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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시각>_ Time Now

<지금 이시각>, 월간지 형식의 월간 아카이브 프로젝트

기획자 : 오종원, 발행 : 피그헤드랩

<지금 이시각> 내 포함된 모든 내용물의 저작권은 각 저자와 피그헤드랩에 있으며 무단 도용 등은 불가합니다. 내용 내 일부 민감할 수 있는 내용은 피그헤드랩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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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시각> 2022년 10월호, 참여필진 : 석민정, 오종원, 이안, 이은우, 이채연

​신규 참가자 및 게스트를 환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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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
원형아티스트 / 누가 뭐래도 세계에서 젤 잘나가는 만신

(가칭) 부적 프로젝트_2

편집자 : 2022년 9월호부터 이안 필진의 신규 프로젝트가 진행 중입니다. 매달 사연을 받고 그 사연에 대해, 이안 필진이 만신으로서 답변과 이에 따른 부적을 제작해 드립니다. 종교 혹인 신앙의 측면에서 부적이란 것에 호불호가 있을 수 있으나, 본 작업은 이안 필진의 전통 계승 및 독자적인 해석 차원으로 창작의 측면이 강하며 또한 받아들이는 분들께서도 이것을 부적은 물론 자신의 소망을 위한 심볼, 도상, 기하학적인 무늬, 작품 등 상징으로 해석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매달 1~3명 내외, 익명으로 된 사연을 피그헤드랩에서 취합 후 이안 필진에게 보내는 방식이며 본 과정을 통해 제작된 부적들은 먼저 이미지로 사연자에게 전달되고 이후 취합하여 전시로 제작할 계획입니다. 전시 종료 후 부적들은 사연자들에게 배포될 예정입니다. 이는 진행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 본문에 게시된 사연은 일부 각색된 내용입니다.

부적에 대한 소개
부적은 여느 종교와 신앙을 넘어 인류의 여러 문명과 고금을 막론하고 지역을 넘어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 안에서는 언제나 존재했습니다. 제 기억으론 가장 오래된 부적은 이집트 문명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부적의 정의는 매우 간단합니다. 종이가 개발되기 이전에는 나무나 혹은 돌에,  종이가 널리 퍼진 시대에는 주로 종이에다 성스럽게 여기는 재료로 ‘원하는 무엇을 이루기 위해 특정한 상징, 혹은 기호를 새겨 넣은 것들을 부적’이라 불렸습니다. 이전시대의 인류도 그리고 지금의 우리도 부적으로 몸을 보호하기 위해 지니거나, 성스럽지 못한 장소에 부적을 두고 정화를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말 그대로 부적은 ‘지금의 삶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위한 기원의 산물’이라고 보면 가슴에 와닿지 않을까요? 동학운동 때 실제로 난을 치루기 전 여러 전쟁의 도구와 함께 부적을 손이나 종이 그리고 옷에 그려 참여했다고도 하고 그 부적이 아직도 전해 내려져 오기도 합니다. 나라를 상대로, 우리보다 더 큰 강력한 군대를 상대로 이겨야 한다는 그 절박함과 신성한 기운을 담고 있는 기호와 상징의 힘으로 역경을 이겨내고자 하는 절절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부적은 불안감으로 도저히 잠들지 못한 절절함을 바탕에 두고 지금보다 나은 삶을 향한 인간의 ‘바람’을 새겨 넣은 종교와 신앙 그리고 기호학의 바탕에 둔 인류의 여러 문화 중 하나의 찬란한 문화유산일 것입니다. 
서양에서도 부적 있을까요? 예, 있습니다. 다만 노란색 괭지, 한지 위에 쓴 빨간색 물감 혹은 경면주사가 아닐 뿐이지요. 넌(noun)혹운 눈 이라고 불리는 것인데 돌에다 기호를 적어 넣고 그것으로 점을 보기도 하고 몸에 지니고 다니며 호신 용도로 쓰기이기도 합니다. 또 넓게 보아 상징의 의미로 십자가, 크로스 형태 또한 성스러움을 은유하고 있는 부적의 한 종류일 것입니다. 확실히 말하고 싶은 것은 부적은 여느 종교와 신앙에서의 성스러운 기호이자 상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불교, 혹은 무속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동양에서 특히 한국에서, 부적의 이미지는 매우 강렬합니다. 알 수 없는 상징들, 노랗고 빨간 조합과 함께 쓰인 기호들이 차곡차곡 한 장 한 장, 적인 것들을 두툼하게 지갑에 두고 다니거나 한 종이에 여러 의미의 부적을 종합적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부적은 한반도 역사에서 들여다보면 우리 선조들이 만든 부적들이 몇몇 존재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최치원이 쓴 만갑적갑부와 위에서 거론한 동학운동에서 쓰인 부적 등이 있습니다. 그 이외엔 대부분 중국을 통해 전해진 도교와 불교에서 발생한 부적이 주를 이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실제 중국이나 홍콩, 대만을 가보면 우리와 비슷한 부적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또 그들은 그들만의 특화된 부적을 사원, 우연히 들린 밥집에서, 혹은 생각지 못한 곳 그러니까 대형 호텔의 로비에서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 부적들과 한국의 부적들이 똑같진 않습니다. 맥락을 같이한 부적이라도 문화의 혼종을 겪고서 나라와 지역마다 토착화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제작하는 부적은 재료를 중시 여깁니다. 노란색종이와 경면주사를 말하는데요, 노란색한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음양오행의 이론을 들여와 노란색은 중앙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한 가운데 존재하는 최고 혹은 이 성스러운 부적을 지니는 이를 상징하고 이로써, 부적의 효력을 극대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경면주사는 한약의 재료로 쓰이는 돌가루의 일종인데 한국에서는 나오지 않기에 전량을 수입하지만, 그것도 정식수입이 아니라 중국의 보따리상 혹은 밀수에 가깝게 가지고 오기 때문에 매우 비싸기도 해서 구하기 쉽지는 않습니다. 매우 구하기 힘든 이유로 쓰는 이들이 붉은 물감으로 쓰지만 쉬쉬하기 위해 단 몇몇은 정말 극소수들의 무속인이나 스님들이 두 손에 쥐여 주고선 절대 열어보지 마라, 열어보면 효험이 없어진다는 등 찝찝한 당부, 주문을 하고서 건네줍니다. 하지만 저의 견해로는 정말 그 수많은 의미의 부적들 중에서 매우 소수만이 ‘열어 볼 필요성’이 없는 것뿐이지 굳이 보지 말아야 하는 것은 없다고 봅니다. 

부적을 받아서 지니는 이들이 진심으로 나은 삶을 위한 기원이 이뤄지길 바라는 확신을 가지고 지닌다면 물감이든 경면주사든 재료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게다가 부적을 써 주는 이가 의뢰한 이의 절절함을 이해하고 혼신을 다해 제작하고 의뢰한 자를 위해 성스러운 힘 혹은 기운이 담긴 부적에 나은 삶을 기원하며 그려 넣는다면 소위 말하는 부적의 효험은 이미 시작되고 있을 것입니다. 
 
동남아시아에서 부적은 보통 일반 흰색종이에 볼펜으로 그리고 이를 코팅해서 자동차나 각 자신의 상점에 붙여 놓은 것이 대다수입니다. 처음엔 부적을 만드는 자로서 문화적 충격을 받았지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항상 비가 오거나 일정한 날씨가 아닌 까닭에 코팅은 말 그대로 ‘신의 한 수’, 게다가 각 동남아시아의 역사를 조금 이해하고 나면 동남아시아 고유의 문화와 중국 문화의 충돌, 그리고 식민지로써 서양문화가 깊숙이 베인 말 그대로 문화의 혼종이 새 전통을 만들어내 지금의 볼펜으로 쓰인 부적이 존재할 수 있었겠지요. 다시 생각해 보면 기호와 그것의 상징이 지니는 의미가 더 중요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써준 자와 지니는 자의 자세가 부적의 재료보다 더 중요시 여기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위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나라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적은 ‘성스러움’과 ‘밝고 맑은 기운’을 바탕에 두고 있지, 알 수 없는 미지의 감정과 'weird'한 감정을 유발시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 부적이라는 의미가 여러 이유로 위와 같은 부정적 감정을 일으키는 하나로 각인되고 있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여러분, 그 많은 또 수 없는 부적을 제작하는 자들이 다 외울까요? 간단하게 말씀드린다면 <아닙니다!> 다만, 부적 책이 존재합니다. 말 그대로 도교와 불교 그리고 한국 역사 속에서 여러 이들이 제작한 부적들을 모아놓은 부적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스님이나 무속인 혹은 술사들이 이 책을 통해서 부적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신부’라고 해서 부적을 의뢰자에 맡게 부적 책에 나와 있지 않은 형상으로 독립적으로 제작하기도 하는데, 말 그대로 ‘신이 내려준 부’라고 해석하고 이를 종종 출판된 것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부적의 이야기를 짧게나마 여러분과 함께해 보았습니다. 부적을 쓰는 입장에서 할 말이 너무 많지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여러분과 함께 곱씹고 싶은 포인트는 무엇일까 고민하다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부적이 왜 존재해야 하는 가입니다. 바로 보다 나은 삶을 위한 한 ‘방편’이라는 것과 그 삶을 절절히 원하는 이들에게 앞으로 좋아질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약속을 닮은 ‘희망의 문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도 부적을 대할 때 그 이상 이하도 아니길 바람을 담아 봅니다. 고가의 부적이 더 영험을 발휘하지도 않을 것이고, 절대 열어보지 않아야 하는 기묘한 느낌에 뭔가 떨떠름한 느낌을 주는 부적 또한 더 나은 부적이 아닐 것입니다. 

적절한 여러분의 판단으로 밝고 맑은 성스러운 느낌의 부적을 만난다면 지녀 보시고 혹은 집에 둬 보세요. 어렸을 적 벽면을 장식한 나의 스타의 포스터나 인생 영화의 포스터와 같이 혹은 내 마음을 안정시켜 주던 어느 작가의 그림을 걸어 두듯이. 
 

10월달 사연_1

D씨_ 72XX0X  X시

저는 20인 미만의 규모의 공장에서 중간관리자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조직개편으로 관리자가 되니 다른 직원들의 눈도 따갑고 제가 하는 일에 매사 수군덕거리네요
사장님마저 공장 내 갈등을 저의 탓으로 떠넘기시고, 저를 믿지 못하시니 스트레스와 괴롭힘에 정신이 피폐해지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어느 직장에서도 이런 취급을 받은적이 없는데요. 곧 퇴직을 할 예정이지만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아서 직장을 떠나고 싶습니다. 저 역시 여유로워지고 평화로워지기를 희망합니다. 


만신으로의 답변

선생님. 다시 한번, 인생에서 끝과 시작 그 다리의 한 가운데에 서 계십니다. 항상 중년의 가운데에 서면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나이 들면 마치 살아온 세월이 무기가 되어 잘 살아 낼 거라는 아직 살아보지 못한 이들의 눈짓이 선생님을 짓누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뭐가 다르니, 눈뜨면 새로운 아침이고 언제나 처음인데, 다만 24시간, 하루, 한 달, 일 년이라는 이름에 '항상 처음' 인 이 세상을 맞이하는 '나'이고 '우리'인걸. 얘들아, 살아도 살아봐도 항상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도무지 잘 모르겠구나 마치 아직 이 시간을 지나온 너희들 처럼. 

선생님 마음, 대신 제가 위와 같이 말해 봅니다. 그리고 어쩌면 모든 우리들의 마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퇴사를 하신다고 하지만 다시 조만간에 시작하는 일이 오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조금만 가벼워 지시길 바라요. 사실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는 압니다. 속 시원히 한마디 꼭 해드리고 싶습니다. 

잡것들은 사뿐히 즈려밟으시옵서소. 괜찮습니다. 선생님이 아무리 즈려 밟고 강하게 나가신대도 못되게 사는 것도 타고나야 하는데 못 타고 나셨어요. 그래 봤자 인과의 현현함에 영향을 주지 못할 테니까요. 힘내세요. 다음 시작이 곧 다가옵니다. 거기서도 모든 것이 처음일 테지만. 

부적1.jpg

10월달 사연_2

E씨_ 68XX0X 묘시

저는 현재까지 한 곳에 자리를 잡기보다 정처없이 사회운동이나 하고 살았습니다. 안정적으로 살아본 적도 없고, 프로젝트별로 약간의 사례비 정도를 받아 살았지만 그저 이렇게 사는게 좋았고 무리없고 즐거웠습니다. 이제 남들 은퇴할 나이를 눈 앞에 두고 마지막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큰 기금조성을 해야하는 사업으로 저의 성과도 크게 달려있습니다. 이번 일을 잘 마치면 안사람과 함께 행복하게 노후를 살아보고자 합니다. 힘을 주십시오.


만신으로의 답변

큰 프로젝트 가 마치 지금까지 해온 어떤 일보다 쉽게 무난히 이루어 지길 기원합니다. 하지만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번 일이 마지막으로 은퇴가 아닌, 이번 일로 또 다른 시작이 된다는 사실과 마음으로 임하시면 아무 무난히 잘 진행 될 거라고 봅니다. 모든 기원을 담아 이렇게 '신부'를 보내드립니다. 힘이야 힘이야 가라 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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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종 원
문화예술인력 / 피그헤드랩 운영

이봐 젊은 친구. 프로가 되라구_2

지난번 글이 내용은 없으면서 쓸데없이 길었기에 짤막하게 다시 정리해보았다. 지난 글에도 밝혔지만, 여기에는 임 모 평론가의 과거의 글(아마 청년작가에게 하는 권유 같은 제목이었을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원본 글을 바탕으로 내가 다시한번 재해석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이 내게 여러모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신진 예술인의 입장이기보다, 이미 어느정도 경험들을 가져야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그 이야기들을 이해할 정도라면 굳이 그 팁이 필요 없을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랄까. 대체로 평범한 신진작가들은 뚜렷하지 않은 욕망의 목표에 눈이 멀어 그것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수 있다. 아무튼 10년 정도 크던 작던 활동을 해온 예술가로, 나름의 굴곡이 있던 활동을 한 이로서, 그리고 지금은 문화예술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신진(청년) 예술인들에게 직접적으로 당장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팁을 다시 짤막하게 정리해본다.

1. 예술가는 이미지 게임이라 생각한다. 어떤 이미지로 타인의 기억에 남을 수 있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본다. 물론 작가라는 것이 좋은 작업을 꾸준히 지속하는 것도 이미지겠지만, 한편으로 인간적인 요인들도 꽤 많은 것을 차지하기도 한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의 생각으로 보는 만큼 어쩔 수 없지 않을까. 때로는 속물적인 지점도 무시 못하며, 나는 이것이 꽤 중요하다 생각한다.

2. SNS 등 자신의 상태를 표출할 수 있는 플랫폼에 멘탈 깨진 이야기는 적당히 올리는 게 좋다. 물론 나도 예술가의 입장으로, 그것이 어떤 에고트립의 과정이라는 것 충분히 이해는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쩌다 한번 나오는 비범함의 표출 정도라면 모를까, 너무 잦으면 있던 관심도 지치게 만든다. 직설적으로는 믿음이 안 가게 되는 것 같다. 이렇게 쉽게 멘탈이 흔들리는데 같이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게 만든다. 내가 많이 했던 실수인데, 요즘엔 이런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SNS도 피로감이 누적되어 그러지 않을까.

3. 포트폴리오는 항상 핸드폰이나 온라인 드라이브에 갖고 있어라. 물론 SNS가 어느정도 기능을 하겠지만, 포트폴리오 자체를 구성하는 개인의 감각 등이 발휘되기에는 너무 제한이 크다. 아울러 포폴은 작업의 카테고리나 쓰임새로 몇 종류를 나뉘어 갖고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정리가 잘된 웹사이트도 충분한 대안이다. 예술계 사람들끼리는 꼭 처음만나 술이라도 하다 보면 작업 보여달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럴 때 준비되어 있는 게 참 멋있는 것 같다.

4. 누가 본인에게 알바를 제공한다면, 되도록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여라. 이건 단지 ‘알바 거리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겨’ 라는 것이 아니다. 알바를 주는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무엇을 잘하는지 얼마만큼의 믿음을 가져도 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대뜸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일거리를 주기는 좀 그럴 것이다. 더욱이 예술가란 사람들은 변죽이 죽 끓고 규칙적인 생활과 조금 거리가 있다는 인식이 있다 보니, 더더욱 일을 맡기는 것에 조심스러움이 있다. 그런 차원에서 처음에 믿음을 주는 정도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손해보지 않는 차원에서는 고맙게 생각하는 것이 낫다. 개인적으로 후회하는 지점 중에 하나다.

 

4-1. 그런데 진짜 본인을 호구로 보는 경우라면 확실히 선을 그어라. 본인만이 아니라 또래 비슷한 이를 하대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호구란 범위가 너무 넓을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일을 했는데도 수당을 주지 않는 경우이다. 그것이 충분한 협의와 논의를 통한 것이라면 모를까 상명하복과 같은 상황이라면 선을 긋는 것이 낫다. 근래에도 그렇게 착취당하는 경우를 은근히 보게 되는데, 당장은 자신을 호구처럼 대하는 사람이 대단해 보일지라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별 것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설렁 지금은 진짜 대단한 사람일 지라도, 그렇게 사람을 막 대하는 사람은 언젠가 무너지기 마련이다.

5. 쓰다 보니 비슷한 말이지만,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예술이라는 것도 어떤 산업구조와 사람들 사이에서의 일이기 때문에 믿음이 없으면 일을 추진하기 어렵다. 아주 간단한 단위에선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 정도가 제일 기본이지 않을까.

6. 행사(시각예술의 경우에는 전시)를 자주 봐라. 한달에 한번 정도라도 코스를 짜서 돌아다니는 것을 추천한다. 좋은 전시든 나쁜 전시든 분명 도움이 된다. 정말 기본인 얘기인데 은근히 전시 안보는 예술가들이 많다. 전시를 많이 보는 작가가 잘나가지 못할 수 있어도,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 치고 전시 안보는 작가는 없다. 하다못해 좋아하는 전시장을 정해 놓고 어떤 전시를 하던 간에 거기는 꼭 방문한다 정도로 생각해 둬도 좋을 것이다.
예전 골목식당이라는 방송에서도 나온 이야기지만, 내가 어떤 분야에서 활약하려면 다른 사례들도 직접 경험하고 장단점을 파악해봐야 나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한다. 예술이라는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7. 굳이 강사를 하고 싶으면 모교에 감정 생길 만한 일을 만들지 않는 게 낫더라. 물론 그게 최선이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7-1. 그런데 그 모교가 나를 1순위로 꼽아줄 것 아니면 굳이 설설 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1순위란게 굳이 부가 설명이 필요할까. 교수님이 내게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게 아니라면, 굳이 공부를 하려거든 더 좋은 학교에서 해라. 

8. 그런데 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선, 예술을 학교에서 배운다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학교는 과정의 도움일 뿐이지 결국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국내의 경우, 예술가에게 학위는 어떤 이미지 메이킹 그 이상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본다.

9. 내 주변환경에서 나를 도와줄 여력이 있는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이 얘기는 많이들 듣겠지만, 결국 여력이 없으면 지탱할 수가 없고, 그 한계를 버텨내기 위해서 내 삶은 어느정도 처절해질 수밖에 없다. 경험상, 예술가가 그 처절함에 시달릴 데로 시달리고 나면 결과물에 티가 나기 마련이다.

10. 예술로 활동하면서 가난은 나의 선택이며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11. 공모는 자주 넣되 얽매이지는 말아라. 공모의 과정은 상당히 현실적이어서 웬만큼 뛰어나지 않고서 수십, 수백명 중에 돋보이기는 결코 쉽지 않더라. 심사라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제한된 시간과 개인의 호불호 사이에서 완벽한 공평함을 추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내 개인 경험담인데 평소 높게 보던 모 공간에 공모를 냈다가 떨어진 적이 있었다. 떨어진 거야 자주 있는 일이라지만, 공모가 끝나고 나서 내 동영상 조회수를 봤더니 다 0인 것이 아닌가. 심사과정에서 내 동영상 작업들을 보지 않은 것이다. 개인적인 사과를 받았고 더 이상 그 공간을 좋아할 이유를 잃은 것으로 종료된 일이지만, 그렇게 인기 있는 공간의 심사라는 것도 완벽할 수 없는 것이다. 그 후로 내가 관여하는 심사는 그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현실적이고 물리적인 한계는 어쩔 수 없이 남게 되더라.

12. 그럼에도 꾸준함은 중요하다. 꾸준히 한다면 기회가 없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한국에서 예술가로 산다는 것이 환경에 쉽게 좌우 되어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계속 두드리면 결국에는 되는 것 같다.(주의, 여기서 ‘된다’란, 직업적 안정감을 말하는 것은 아님을 밝힌다.)

13. 이런 전시(행사)는 하지 말아야 한다. 별도의 참여비를 요구하거나, 전시할 공간이 너무 열악 혹은 거리가 너무 먼 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충분히 합의가 되지 않은 경우. 아무리 봐도 전시장의 다음 스케줄이 펑크가 나서 나를 억지로 집어넣는 느낌이 있는 경우. 내 기회비용이 너무 소모될 예정인데 이에 대해 기획자가 물질적이던 행동이던 도움을 주지 않는 경우. 이래저래 마인드가 좋지 않은 운영자가 있는 경우. 최소 이중 두가지 이상이 해당된다면 도움이 안되는 것은 물론, 멘탈 잃고 손해보는 전시가 될 확률이 더 크다.

14. 같이 갈 사람을 찾아라. 먼저 앞서 있는 사람을 무작정 쫓기보다 같이 커가고 함께 만들 사람이 중요하다. 젊은 작가들은 이름있는 기획자와 함께하고 싶어하고, 또 젊은 기획자는 이름있는 작가들과 함께 하고 싶어한다. 이는 당연할 수 밖에 없지만 그런 와중에도 함께 미래를 볼 사람을, 친구를 두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특히나 요즘처럼 예술이라는 것이 다양하게 인식되고 또 다양하게 도전해볼 수 있는 시기에는 더더욱 중요하다. 활동하면서 참 많이 속상했던 것이고, 만약 당신에게 지금 그런 동료가 있다면 고맙고 소중하다 생각하길 바란다. 시간이 더더욱 지나면 그런 인연이 무척 귀해지더라.

15. 되도록 즐겨라. 성과가 아니더라도 과정에서의 즐거움을 찾아라. 아니면 시간이 지나서, ‘그래도 그때는 꽤 재밌었어. 시간가는 줄 몰랐어’라고 생각할 그런 마음이라도 있으면, 적어도 후회는 덜하거나 안 할 것이다. 간간이 예술을 선택한 과거를 후회하는 이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물론 어느정도는 농담이겠지만 진심으로 후회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그런 이들을 보면 나는 묘하게 가슴이 아프더라.

석 민 정
삼십대/ 문화예술인/ 교습소운영

2019년 백사마을 스쾃팅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는 백사마을. 중계동 산 104번지. 
어릴 적부터 봐왔던 마을이다.
재개발된다는 말이 나온 지도 십 몇 년이 되었다.

큰 아파트 단지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거대한 아파트의 그림자 뒤에서도 찬란한 햇빛이 내리쬐는 곳이었다. 
버스 10번 종점에 내리면 시작되는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옛 시장노릇을 했던 삼거리가 나온다. 
2019년 10월에는 거의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다.
백사마을 삼거리의 터주대감 삼거리포차 만이 아직 장사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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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마을이라 불리는 이 달동네는 1967년 정부가 개발을 위한 강제 이주로 생겨났다고 한다. 서울 곳곳의 판자촌에서 살던 사람들을 불암산 자락의 104번지로 이주시켰고, 정부는 이주대책으로 마련해준 것은 분필과 30평짜리 천막이었다고 한다. 30평짜리 천막 위에 분필로 네자리로 나눠 네 가구가 살게 되었다. 이주당한 사람들은 그 8평 나마도 벽돌 쌓고 지붕 만들어 보금자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아직도 연탄을 쓰는 마을이었다. 
매일 겨울 연탄봉사자들이 드나들었고, 백사마을의 주된 거주자들인 노인들 집에 연탄을 쌓았다. 
봄엔 그렇게 따스해보이는 마을이 겨울엔 유난히 추워보였다. 
차도 지나갈 수 없는 가파른 골목은 겨울이 되면 꽁꽁 얼었다. 

사전답사를 갔을 때는 2019년 10월이었다. 
옛날에는 사람 많고 번성했다는 마을이 다 비어있었다. 
할매들이 모였을 평상도 비어있다.
아직 재개발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포격을 맞은 듯 지붕이 내려앉은 집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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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곳곳에 다양한 벽화들이 그려져있다. 몇 해 전 오래된 집과 골목에 벽화를 그려넣어 이 마을은 백사 벽화마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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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벽과 문에 아무렇게나 그려진 빨간 동그라미의 정체가 궁금했다.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진 곳은 공가가 완료되었다는 표시란다. 동그라미의 의미를 알고 나니 동그라미가 그려지지 않은 집을 지나갈 땐 왠지 모르게 숨죽이게 되었다.
사람들이 떠난 집은 급하게 떠난 탓인지 세간살이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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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쾃 장소로 정한 집은 다른집보다 비교적 깔끔한 형태였다. 
이 집의 부엌이었을 공간은, 내려앉는 천장에 나무로 기둥을 세워져 있었다.
처음엔 하나였을 기둥이 두 개가 되고 세 개가 된 것 같다.

마을 골목에는 어김없이 연탄재들이 쌓여있었다.
연탄재는 비료로 텃밭에 뿌려지고, 추운 겨울 땅이 얼어 미끄러운 경사길에 뿌려졌을 것이다. 
연탄재를 하나 들어보았다.
전 날 비가 와 물을 머금어 꽤 무거웠다.

나는 연탄재를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히 방 안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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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새 방을 데펴주고 마을사람들을 돌봐주었을 연탄재가 방 안으로 들어와 안락하게 자리를 잡았다. 
나는 고마운 연탄재와, 이 마을에서 추운 겨울을 버티고 살아낸 역사의 백사마을 사람들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하고싶었다. 

매년 백사마을에 연탄나르기 봉사로 채워지던 연탄창고처럼, 연탄재들을 방 안으로 싣어 나르고. 나는 탑을 쌓았다. 
그리고 잘려져 쓸쓸이 나뒹구는 고목조각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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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탑을 보니 기름 냄새가 그리웠다.
사람 북적했을 시절, 이곳도 명절이면 고소한 기름 냄새 밥 짓는 냄새, 웃고 떠드는 아이들의 목소리로 만연했겠지.

나는 탑을 세워놓고 전을 부쳤다. 
호박전, 김치전, 부추전, 버섯전을 부쳐 함께한 사람들과 나누어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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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 2019년 가을, 피그헤드랩의 스쾃 프로젝트 <project8x> 프로그램(오종원 기획)의 일환으로 서울의 두 지역을 선택하여 워크샵 및 스쾃을 진행하였다. 이 중 백사마을은 석민정 작가가 추천한 장소로 재개발을 앞두고 많은 집들이 비어있는, 서울 내 얼마 안남은 달동네였다. 석민정 작가는 장소에 있는 사물로 설치작업을 진행하였으며 전을 부치고 나눠먹는 퍼포먼스를 병행하였다.

이 채 연 
창작가 / 관심 받고 싶어 하는 주부

명절 마무리는 성모님 앞에서

대부분의 성당 마당 안쪽에는 성모상이 있다. 그 앞에는 촛불을 밝히고 진열장 같은데 넣어 둘 수 있게 되어 있다. 나는 성당을 다니지는 않지만, 그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그 앞으로 간다. 우선 돈을 봉헌함에 넣고, 초를 고른다. 초는 다 같은 모양이지만 색은 고를 수 있다. 그날의 기분과 행운의 색을 생각해서 신중하게 초를 집어 든다. 마치 타로카드를 선택하는 것처럼. 라이터로 초에 불을 붙인다. 촛불이 바람에 꺼지지 않게 조심스레 진열장에 넣는다. 진열장 안에는 불이 꺼진 다른 양초들이 있다. 그걸 보니 내 촛불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된다. 촛불은 내 마음이니까, 되도록 오래 오래 버텼으면 좋겠는데…. 한걸음 물러서서 기도를 한다. 아니. 기도는 성모상이 내 시야에 보이면서부터 했다. 아니다. 집에서 출발하면서부터 했다. 성모상을 바라본다. 제사 지낼 때가 생각난다. 여기 음식이 없을 뿐 마음은 비슷하다.

이번 명절연휴 역시 늙어감이 한창인 부모님과 수년째 투병중인 오빠를 보고 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에서 창밖의 구름을 보며 여러가지 생각을 한다. 생각이 구름 위에 하나씩 앉아 있다. 그것들은 명절마다 하는 도돌이표 근심이다. 
내 힘으로 걱정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돈이 많다면 할 수 있는 게 참 많겠지만……문제를 해결할 만큼의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은 없다. 이런 생각에 내가 작업하는 것이 고상한 놀이처럼 느껴져서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이렇게 돈 앞에서 무력해지고, 자존감 떨어지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작업으로 내 몫을 하고 있는 모습을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보여드릴 수 있어서 좋다는 생각도 든다. 정말 작은 몫이라 민망하지만. 이렇게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두 바퀴정도 돌았을 때, 성모님 앞에 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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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다. 성모상은 마치 내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 자리에 서있었다.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뜬금없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로또도 샀다. 돈이란 현실문제의 빠른 해결책이자 여유로운 마음을 가져다 주는 근원 중 하나이기도 하니까. 

그림의 성모님은 어느 카페에서 본 성모상을 모델로 그렸다. 그려 놓고 보니 언젠가 갔었던 절에서 본 보살상의 얼굴이 생각난다. 바로 검색해본다. 길상사의 관음보살상. 최종태 작가님께서 작업하셨다. 역시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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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은 우
그림 그리는 사람 / 본업과 부업 사이 어딘가에서 표류 중

2022년 10월

1
돈 버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일치하기란 쉽지 않음을 다시 깨닫는다.
오늘도 출근을 하며 깨달았다. 아- 애정이 참 없구나. 이제는 그냥 하는 거구나.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당연했는데 이제는 굳이 부여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었다.
사실 조금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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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외버스를 오랜만에 탈 일이 있었는데, 분명히 가는 길이 제법 지루하고 졸릴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졸리긴 했지만 이내 나는 창문 밖을 계속 바라보게 되었다.
조는 것보다 더 좋았던 것은 시시각각 변하는 바깥 풍경이었다. 어디에서 내가 이렇게 노랗게 익은 밭을 볼 수 있을까.
파레트에 아무것도 조색하지 않은 처음의 색과 다름 없는 벼농사를 지은 밭이 빼곡하게 보이면서
아- 나는 절대 이 풍경들을 그림으로 담아낼 수 없겠구나, 흉내만 살짝 내볼 수는 있겠다 싶었다.
지나가면서 보이는 이 초록의 색들, 흩날리는 나무들, 투명한 낙동강, 환하게 펼쳐져 있는 하늘.
샛길을 따라 쭈욱 달리는 버스의 덜컹거림과 버스 기사님의 운전대를 잡은 사소한 움직임까지 모든 것이 잘 보였다.
서울을 가기 위해 몸 담는 사람들, 아무도 타지 않는 버스 승강장, 꼬불꼬불한 길을 달리는 커다란 버스.
오늘만큼 무언가 선명하게 보인 적이 근래에 없었던 것 같다. 이러니 고속도로를 타기 전까지 잘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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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시 소식을 드립니다.

전시명 : 작은 것들에게 보내는 인사
전시 기간 : 2022.10.5.(수) - 11.6.(일)
장소 : 안계미술관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안계시장길 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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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헤드랩
www.pigheadlab.com

벌써 6개월, 여섯 번째 호를 편집하며

안녕하세요. 피그헤드랩의 기획자이자 <지금 이시각>의 편집자인 오종원입니다. 첫 호를 제작하고 벌써 여섯 번째 호를 편집하고 있습니다. 숫자 6을 기념하거나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원래 처음 주변 작가들에게 해당 프로젝트 참여를 권유할 때 딱 반년, 6개월만 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별도의 원고료는 지급하지 못하는 상태이니 술이나 한잔씩 사고 곧 좋은 기회를 만들겠다 했지요. 물론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나 다른 이들이나 다들 작업만 매진하던 젊은 작가가 아닌 생업과 창작, 책임감 있는 미래를 병행해야 하는 입장들이기에 한달에 한번이라도 무엇인가 지속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앞으로 더 심해지면 심해지겠지요. 
어찌됐든 6개월 째가 되었고 작가들에게 전화를 돌려가며 조금만 더 부탁하자, 이거 분명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정말 고맙다고 여럿 차례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사실 목표는 지속해서 계속 생산하는 것이 첫째이고 그 다음으로 창작가, 창작을 좋아하는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를 싣는 비영리 소식지로 알려지는 것이 두번째이며, 혹여나 그 과정에서 작은 도움을 얻어 필진들에게 원고료를 주는 것이 세번째 목표입니다. 그리고 다시 당장의 목표는 또 반년을 버텨보는 것입니다.

비록 함께 할 수는 없었지만 처음 두 달에 참여해준 손승범 작가님, 마찬가지로 현재 함께하지 못하지만 본인의 이야기들을 준비중이신 이규환 작가님, 여전히 내게 좋은 친구인 석민정 작가님, 고뇌의 연속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지켜내고 계신 이은우 작가님, 신비한 인연으로 예술가의 면모를 보여주고 계시는 이안 필진님, 감사하게도 먼저 연락 주셔서 프로의 면모를 보여주고 계시는 이채연 작가님. 그 밖에 다양한 잔소리를 해주시는(비록 "또 쓸데없는 일을 벌이네" 라도) 주변 분들과 혹시나 클릭이라도 한번 해주신 분들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다양한 분들의 재밌는, 재미가 조금 덜하더라도 새로운 이야기 늘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그헤드랩과 함께 해주시길 바라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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