씩 걸려있었다. 본 사업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체로 방문을 한데다 자전거를 가지고 있는 상태라 그냥 둘러만 보려고 하였는데 보다 보니 지역의 로컬 콘텐츠들이 보이더라. 가령 군산의 경우에는 <술익는 마을>이라 하여 자체 제작한 막걸리 키트를 판매하였는데, 군산이 과거 일제시대 때 미곡 수출고였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어서 순간 흥미가 생기더라. 그렇게 보다 보니 각 부스들이 자기들 나름의 스토리 텔링을 배경으로 로컬 콘텐츠를 개발한 것이다.
로라클, 청년마을에 대해서는 이번에 처음 보게 되어 조금 찾아봤더니 행안부가 진행하는 나름의 로컬 사업이다. 각 지역의 청년 단체들에게 지원금을 제공하고 해당 지역에 걸맞는 로컬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인지하기로는 일종의 청년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이며, 현재까진 총 39개의 청년마을이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었던 몇 부스들을 소개해보자면, 우선 경남 함양의 <고마워, 할매>가 있었다. 해당 사업은 “도시로 떠난 손녀가 시골 할매에게 돌아와 따뜻함과 고마움을 느끼는 모습을 상징화”(홈페이지 발췌)하였다는 컨셉으로 1인 가구 노인(할매)에게 요리를 배워 이것을 일종의 레시피화 하는 것이다. 얘기를 듣는 순간 <리틀 포레스트>같은 영화가 떠오르는 풍경이었다. 이미 할머니 한 분과 작업이 진행되었고 관련된 굿즈(레시피 카드, 수제 두부 틀)가 준비되어 있었다.
지역민과의 상생, 노년층에 대한 관심 사이에서 탄생하는 레시피 같은 콘텐츠들은 다소 심플한 아이디어라고 생각되더라도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노년층, 특히 1인 노인 가구에 대한 관심은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것인데 이를 자유로운 개인이나 주민센터의 의무 정도로 위탁하기보다 수익구조를 구상하는 단체에게 맡기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일단 들었다. 이런 사업적 접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는 일이지만 어떤 딜레마를 해소하는데 분명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늘어나는 노년 세대는, 다소 과장된 표현이지만 그들이 아직 우리 사회의 일원임을 인식시키고 그들과 함께 활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일테니. 참고로 곧 성수동 팝업스토어에서 해당 할머니를 모시고 식당과 관련 프로그램을 열 것이라 한다.

23-10월호225.png

충북 보은 회인이란 곳에서 진행되는 <라이더타운 회인ㅎㅇ>도 개인적으로 재밌게 봤다. 바이크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는 이들이라면 한번쯤은 들었을 법한 ‘피반령’이라는 긴 언덕이 이곳에 있는데, 해당 언덕은 국도로 연결되어 있고 대청호 풍경도 근처라 오토바이든 자전거든 라이딩을 하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가보게 되는 장소이다. 이곳에서 라이더들을 대상으로 정비, 숙박, 코스 추천, 가볼 만한 곳을 추천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한다.

이게 인상적인 이유는 나도 자전거라는 취미를 갖고 라이딩 여행을 하다 보니, 나같은 라이더들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들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그나마 우리나라가 자전거 길과 치안은 세계에서도 손 꼽을 정도로 잘되어 있다지만 그럼에도 대도시를 제외하면 어떤 서비스가 아쉬울 때가 있다. 또 우리나라 자전거 길은 몇 개의 정해진 종주 코스 외에 어딘가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서비스들을 한 방에 제공하는 곳이 있다면 종종 여행 겸 갈 것이란 생각을 하였는데, 마침 이 마을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지역 명이 생각나지 않지만 투어 및 걷기 프로그램들을 선보이는 것도 꽤나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자전거를 언급하였지만 이 외에도 캠핑, 런닝, 등산, 야간산책 등의 취미를 즐기는 인구들이 대폭 증가하는 추세로 알고 있는데 이런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패키지 프로그램이 있다면 해당 지역에도 크고 작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일반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여행 패키지와 는 달리, 지역 및 지역민과 커뮤니티를 가지며 좀더 알짜배기 경험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고착화 되지 않은 가능성들이 열려 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 이제 아쉬움을 이야기할 차례인데, 행사 홍보의 아쉬움이나 이런 것은 어쩔 수 없다 치고(심지어 내가 요즘 많이 고민하는 지점이라 해당 공무원의 노고를 이해하는 바이고) 참여하는 청년마을의 콘텐츠 준비에 대해서는 아쉬운 부스들이 적지 않았다.
사실 준비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부스들을 보다 보면 정말 열심히 준비했구나 싶은 부스도 있었지만 다소 성의가 부족하다 느껴지는 부스들도 있었다. 조금 양보하여 거리가 멀고 서울에 거점이 없다면 아무래도 부스 인테리어 같은 것은 어려울 수도 있겠다 생각은 하지만, 콘텐츠 자체의 준비성은 해당 사업 수혜의 무성의로 보여지기 충분한 것이다. 먼저 아쉬웠던 것은 굿즈 위주로 선보이는 지역들이었다. 물론 나름의 다양한 콘텐츠들이 모두가 어떤 키트나 뚜렷한 매체로 보여지지 않을 수 있겠고, 그러다 보니 지역 사진 엽서나 메모지, 뱃지 정도로 홍보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가 은근히 많았다. 단순 홍보관의 역할 하라고 지원하는 것이 아닐 텐데 정말 그 정도에서 마무리하는 것은 좀 아니다 싶다. 가령 부산의 경우, 나는 부산 광복로에 있는 로컬 굿즈샵을 간간이 방문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데, 그 곳 과도 차이가 나는 편이라 아쉬움이 컸다.
예술을 기반으로 하는 부스들의 경우들도 고민해볼 문제이다. 그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자체 문화예술 콘텐츠를 기반으로 키트를 제작하거나 시연을 하는 경우이다. 물론 여기서, 나는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창작을 하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라는 것을 얼추 알고는 있다. 하지만 여기서 딜레마는 이런 로컬 콘텐츠 지원 사업이 과연 개인의 예술선상의 연장처럼 다뤄질 수도 있다는 것과 그 다음으로 행위의 수행자가 과연 그러한 인식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그러한 부스를 하나 발견하고 이야기를 잠깐 나눠봤는데, 그들은 자신의 지역의 감각을 이렇게 시각예술로 표현한다며 시각예술 작업물을 비치하였고, 판매 혹은 배포용 키트들도 그러한 지점에 맞는 색 등으로 구성하였다고 답하였지만 내 관점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 문제는 여기 뿐만 아니라 지역육성 사업 중 문화예술 지원 사업의 고질적인 딜레마 중 하나이고 개인적인 할 말은 많지만 언젠가 기회가 있을 것이라 본다.
이제 제일 아쉬운 것을 꼽자면 행안부에서 운영한다는 로라클 사이트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 글을 쓰기가 조금 조심스러웠던 것이 행사 자체는 너무 급작스럽게 마주쳤던 지라 잠시 짬을 내어 둘러본 정도이고, 그러다 보니 본 문을 작성하기 위해 해당 사업과 홈페이지를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나 행안부 로고까지 박은 로라클 사이트는 사업의 성격에 비해 너무나도 제한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고 제작 구성을 보면 관리가 잘 안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왕 지원하는 거, 온라인 접근성이라도 원활하게 해주지 않는다면 나처럼 이제서야 관심을 가지는 이들은 어떻게 정보를 얻으라는 것인가. 이렇게 되면 결국 소모적인 사업밖에 되지 못하는 것이다.
마지막에 조금 흥분한 감이 있지만, 아무튼 개인적으론 재밌게 본 행사였고 주변에도 놀러 와보라고 권하게 되는 지점들이 있었다. 미소를 지으며 행사장을 떠나게 만든 게 마지막에 하동 부스를 지나치면서 인데, 군밤을 직접 구워서 나눠주며 몸으로 뛰는 모습이 꽤나 보기 좋았다. 밝은 모습으로 계속 군밤 드시고 가시라고, 맛있다고 하면 해당 밤으로 만든 파이를 홍보하고는 하였다. 클래식하지만 이런 모습들이 우리가 인식하는 청년세대의 몸으로 뛰는 모습이구나 싶어 훈훈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서 예술인 복지재단의 파견사업을 떠올려 보게 되었는데 같은 사업은 아니지만 비슷한 구색이 있었고, 본 사업의 주최측이나 참여자나 마찬가지인 다양한 고민들을 병행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청년(예술가)과 지역(대상)을 잘 융합하고 미래를 기약할 수 있을 것인가. 또 어떻게 해야 우리는 떠도는 가치들을 실존하는 가치로 증명할 수 있을까.  
 

23-10월호227.png

<지금 이시각>, 월간지 형식의 월간 아카이브 프로젝트

기획자 : 오종원, 발행 : 피그헤드랩

<지금 이시각> 내 포함된 모든 내용물의 저작권은 각 저자와 피그헤드랩에 있으며 무단 도용 등은 불가합니다. 내용 내 일부 민감할 수 있는 내용은 피그헤드랩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알립니다.

​<지금 이시각>은 PC로 볼 때 더 알차게 볼 수 있습니다.

 

​과월호 보러가기

2023년 :  11월호  10월호   8월호   7월호   6월호   5월호   4월호   3월호   2월호   1월호

2022년 : 12월호   10월호   9월호   8월호    7월호   6월호    5월호

PDF로 보기(다운로드) : 

https://drive.google.com/drive/folders/1u-0z8QrEmpNhx838sELutc0DokkcPxYc?usp=share_link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